저는 금년 4월 19일까지 중국대사관 영사부에 근무했던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제가 여기에 실명을 밝히지 못하는 이유는 최근 어느 경찰로부터 신변의 위협을 느낄 만한 발언을 들었기 때문이니 그 점 깊이 양지해주시기 바랍니다.
사연인 즉, 며칠 전 4월 19일 오전에 중국 영사부로 한 남자분이 비자를 신청하러 오셨습니다. 때마침 비자 신청창구에는 사람이 없었고 그 분은 바로 제 창구 앞으로 오셔서 신청서를 작성하기 시작했습니다. 비자 신청창구는 각 비자에 필요한 서류와 신청서를 완벽하게 준비한 분들이 오셔서 간단한 인터뷰와 함께 서류심사를 거치는 곳입니다. 영사부의 13개 창구는 각각 업무특성상 따로 분류되어 있고 안내창구 역시 3번째 창구에 배치 돼 있었습니다. 물론 신청서를 작성하는 곳도 여러 군데 마련돼 있었으나 그 분은 굳이 제 창구 앞에서 신청서를 작성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비자를 신청하는 사람도 없고 해서 제 창구 앞에서 신청서를 작성해도 저는 말없이 제 업무를 보면서 그 분이 신청서의 모든 문항을 기재할 때까지 기다려주었습니다. 그러다가 막히는 부분이 있었던지 그 분은 제게 18번은 무슨 뜻이냐, 19번은 뭘 말하는 거냐, 20번은…… 등등 문항 하나하나마다 그 뜻을 물었고 저는 그 의미를 성심껏 해석해드렸습니다. 문제는 21번 문항에서 일어났습니다. 21번 문항은 비자(혹은 여권)를 언제 찾을 것인지 묻는 항목이었는데 그 분이 또 21번은 무슨 뜻이냐고 묻기에 저는 언제 찾을 건지 묻는 겁니다, 라고 답해드렸습니다. 그 분은 짜증스런 목소리로 뭐라구요? 라며 제게 되물었고 저는 다시 언제 찾을 건지 묻는 겁니다, 라고 재차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때부터 그 분은 제게 시비를 걸기 시작했습니다. 뭘 언제 찾으라는 거냐, 말을 똑바로 해야 알아듣지 않겠느냐며 언성을 높였습니다. 당연히 비자 찾는 기간을 말하는 것인 줄 뻔히 알면서도 트집을 잡는 그 분에게 저는 더 쉽게 알아들으시라고 여권이요, 라고 말씀을 드렸고 그 분은 바로 아니 여권이요? 비자요? 라며 계속 딴죽을 걸었습니다. 여권에 비자가 부착되어 나가니 여권과 비자를 동시에 찾는다는 것을 그 분도 알았을 겁니다. 저는 괜한 언쟁을 피하기 위해 뒤쪽에 가시면 한글 견본이 있으니 보고 작성하시고 그래도 모르시겠거든 안내창구를 이용하셔도 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도 그 분은 안내창구에 사람이 많아서 여기 왔지 않느냐, 왜 이렇게 불친절 하느냐며 계속해서 어깃장을 놓았습니다. 그 분은 단지 뒤쪽 게시판까지 가는 것도 귀찮고 안내창구에서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도 번거로워 제게 언성을 높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비자를 신청하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기 시작했고 저는 제 업무를 봐야했기 때문에 다시 그 분에게 각 창구의 특성과 업무에 대해 말씀을 드리고 재차 뒤쪽 게시판을 이용하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래도 그 분은 끝끝내 제 창구 앞에 버티고 서서 내가 경찰 공무원인데 당신 서비스가 왜 이러냐며 신분증까지 저에게 제시하면서 위협을 가하는 행동을 하셨습니다.
저는 여기서 이렇게 난동을 부리시면 비자를 받을 수 없는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고 공무원이시면 재외공관에서 더더욱 행동을 조심하셔야 하지 않겠느냐며 말씀을 드렸지만 그 분은 막무가내로 성을 내셨습니다. 하는 수 없이 저는 영사부 소속 보안을 찾았고 보안이 제 창구로 오는 것이 보이자 그 경찰관은 이런 것 때문에 무슨 보안을 부르느냐며 또 한소리를 하시고는 물러섰습니다. 얼마 뒤에 다른 분의 비자 서류를 심사하는 제게 그 분이 다시 오셔서 당신 이름이 뭐냐, 내가 대사를 만나서 다 얘기하겠다며 다시 언성을 높이기에 저는 그렇게 하시라고 말씀을 드리고 제 업무에만 열중했습니다. 비자를 신청하려는 많은 사람들과 영사부에 출입하는 여행사들의 시선은 한바탕 소란을 일으킨 그 경찰을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뒤 그 경찰은 제 옆 창구에서 비자를 신청했고 심사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면서 계속 저에게 이봐 아가씨 당신 일 똑바로 해, 내가 경찰 공무원인데……하면서 자신이 경찰임을 누누이 저에게 강조했습니다. 저는 같은 한국인으로서 그 경찰의 무모하고 지각없는 행동이 부끄럽고 낯 뜨거워서 공무원이시면 이런 재외공관에 오셔서 더욱 행동을 조심하셔야 되지 않겠느냐고 다시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그 경찰관은 그런 것에는 전혀 아랑곳없이 서비스를 운운하며 끝까지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언성을 높이시더니 마지막엔 어디 나중에 두고 보자, 라며 저에게 위협적인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제 옆에 있던 동료는 그 경찰의 위협적인 언행에 할 말을 잃고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저는 그때 신변의 위협을 느낀 나머지 그 경찰관의 이름과 근무지를 알아두었고 제 옆에 있던 동료에게 만약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거든 저 경찰관을 기억해 두라는 당부까지 남겼습니다. 제가 옆에 있는 직원과 대화를 나누자 그 경찰관은 바로 저에게 옆 창구 일에 참견하지 말라며 호통을 치고는 제 옆 창구 동료에게 이 일로 자신이 비자 받는데 불이익을 당하거나 하지는 않는지 거듭 물으셨습니다. 그 일에 대해서는 확답을 드릴 수 없다는 제 동료의 말씀을 듣고 그 경찰관은 화를 참지 못한 채 비자 접수증을 받아들고 비자실에서 나가셨습니다. 저는 떨리는 마음을 가라앉히며 메모지에 송파경찰서 잠실지구대 최승옥 분이라고 적어놓고 혹여 그 경찰이 비자실 밖에서 기다리고 있지는 않을까 싶어 내심 걱정했습니다.
대략 사건의 요지는 이러하며 저는 그날로 중국대사관 영사부에서 해고 처리됐습니다. 하루의 모든 업무를 마치고 난 뒤 담당 영사가 저를 불렀고 오전의 일을 들어 저를 해고하겠다며 내일부터 출근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 일에 대해 전후사연을 설명했으나 소용없는 일이었습니다. 원래 영사부는 지난 수년 간 수십 명의 직원을 부당 해고해 왔고 그 일은 현재도 진행 중에 있습니다. 해서 저는 영사부는 마침 그 일로 해고 구실을 찾았을 뿐이고 이번에는 운 나쁘게 내가 결려들었구나, 라고 치부해버렸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제가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된 것이 결코 슬프지 않다거나 억울하지 않은 것은 절대 아닙니다. 그때 만약 그 경찰관에게 제가 굽실거리고 고분고분했다면 그 분이 영사를 만나 저에 대해 광담패설을 늘어놓지도 않았을 것이고 제가 해고당하는 일도 없었겠지요.
경찰의 신분과 권위의식을 앞세워 차례를 기다리지 못하고 자신의 용무만 마치면 그뿐이라는 그 경찰의 태도는 과연 정당한 행동일까요? 다른 공무원보다 더욱 질서유지와 치안에 힘써야할 경찰이 정작 자신의 질서의식은 어디에 두고 다니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만인에게 물어도 누구나 그 경찰의 인격과 자질을 의심할 것입니다. 설마 대한민국 경찰이 서민을 압박하고 위협하라고 존재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재외공관에서 친절과 서비스를 운운하는 최승옥 분은 얼마나 친절하게 대민서비스에 충실한지 한번 지켜보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저는 다음에 또 누군가가 그 경찰로 인해 신변의 위협을 느끼거나 예상치 못한 피해를 입지 않을까 싶은 노파심에서 이 글을 올리는 것입니다.
지난 6년 간 제가 대사관에서 근무하는 동안 저는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스스로 공무원과 지식인임을 자처하는 몇몇 사람들이 대한민국의 위상과 대한민국 국민들의 위신을 실추시키는 언행을 일삼는 모습을 많이 보아왔습니다. 국외나 주한재외공관에서의 우리나라 모든 국민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얼굴이며 민간외교관들입니다. 특히 공무원은 민간인보다 더 행동을 삼가야 하는 공인입니다. 대한민국 국민들의 치안에 힘써야할 경찰이 다시는 이 나라 국민들을 위협하지 않도록 해주시고 재외공관에서 나라의 얼굴에 먹칠하는 일이 없도록 힘써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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