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서장 포함 형사과 지휘라인, 고문 묵인했는지도 수사방침"
경찰 "아님 말고식 인권위 조사에 검찰이 놀아나고 있다"

서울 양천경찰서 피의자 고문의혹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남부지검이 고문 장면이 담긴 폐쇄회로(CC)TV 자료를 확보한 것으로 18일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양천서에서 확보한 CCTV 자료에서 경찰관들이 한 피의자를 고문하는 모습을 확인했다"며 "말 그대로 명확한 고문 장면"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경찰관들이 피의자 입에 휴지를 물린 뒤 테이프로 입 주위를 둘둘 말아 재갈을 물렸고, 수갑을 뒤로 채우고 팔을 위로 꺾어 올리는 '날개 꺾기' 장면이 담겨 있다"며 "바닥에 매트리스를 깔고 발로 피의자를 폭행하는 모습도 있었다"고 전했다. 이 영상은 지난 2월 26일 녹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지난 16일 국가인권위원회가 공개한 고문 피해자 진술과 일치한다. 인권위에 따르면, 2월 26일 체포돼 양천서로 이송된 한 피의자는 "경찰이 수갑 찬 손을 의자 등받이 너머로 보낸 뒤 휴지를 입에 물렸다. 테이프로 입과 목을 둘둘 말아 재갈을 물리고 날개 꺾기 고문을 했다"고 진술했다.

서울남부지검은 앞서 지난 4월 7일 양천서에 설치된 CCTV 31개의 녹화 영상이 담긴 하드디스크를 압수하고 분석에 착수했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 지난 3월 9일~4월 2일 사이의 CCTV 동영상 자료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그 이전 영상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고문 영상을 찾아낸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대검찰청에 하드디스크를 보내 CCTV 조작 여부도 수사하고 있다.

검찰은 또 "정은식 양천서장(대기발령)을 포함한 형사과 지휘라인이 고문 사실을 알고 묵인했는지 또는 고문을 지시했는지 여부에 대해 수사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양천경찰서는 이러한 고문 의혹에 대해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이다. 이해식 형사과장(대기발령)은 "인권위의 '아니면 말고' 식의 조사 결과에 경찰이 죽어나고 검찰이 놀아나고 있다"며 인권위와 검찰에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이 과장은 "인권위가 피의자들의 진술을 받을 때 '앞에서 이렇게 얘기했으니 걱정하지 말고 대답하라'는 식으로 질문을 던졌다고 들었다"며 인권위 조사 방식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검찰에 대해서도 "2개월 동안 진행한 수사를 질질 끌다가 인권위 조사 결과가 나오자 '검찰도 인권위와 별개로 수사 중'이라며 자료를 배포하는 등 생색내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고문 경찰' 의혹이 불거지자 양천서 내부에서도 지나친 실적주의가 부른 부작용이란 지적이 나온다. 양천서 한 형사는 "서울청에서 매주 각 경찰서 팀별로 순위를 매긴다. 매달 평가도 받는 데 못하는 경찰서는 형사과장이 불려가 대책을 보고해야 한다. 민망한 팀장들이 '최소한 꼴찌는 면해야지…'라고 생각하지 않겠나"라고 했다. 양천서에 따르면, 논란이 된 강력5팀은 평균 연령이 가장 어리고, 특히 마약사건 실적이 뛰어난 팀으로 알려져 있다.

인권위는 내주 초 이번 고문 의혹에 대해 대검찰청에 정식으로 고발하고 수사의뢰를 요청할 계획이다. 경찰청도 검찰 수사와는 별도로 해당 경찰관들을 개별적으로 불러 감찰 조사를 벌이고 있다.

검찰은 19~20일쯤 고문 의혹을 받고 있는 경찰관 5명을 피내사자 신분으로 소환해 조사할 계획이다. 남부지검 이영렬 차장검사는 "월요일쯤에는 (고문 의혹을 받고 있는 경찰관들이) 피내사자 신분에서 피의자 신분으로 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