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검경 수사권 조정에 관한 공청회'.
언론은 이 공청회에 대해 '야유…고성…막가는 檢·警(조선일보 4월 12일자)' 등 사안의 실체보다는 흥미진진한 '싸움'에 대한 스케치만을 하고 있다.
기자는 경찰이다. 하지만 기자가 당연히 경찰편을 들겠지하는 선입견을 가진 독자라도 '도대체 왜들 저러나?'하는 의문이 가시도록 쉽게 이 공청회에서 나온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한다. 367쪽에 달하는 공청회 자료집을 모두 읽거나 공청회장에 올 수 없었던 국민들에게 경찰측 주장을 전달해 보겠다.
합의는 했으나 규정은 안된다
경찰에게 수사에 대한 자율권을 부여한다는 것은 양측 모두가 검경수사권조정자문회의를 통해 합의한 사항이다.(조국 검경조정자문위원, 검경 수사권조정에 관한 공청회 자료집 245쪽)
그러면서도 검찰은 논밭의 소유권은 그대로 검찰주인에게 놔두고 경찰은 소작을 하라고 주장한다. 경찰은 소작이라도 좋으니 토지문서에다 적어달라는 것이다. 나중에 소작하고 있는 곳에다 검찰주인이 '팥심는다, 콩심는다'하고 비켜달라면 비켜줘야 할 판이니 명문으로 약속해 달라는 것이다.
그 토지 문서는 형사소송법 195조와 196조다. 현재는 '검사만이 수사주체이고(195조), 사법경찰관리는 검사의 지휘를 받아 수사를 하여야 한다(196조)'라고 규정되어 있다.
경찰의 순수한 요구는 '수사현실을 고려하여 검사와 경찰을 함께 수사주체로 규정하고(195조개정), 인권침해 방지와 공소유지에 필요한 검사의 감시와 지시는 받겠지만 서로 다른 기관이니만큼 현 명령복종관계를 나타내는 '지휘'란 말을 '협력'이란 말로 바꾸어 달라(196조개정)'는 것이다.
검찰, 경찰요구 다 들어주어도 195조와 196조는 '글쎄'
일단 검찰의 전략은 선거공약으로 국정과제가 된 수사권 논의를 피할 수 없으니 응하되, 될 수 있으면 중요한 쟁점이자 관건인 195조와 196조에 대해서는 지연시키거나 희석시키자는 의도로 보인다.
그렇게 보는 이유는 지난 9월부터 시작되어 9차례 열린 검경협의체 회의와 지난 12월부터 13회에 걸쳐 열린 검경수사권조정자문회의에도 불구하고 정작 수사권 조정문제의 요체인 195조와 196조에 대한 논의는 공청회 직전에서야 정식으로 안건이 될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이 날 공청회에서는 우선 검찰측 자문위원으로 있으면서 공청회 사회를 본 서경석 목사가 스스로 검찰측 자문위원임을 언급하면서 "경찰과 검찰의 자료는 둘 다 못 믿겠다. 이 말 들으면 이 말이, 저 말 들으면 저 말이 옳은 것 같다. 그러나 진실은 하나일 것이라고 믿고 있다. 자문위원들이 외국에 가서 직접 확인해 봐야겠다. 1년을 더 논의해봐야 한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청와대에서 결단을 내리는 것은 안된다"고 격앙된 목소리로 주장하였다.
이에 검찰측 토론자들은 195조와 196조의 개정은 절대 안되지만 논의의 연장에는 찬성하는 발언을 하였다.
이러한 논의에 대해 경찰측 이동희 교수는 "그러면 외국에 어느 수사권 제도라도 검찰이 골라 준다면 경찰은 그대로 만족할 것이다"라며 한국과 같은 검-경 지배복종 관계는 어디에도 없음을 암시하였다.
경찰의 요구와 주장은 무엇인가?
흔히 수사권하면 떠올리는 긴급체포장과 각종 영장의 직접 청구권, 수사종결권에 대한 요구는 제기되지도 않았다.
실제 경찰의 원안에는 검사에게 수사상 일반적 기준 제정권을 부여하여 법집행의 통일성과 형평성을 확보하겠다고 되어 있다. 그리고 송치후 공소유지에 필요한 보완수사요구권, 각종 영장청구권, 구속장소 감찰권, 긴급체포사후승인권, 검사의 사건 종결권(기소할 것인가 말것인가 등의 판단문제) 등 검사가 경찰을 인권보호측면에서 감시하고, 법률적용의 적정성과 수사상 적법절차 등 공소유지에 필요한 권한을 행사하는 것은 지금처럼 그대로 검찰에게 맡긴다는 말이다.(경찰청 기획수사심의관 김학배 경무관, 위 공청회자료집 20쪽)
이러한 경찰의 원안은 토론자 중 경찰측 발제자로 나선 서보학 교수의 안보다는 축소된 수사권을, 조국 교수의 안보다는 범위가 넓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조국 교수는 '송치 전 수사지휘는 강제처분 및 중요범죄로 한정하여 경찰수사의 자율성을 완전 보장한다(검경 수사권조정자문위원회 안건 제7, 16호의 1 참조)'는 합의를 살려, 사법경찰관리의 수사개시·진행권을 확인하는 일반적 법적근거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위 공청회 자료 250쪽).
단 검사의 수사지휘권은 중요범죄에 집중해 행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위 공청회 자료 255쪽)
검찰 "수사권 분배는 인권침해 초래"
이러한 경찰과 경찰측 토론자의 제안에 검찰과 검찰측 토론자는 한마디로 '씨도 먹히지 않는 소리'라고 일축하였다. 경찰의 수사권 독립(현재 경찰은 수사권 현실화란 용어를 주로 쓰지만 이 용어는 검찰측 주장에서 더 자주 쓰였다) 주장의 실체는 '치안과 사정'을 독점하고 국민의 권익을 도외시한 경찰측의 조직이기주의며, 검사 지휘 배제를 통해 행정 경찰이 사법 경찰을 장악하려는 의도의 딴 말일 뿐이라는 것이다.(대검찰청 수사정책기획단장 김회재 검사, 위 자료집 138쪽)
그리고 불필요한 7대 이유(위 자료집 139쪽 이하), 경찰 수사권독립으로 초래될 8대 폐해(위 자료집 143쪽 이하) 등 수사권 분배는 경찰을 비대화시키고, 심각한 인권침해를 초래하며, 수사권을 이원화하고 국가조직체계 난립 우려가 있으므로 절대 195조와 196조 개정논의는 안된다는 것이다.
검찰 "이래서 경찰은 안된다"
이밖에 공청회장에서 검찰측 토론자는 박종철 사건이 검사의 적정한 수사지휘로 세상에 알려져 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되었다고 말하는 등 경찰의 초동수사 미진과 인권침해를 폭로하는 데 주력하였다.
이러한 태도는 여타 토론자들에게 지적되었고 인권에 대해서는 경찰못지 않는 검찰이 어떻게 박종철 사건까지 들먹이냐는 항의에 장내가 잠깐 술렁거리기도 하였다.
또 경찰의 잘못된 사례를 지적하다가 검찰의 잘못도 함께 인정해버리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경찰이 신청한 영장이 기각된 사례를 이야기하면서 법원에 의해 기각당했다고 말해 뻔히 검찰이 청구한 영장이 기각당했음이 드러나기도 했다.
경찰은 검찰에 영장청구할 것을 건의할 수 있을 뿐이지 법원에 직접 영장을 청구하는 것은 검찰이다. 뻔히 수사를 지휘하는 검찰이 청구한 영장이 기각된 것을 경찰탓으로 돌리는 해프닝이었다.
마찬가지로 한 살인사건이 경찰의 초동수사 때문에 무죄가 될 수 밖에 없었다는 언급에 같은 토론자로부터 '살인 등 극히 중요한 사건인데 왜 애초에 현장에 나와 수사지휘하지 않았느냐'는 모순을 지적당하기도 하였다.
한편 자유토론자로 나선 하창우 변호사(변협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나 변협에서 추천받았다고 자기소개)는 최근 경찰이 수사과정상의 변호인 조력권을 실제로 인정해주는 등 달라진 점이 많다고 일단 경찰의 노력을 인정하고 수사과정상 변호인 참여를 반대했던 검찰에게 재고를 요구하였다. 그러나 자신이 의뢰받은 사건을 접하면서 겪은 사례를 열거하며 경찰의 법률지식과 수사능력상의 자질을 비판하였다.
경찰과 검찰이 서로 경쟁하면?
서보학 교수는 하창우 변호사의 '경찰수사상 변호인 참여권 보장'과 관련된 언급을 인용하면서 그렇게 검찰과 경찰이 수사권을 두고 '견제와 균형'이란 관점에서 경쟁하다보니 두 기관 모두 국민의 인권보호와 편의제공에 기여하는 것 아니냐는 논리를 제시하였다.
차동언 의정부 지검 부장검사는 공판정에서 증거능력도 인정되지 않는 경찰조서를 작성하는 경찰의 입장에서는 쉽게 인정할 수 있는지 몰라도 검찰은 '증거능력' 등을 고려할 때 인정할 수 없다고 논박하였다. 인권보호측면에서는 몰라도 법리적으로는 곤란하다는 주장인 듯했다.
(차 부장검사의 말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아 법학박사인 전문가에게 질문하였더니 검찰이 반대하는 이유는 경찰 수사단계에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은 사실이 조서에 기재될 때는 법원에서 그 신빙성을 인정받아 검찰 조서의 효용성이 침해받을 수 있기에 검찰 조서의 신빙성을 인정받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수사의 효율을 저해하는 변호사 참여가 불필요하다는 뜻이 아니겠느냐고 의견을 제시했다)
특히 차동언 검사는 수사권에 대한 경찰의 반발이 검사들의 고압적 태도 때문이라면 그것은 내부 징계 등으로 고칠 수 있는 것 아니냐며 검찰의 지휘는 전인격적인 지배복종 관계가 아님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경찰이 수사를 잘하면 검사들이 칭찬도 해주고 표창도 줄 것이고 못하면 혼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냐는 이야기로 검찰과 경찰의 관계를 '선생님과 학생', '부모와 자식'의 관계임을 내비치기도 하였다.
공청회장 안의 소란, 그 배경과 진실
일부 언론에서 고성과 고함, 장내 소란으로 묘사한 부분의 배경과 실제는 이렇다. 사회자인 서경석 목사가 공청회 시작 전 검찰총장과 경찰청장 연설 뒤의 양측의 박수소리를 빗대어 '경찰이 더 많이 동원되었네요'하자 연단 밑에서 '동원되지 않았습니다'라고 응수하면서 미묘한 신경전이 시작되었다.
서경석 목사는 나중에 검찰에도 비슷한 언급으로 상황을 수습하였다. 사실 경찰측에는 검경이 서로 약속한 인원(동원된 인원) 이외에 전남, 전북, 경남, 부산, 강원 등 지방에서 휴가를 내거나 밤새워 근무하고 자발적으로 참석한 경찰관들이 적지 않았다.
뒤이어 김학배 경찰측 기조 발표자가 할당된 시간을 넘기지 않은 데 비해 김회재 검찰측 기조 발표자가 할당된 시간을 넘겼으면서도 계속 발표하자, 연단 아래서 이의가 제기되었고 이에 사회자가 제지했으나 계속 발표문을 읽는 과정에서 소란이 있었다.
양측 토론자와 사회자의 언행에 따라 박수소리가 났으나, 토론자와 사회자의 제지로 박수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간헐적으로 몇몇이 박수를 치는 정도였다. 발표자가 지나치게 폭로 위주로 나아가자 잠시 장내가 술렁이었을 뿐 별다른 반응은 없었다.
그러나 문제는 플로어 토론이 시작되자 발생하였다. 플로어 토론은 할당된 시간이 20분이었으나, 여느 토론회가 그렇듯이 그 할당된 시간이 부족하였다. 사회자로서도 무척 고민되는 듯 경찰측과 검찰측이 번갈아 질문할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경찰측에서는 경찰대에 근무하는 헌법학 교수가 토론자에게 질문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그 다음 지명된 검찰측 질문자가 질문보다는 일본의 어느 기자가 쓴 경찰 비난 서적을 내보이며 '수사권이 있는 일본 경찰은 이렇게 썩어가고 있다'는 요지의 주장을 하였다. 짧게 해 줄 것을 요구하는 사회자 제지에도 불구하고 원색적인 주장을 펼쳤다.
이때 '여기가 일본이냐?'는 등의 고성이 경찰측에서 튀어나왔고, 뒤이어 지명된 경찰관이 앞선 검찰측과 똑같은 분량을 이야기하겠다고 나섰다.
"검찰의 무책특권을 없애자"
그 노 경찰관의 항변은 거칠고 울분을 토하는 것 같았다(그 노경찰관은 필자와 친분이 있다. 지방에서 근무하고 있고 50대다). 모 방송에서 지난 토요일 방영한 '김태촌과 관련한 검사의 커넥션'을 일례로 들며 국회의원의 면책특권과 같은 검사의 무책특권(검사의 비리는 아무도 수사하지 못한다. 사람이 죽지 않는 한)을 없애자는 요지였다.
지금까지 경찰관들은 뻔히 보면서도 지배복종관계의 고착으로 아무런 말도 내뱉지 못하지만 앞으론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서라도 알리겠다는 취지였다. 사회자의 제지가 있었고 실랑이가 있었다.
다음 검찰측 질문자는 경찰의 수사권이 독립되면 여타 사법경찰관(국가 부처의 기능에 맞는 사법경찰관리들이 있다. 국세청, 출입국, 산림청 등등)도 똑같이 적용되면 부작용이 없겠느냐는 요지였다.
경찰과 검찰이 싸우면 국민이 불안하다?
기자가 보기엔 검찰이 제기한 경찰수사의 문제점은 경찰도 겸허히 수용해야 할 부분이 분명히 있다. 경찰 내부에서도 공감하는 부분이 많다. 그리고 수사권 조정 논의가 공론의 장으로 나온 이상 과거처럼 경찰관의 비리가 폭로되고 검찰에게 체포를 당하는 경우도 예상하고 있다. 경찰이 과거와 달라진 것은 그런 분위기를 피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메기론(물고기를 오랜 시간 수송할 수 있을 만큼 강하게 하려면 그 물고기 속에 그들을 잡아먹는 메기를 넣어야 한다는 이야기)'을 긍정하는 내부 여론이 만만치 않다. 비리, 무능력, 부패 경찰관들을 도태시켜야 한다는 인식도 보편적으로 형성되어 있다. 수사권 조정 논의과정에서 경찰에 상처가 되는 것은 동시에 보약도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언론에서 말하는 경찰청장의 최근 언행은 이러한 신념과 자신감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과거 민주화 과정에서도 기득권이 내세우는 것은 '국민이 불안해 한다'는 것이었다.
이제 국민이 보기엔 인권이나 수사에서 별로 나을 것도 없는 거대한 권력기관이 국민을 심판으로 두고 싸울 것이다. 그 싸움 속에서 입는 상처는 바로 그 권력기관에서 떨어져 나와야 할 것들이다. 국민이 그토록 없애고자 하는 것을 두 괴물이 서로 물고 뜯을 것이다. 그 싸움이 어느 정도 진정되는 순간 국민 앞에는 좀더 유연해지고 국민의 눈빛을 두려워하는 두 권력기관이 서 있을 것이다.
그것이 견제와 균형이다. 진통 없이 그것은 달성되지 않는다. 그 진통은 도도히 흐르는 역사 속에서 이미 멈추지 못할 만큼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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