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을 절독하면서
권력을 비판하고 감시하는 것이야말로 언론의 가장 기본적인 사명이라는 데 동의한다. 언론은 권력을 갖지 않은 자의 편에 서서 권력을 가진 자의 횡포나 전횡을 견제함으로써 사회정의에 기여하는 것이다.
상대방을 복종시키는 강제력을 권력이라고 부른다면 그것은 다분히 상대적인 개념이다. 상대적이라는 말은 우선 권력이 이동할 수 있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한때 유명브랜드를 생산하는 업체는 유통업체에 대하여 권력자였다. 생산업체에서 입점을 거부하면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는 유통업체로서는 생산업체가 요구하는 진열방법이나 판매가격을 따라야만 했다. 그러나 월마트를 비롯한 대형 유통업체의 등장으로 권력은 이동하였다. 이제 생산업체로서는 유통업체에서 요구하는 납기, 가격, 품질, 포장 등에 맞추지 않으면 입점거부를 당할 처지가 되어 버렸다.
권력의 상대성
권력이 상대적이라는 말이 내포하는 두 번째 의미는 상대에 따라 누가 권력자인지를 달리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노가다 십장은 인부에 대해서는 권력자일 것이지만 현장소장에 대해서는 전혀 권력자가 아니다.
크든 작든 경찰은 국민에 대해서 일정한 강제력을 행사한다. 이런 의미에서 경찰은 국민에 대하여 권력자이며, 따라서 언론의 비판과 감시의 객체이다. 그러나 주지하다시피 무소불위의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검찰 앞에서 경찰은 전혀 권력자가 아니다.
권력자가 아닌 경찰이 권력자인 검찰과 갈등을 빚고 있다. 그렇다면 언론으로서는 의당 권력자가 아닌 경찰의 편에 서서 권력자인 검찰의 횡포와 전횡을 비판하고 감시해야 옳다. 그래야 비로소 양자 간의 힘의 불균형이 보정되어 공정한 게임이 가능하게 되는 거다.
그런데 여기 권력자인 검찰의 편에 서서 끊임없이 경찰을 비난하는 언론회사가 있다. 우선 그 사례 몇 개를 살펴보자.
사례 1
지난 9월 15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검경 수사권 조정 입법공청회」에 많은 경찰관들이 참가했다. 언론이라면 최소한 그 공청회의 취지가 무엇이며 내용은 어떠하였는지를 짚어 보았어야 옳다.
그런데 이 언론회사는 그러한 본질적인 문제에는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단순히 경찰관들이 많이 참석했다는 이유로 마치 불법적인 시위라도 한 것인 양 매도하기에 급급하였다. 이는 지난 9월 20일 그 언론회사의 기사에 사용된 어휘들만 살펴봐도 분명하다.
[일탈된 행동, 아수라장, 국민의 따가운 눈총, 시위, 집단행동]
공청회가 왜 열렸는지, 그 내용은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이 입법활동의 일환으로 개최한 공청회에 초청을 받고도 단 한 명도 참석하지 않은 검찰의 무성의와 오만에 대해서도 아무 말이 없다.
이 기사는 오로지 경찰관들이 일탈된 행동으로 공청회장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었으며 국민의 따가운 눈총에도 아랑곳없이 시위나 다름없는 집단행동을 벌였다고 성토하고 있다. 이건 명백한 사실 왜곡이다. 도대체 경찰관들이 왜 휴가를 내거나 금쪽같은 비번날 제 돈 들여가며 전국에서 찾아왔는지 그 오뇌와 비원을 헤아리지는 못할망정 이런 왜곡으로 권력자인 검찰을 이롭게 하는 짓을 언론이 하면 안 되는 거다.
사례 2
그 언론회사의 11월 11일 기사다. 제목을 「검경갈등 ‘수사공백’ 커진다」라고 뽑았다. 내용을 보니 다음과 같은 사례들을 ‘갈등실태’라고 소개하고 있다.
△ 검찰이 수배한 피의자를 경찰이 검거하면 지금까지는 검찰청까지 데려다 주었으나 요즘에는 “직접 데려가라”며 호송을 거부한다.
△ 전주지검 모 지청의 검사가 민생침해사범 실태 파악 및 단속을 위해 검경합동회의를 제안했으나 관내 경찰서가 바쁘다는 이유로 회의 참석을 거부했다.
△ 충청권의 한 지방검찰청에서 ‘살인미제사건’ 목록 제출을 요구했으나 경찰로부터 “자료를 제출해야 할 의무가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 검사가 유치장 감찰을 나와 즉결심판 서류나 파출소 신고접수 대장, 내사서류 등 일반 사건의 수사기록까지 열람하는 경우가 많은데 요즘은 경찰이 ‘피의자만 보고 가라’며 거부하는 사례가 잦다.
기사 내용만 보면 ‘팩트’만 보도한 것처럼 보인다. 어쨌든 그러한 갈등이 빚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므로 객관적인 기사인 것 같기도 하다.
그렇지만 「검경갈등 ‘수사공백’ 커진다」라는 기사 제목과 함께 보면 이 기사는 결국 위와 같은 갈등 때문에 수사공백이 커진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기사를 읽는 국민들이 염려할 만한 내용이다. 수사권 때문에 촉발된 갈등으로 인해서 수사공백이 생기는 것을 누가 바라겠는가. 지금까지 아무 문제가 없던 일을 새삼스레 걸고넘어지는 경찰에 비난의 화살이 꽂히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이것이 과연 아무 문제가 없던 일이었고, 이것을 걸고넘어지는 경찰 때문에 수사에 공백이 커지는가?
△ 수배자 호송 거부 : 수배란 행방이 묘연한 피의자를 찾아달라고 부탁하는 공조요청이다. 수배된 피의자를 검거하면 당연히 “피의자를 찾아달라”고 부탁한 관서(수배관서)에서 데려가는 게 순리다. 경찰관서끼리는 물론이고, 해양경찰청, 군 헌병대, 철도 공안, 노동부 근로감독관, 산림청 등과 같이 수사를 담당하는 모든 기관은 이 원칙에 예외 없이 따르고 있다.
그런데 유독 검찰은 아무 근거 없이 자기들이 데려가야 마땅한 수배자를 검거관서에게 데려오라고 요구하여 왔다. 이런 엿같은 경우가 어디 있는가?
이로 인해 수사공백이 생긴다는 발상은 난센스다. 경찰이라고 해서 놀고 있는 인력이 따로 있을 리 없다. 다른 기관의 수배자를 데려다 주느라고 허비하는 시간 동안 그 경찰관의 수사가 오히려 공백이 생기는 것이다. 검찰청 수배자 데려다 주느라고 형사들이 관할구역을 이탈한 사이에 사건이 발생하면 누가 수사하는가?
검찰은 인력이 부족해서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그것은 이유가 되지 않는다. 지금 APEC 때문에 인력이 부족한 부산 지역 경찰은 24시간 맞교대 비상근무를 하고 있다. 경찰이 인력이 딸린다고 검찰한테 대신 근무해 달라고 할 수 있겠는가? 인력이 부족한 것은 그들이 해결해야 할 그들의 문제이다.
따지고 보면 인력이 부족한 것도 아니다. 2004년을 기준으로 검찰의 수사인력은 4,576명으로서 경찰 수사인력 16,882명의 27.3%에 달한다. 그러나 검찰이 사건을 직접 처리한 건수는 39,987건으로 경찰이 처리한 1,646,195건의 2.4%에 불과하다. 도대체 무슨 근거로 인력이 딸린다고 하는 지 이해할 수 없다.
△ 검경 합동회의 참석 거부 : 민생침해사범 실태 파악 및 단속을 위해 합동으로 회의를 하자고? 그건 무척 오만한 짓이다. 반대로 경찰이 회의하자고 검사한테 오라고 하면 오겠는가? 민생침해사범 실태를 파악하고 싶으면 자기들 발로 뛰어서 파악해야 한다. 혹시 도움이 필요하면 도와 달라고 정중히 요청할 일이지 고압적으로 “오라, 가라”하는 것부터 기본자세가 글러먹은 것이다.
그런 류의 회의에 참석해 본 일이 있다. ‘학교 폭력 대책 회의’였다. 말이 회의지, 상석에 앉은 검사로부터 지시를 하명 받는 자리였다. 거기에 참가한 교육청 간부, 시청 간부들이 모두 검사의 부하 취급을 받았다. 그런 자리에 참석을 거부한다고 수사공백이 생기는가? 오히려 거기에서 ‘길들임’을 당하는 시간에 정작 수사공백이 우려될 뿐이었다.
△ 살인미제사건 목록 제출 거부 : 미제사건은 범인이 누구인지 밝혀지지 않은 사건이다. 아직 범인이 밝혀지지 않았으므로 ‘내사단계’이다. 내사단계에서 검찰의 지휘를 받을 이유가 없을 뿐 아니라 그 목록은 경찰이 필요에 의해 만든 자료일 뿐이므로 검찰에게 제출할 이유도 없다. 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해 보자. 경찰이 검찰에게 ‘미처리 사건 현황 목록’을 제출하라면 제출하겠는가?
검찰은 수사에 관하여 지휘를 하는 기관이지 경찰의 사무감사를 하는 기관이 아니다. 그러한 제도 이상의 요구에 응하느라 경찰의 수사공백이 생기는 것이다.
△ 유치장 감찰시 일반 사건 기록 제출 거부 : 검사의 유치장감찰의 근거는 형사소송법 제198조의2다. 그 제1항에는 “감찰하는 검사는 체포 또는 구속된 자를 심문하고 관련서류를 조사하여야 한다”라고 규정되어 있다. 또 제2항에는 “검사는 적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 체포 또는 구속된 것이라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는 즉시 체포 또는 구속된 자를 석방하거나 사건을 검찰에 송치할 것을 명하여야 한다”라고 규정되어 있다.
이 조문을 보면 검사에게 유치장 감찰권을 부여한 이유는 “불법 체포,구금된 사람”을 찾아내라는 것이다. 그러면 우선 구금된 자를 면담하고, 그 구금된 자와 관련된 사건서류를 열람하면 되는 거다. 그런데도 검사는 지금까지 구금된 자와는 아무 관련도 없는 ‘파출소 신고 접수 대장’이나 ‘미제사건 기록’심지어 ‘파출소 근무일지’까지 제출하도록 요구했다.
검사에게 유치장 감찰을 하라고 했지, 언제 사무감사를 하라고 하였는가? 이러한 제도 이상의 요구에 응하는 사이에 수사공백만 커질 뿐이다.
지금까지 기사에 소개된 사례들로 인해서 전혀 ‘수사공백’이 생기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검찰의 근거 없고 부당한 요청을 거부하는 것이 경찰의 ‘수사공백’을 최소화하는 것이라는 점을 설명하였다.
이러한 것들이 그동안 “아무 문제없이 지나던” 일들이라고 생각하는가? 검찰에 의해 공공연히 행해진 부당한 호송요구, 회의참석 요구, 서류 제출 요구 등은 지난 60년간 경찰에게 굴욕적인 것이었다. 때문에 줄기차게 그 시정을 요구하였다. 특히, 작년 9월부터 검경 수사권 조정 협의과정에서 의제로 상정되어 논의되어 왔고, 금년 6월 법제처에도 법령정비를 요청하였다.
그러나 검찰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검찰이 경찰의 개선요구에 대해 진지하게 경청하였다면 진즉에 해결될 문제들이었다. 아무리 말해도 들은 척도 하지 않는 저들의 오불관언에 지쳐 이제는 경찰관들이 몸으로 거부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런데도 갈등의 원인이 경찰 때문이라고?
언론이라면 이러한 상황을 앞에 두고서 좀 더 진지하게 고민했어야 했다. 원인이 무엇인지, 어디가 잘못된 것인지에 대한 아무런 고민도 없이 쉽게 돌출적‘갈등’으로 규정하면서 아무 근거 없이 수사공백 운운하는 것은 심히 공정하지 못한 처사이다.
사례 3
그 언론회사는 11월 14일 사설에서 위 사례2의 사례를 다시 다루고 있다. 사설은 “일련의 경찰행태는 여러 모로 옳지 않다”고 전제한 다음, “정부내에서 법과 절차에 따라 처리해야 할 일을 계속 시위하듯 나서는 것은 법을 집행하는 경찰의 정도가 아니”라고 꼬집는다. 나아가 “경찰은 작금의 모든 행동을 중단하고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한다”라고 충고한다.
그런데 그 사설을 쓴 위인이 생각하는 ‘경찰의 원래의 모습’이라는 것이 “검찰의 손발 역할”, “검찰의 심부름꾼”이란다.
나는 이미 위에서 경찰이 이러한 문제들을 “정부 내에서 법과 절차에 따라 처리하려는 노력”을 지속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검찰의 오불관언 때문에 전혀 시정되지 않았음을 설명하였다.
어떤 사람이 전기요금을 내지 않으면 한전에서는 독촉장을 보낸다. 그래도 계속 내지 않으면 “단전 조치”를 경고한다. 그래도 경고를 무시하면 한전으로서는 전기를 끊는 도리 밖에는 없다.
지난 수십년 동안 검찰의 부당한 요구를 들어주면서 경찰은 그 시정을 요구해 왔다. 그런데도 들은 척도 안하는 이상 경찰로서는 그 요구를 거부하는 외에는 달리 방도가 없다. 이것을 “시위하듯”이라고 표현하는 그 편리한 두뇌 구조가 부럽다.
이제 경찰은 국민의 손발, 국민의 심부름꾼이고 싶다. 무소불위의 권력자 검찰의 손발이나 심부름꾼이기를 거부한다.
사례 4
그 언론회사는 11월 15일 “警, ‘근속승진’ 조직적 로비”라는 제목의 기사를 냈다. 경찰관들이 일정 연한을 근무하면 승진하는 내용의 경찰공무원법 개정안의 국회 행자위 심의를 앞두고 전현직 경찰관들의 모임인 ‘무궁화 클럽’이 국회의원들을 상대로 로비를 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우선 입법을 담당한 국회의원들을 상대로 그 이해당사자가 자신의 의견이나 지지의사를 피력하는 것이 왜 문제가 되는지 묻고 싶다. 더구나 그 이해당사자들은 평생 동안 아무 잘못 없이 근무해도 경사로 퇴직할 수밖에 없는 불합리한 제도에 신음하고 있는 하위직 경찰관들이다.
그들이 요구하는 것은 특혜가 아니다. 그저 다른 공무원들과 형평에 맞는 대우를 해 달라는 것뿐이다. 그런데도 그와 같은 피맺힌 절규를 ‘로비’라고 폄훼하는가? 아무 데도 하소연할 곳 없는 하위직 경찰관들은 그저 “입 다물고” 주면 두는 대로 먹든지 말든지 하라는 뜻인가?
‘로비’라는 것은 고급 룸싸롱 같은 데서 주지육림을 베풀거나, 사과박스에 빳빳한 만원자리 가득 담아서 차 트렁크에 담아주면서 부탁하는 따위의 음습한 청탁을 말한다. 적어도 한국에서의 용례는 그렇다. 국회의원 홈페이지에 글을 쓰고, 국회의원을 방문해서 호소하는 소박한 행위가 당신 눈에는 ‘로비’로 보이는가?
나의 다짐
이상으로 언론의 정도에서 벗어난 한 언론회사가 권력의 편에 서서 왜곡 편파 보도로 경찰 때리기에 매진하는 실상을 확인해 보았다. 그 언론회사의 이름은 ‘경향신문’이다.
왜 이러시느냐고 묻고 싶지도 않고, 이러시는 이유가 궁금하지도 않다. 오히려 나는 당신들의 횡포를 보면서 더욱 굳건한 결의를 다지게 되었다. 그 보답삼아 움직일 수 없는 분명한 팩트 두 가지를 알려 주겠다.
첫째, 검찰의 부당한 요구와 불합리한 관행에 대한 경찰관들의 저항과 거부는 계속될 것이다.
둘째, 스스로 언론이기를 거부한 경향신문을 독자로서 절독할 것이다. 나 뿐 아니라 내 사무실과 동료들, 그리고 일가친척 및 이웃들에게도 절독을 권할 것이다. 앞으로 경향신문을 구독하는 집안과는 거래도 하지 않고 사돈도 맺지 않을 것이다.
ⓒ 죽림누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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