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박근혜는 2012 대선을 3개월여를 남겨두기 전까지 좌파적 행동으로 일관해왔다.

그래서 필자도 그랬지만 우파 사이에서는 박근혜의 좌파적 포퓰리즘에 대한 비판이 많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대선을 3개월여를 남겨두고는 서해교전 전몰장병인 한상국 중사의 미망인 김종선씨를 찬조연설자로 케스팅하는 등 전에 없던 우파적 행보를 보이기 시작했고, 당선 후에는 윤창중을 대변인으로 채용한데서 애국우파 내에선 매우 고무적 현상으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당선되고 나서 왜 이리 조각인선이 더딜까 하면서도 행여나 딴에는 좌익야당의 청문회를 이용한 발목잡기를 절묘하게 극복하려는 깊은 생각이 있으리라고 믿었고, 그래서 거기에 맞춰 박근혜의 복안으로 예상되는 멋진 전략읽기식 논설들이 줄을 이었다.

가령, “기존 MB정부 내각을 그대로 활용”이라든지 “장관임명 안 하고 차관으로 대체”라든지 “서리체제” 등 많은 긍정적 비전을 담은 전략성 논설들이 줄을 이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전략이니 복안이니 하는 것은 애시당초 없었고, 좌파 포퓰리즘을 담은 과잉복지공약 이행을 고집하며 세수확보를 위한 묘안 짜내는 것 밖에는 없었다.

딴에는 우파성향의 인물로 조각하는 척하면서도 좌익야당이 일부러 대충 넘어가줄 만한 병역기피, 좌익성향 인물들을 그대로 등용했는데, 이번에 이들이 박근혜가 그렇게 강조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뭔지 알게 해줬다.

바로 3.26 천안함 전몰장병 추모식 갔다 온 지 단 하루만인 3월27일 “비핵화 조건없이 北지원·남북대화·경협 추진”이라는 통일·외교부 업무보고가 보도되었다고 한다.

그것도 미국이 “한국 뺀 美-北대화 없다”, “이제는 한국 중심”이라며 한반도 정책의 대전환을 선언하는 시점에 말이다.

신문기사를 대충 정리하면 그 내용이란 게 이렇다.

『 정부는 ‘선(先)비핵화’ 연계 없이 ‘대북지원, 남북대화, 낮은 차원의 경제협력’을 우선적으로 추진키로 했다.

정부는 이 같은 신뢰를 바탕으로 비핵화 회담과 대규모 경제지원을 함께 논의하는 방안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1단계 대북 인도적 지원, 2단계 농업·조림사업 등 낮은 수준의 사회경제 교류협력을 통해 남북 간 신뢰관계 형성, 3단계 철도·통신·인프라 건설 및 대규모 경제지원과 북핵 폐기를 위한 비핵화 논의’를 본격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통일부는 “비핵화 협상보다는 남북대화가 우선순위”라며 “현재 비핵화를 얘기하기 전에 인도적 지원으로 신뢰를 쌓아 물꼬를 트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류길재 장관은 단계적 이행방안으로 “인도적 문제의 실질적인 해결, 당국 간 대화 추진 및 합의이행 제도화, 호혜적 교류협력 추진, 개성공단의 국제화, 남북관계 진전을 통한 북핵문제 해결 기여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통일부는 ‘수출품에 대한 원자재 수입관세 환급 혜택’ 대상에 개성공단 입주기업을 포함시키는 방안을 보고했다.

외교부 고위 관계자도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3단계에 가면 북한 비핵화와 연결돼 대규모 대북지원을 하는 비전코리아 프로젝트가 추진된다”고 설명했다.

박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벽돌을 하나하나 쌓듯이 신뢰를 바탕으로 남북관계를 차근차근 발전시키고 지속가능한 평화를 만들어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최근 북한의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이후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압박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북핵 폐기를 위한 비핵화 의제를 후순위로 밀어 놓았다는 데서 종북성 정책임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도 문재인보다 나을 거라는 생각에 애국우파 내에서는 박근혜의 과거 좌파포퓰리즘으로 회귀할까 염려되어도 대선 전 3개월여 시점부터 박근혜가 우파성 발언을 해왔던 점을 참작하여 박근혜 정부의 성격을 행여나 예단하지 않으려고, 빠르면 3~4월, 아니면 이명박이 재임기간 내내 불참했던 5.18이나 6.15, 멀리는 10.4때까지 더 지켜보자며 기다리려고 했다.

그런데, 가장 빠른 판단보류 시한이 도래하기도 전에 예단이 아니라 판단을 할 수 있게 되어버렸다.

우파들이 그렇게 걱정하며 주시했던 류길재의 종북성이 곧바로 냄비뚜껑을 들썩인 것이다.

이렇게 되면 4.3 행사에 초대받은 박근혜의 발언을 예상하기도 싫다.

이제 어떡할 텐가?

“지하경제 양성화” 모드로 좌익들의 뜯어먹기 본능을 채워줘 가며, 북괴의 군사도발에 의하여 잡아먹히기 전에 스스로 뜯어 먹혀주려고 발광을 하고 있다.

국제사회라는 남들은 북괴의 도발 앞에 발을 동동 구르는데, 정작 북괴의 핵 공격을 비롯한 군사도발로 한층 위협받는 처지에 사이버테러를 시작으로 농락당하는 당사자이면서도 스스로 뜯어 먹혀주고 싶어 안달인데, 이 정도면 신인들 도울 방도가 없다고 본다.

게다가 거짓선동의 기수 방송포털이 건재하고, 얌체 법조계가 판치는 이 따위 평시시스템 가지고는 선거 백번 해봐야 뭘 바라겠는가.

10여 년 전 노무현 집권 때 조독마(조선일보 독자마당) 논객 중 한 분이 우리나라의 공산화를 우려하다가 결국 이민가면서 ‘그래 잘해보시오’식의 마지막 글을 올렸던 사실이 생각난다.

아, 그 사람의 선견지명이 틀리길 기도해본다. 제발 전쟁이라도 일어나서 판이 뒤집혀졌으면....<끝>

<부추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