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마음 먹기에 따라 앞으로 운명이 바뀐다. 평생 먹고 사는 데 문제없게 해주겠다."
이제 막 연예계에 입문한 신인에게는 뿌리치기 힘든 '검은 손의 유혹'. 소문으로만 나돌던 연예계 성상납 제의는 분명히 존재했다. 또 그 상대가 정치권 최고 실력자이고 중간 '알선자'는 방송사 간부여서 더욱 충격적이다.
"'소문이겠지' 했던 일이 실제로 저에게 일어났어요. 정말 무서웠어요. 결국 일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렵게 자신이 경험했던 일을 털어놓은 주인공은 지난 98년 미스코리아 미에 당선된 이정민. 10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이정민의 경험담은 처절한 것이었다.
이정민은 미스코리아에 당선된 그해 팔등신 몸매와 빼어난 말솜씨를 앞세워 KBS 2TV <서세원쇼>, MBC <일요일 일요일밤에>, SBS <기쁜 우리 토요일> 등 공중파 3사에 연달아 출연하며 주목을 받았다.
"정말 재미있고 즐거웠어요. 오라는 데도 많고 인터뷰 요청도 쇄도하고…. 그러다 어느 날 모 방송사 간부 A씨가 연락을 해왔어요."
A씨는 이정민에게 "말솜씨가 좋던데 DJ를 해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했고, 이정민은 "감사하다"며 이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DJ 제의를 받는 순간 저는 제가 정말 잘난 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게 아니었어요."
A씨는 이후 자신이 정치권 실세들과 가깝다는 말을 늘어놓은 뒤 "○○○씨가 너를 만나고 싶어한다"며 "네 마음 먹기에 따라 평생 운명이 좌우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A씨는 나중에는 노골적으로 "몸으로 먹고 사는 애들이 한둘이냐"며 "눈 한번 딱 감으면 너는 금방 톱스타가 될 수 있다"고 설득했다. 또 "그분은 미스코리아를 유난히 좋아한다. 올해는 네가 제일 예쁘다고 했다"는 말도 했다.
"저는 죽어도 싫었어요. 당시 (A씨가 속한) 같은 방송사의 쇼프로그램 메인 MC로 확정됐었거든요. 그런데 갑자기 MC가 다른 사람으로 바뀌었어요. 그 사람(A씨)이 그렇게 한 거였어요."
이정민은 '그 일' 이후 출연 제의가 뚝 끊어졌다고 말했다. 그리고 또 다른 미스코리아의 얼굴이 TV에 자주 나왔고, 라디오 DJ로 활동하는 등 탄탄대로를 걷고 있었다.
"A씨가 그렇게 해준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했어요. 그러나 후회는 없었어요.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어요. 저는 연예계를 떠날 수밖에 없었어요."
그 일이 있은 후 이정민을 소속사 배우로 영입하려는 일부 매니저들 역시 미팅 과정에서 "스폰서가 필요하다"며 '물주'를 만날 것을 은밀하게 권유하는 등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힘들다"는 말을 반복했다.
"A씨는 그렇다 쳐도 좋은 매니저들도 많다던데, 제가 복이 없었나 봐요."
이정민은 데뷔 초 악몽을 떨쳐버리고 이제 새롭게 시작하려 한다. 지난해 SBS 인기 드라마 <야인시대>를 통해 연기자 신고식을 치른 이정민은 "영화 출연 제의도 있고, 이런저런 활동 제의가 많이 들어온다"며 "모든 것을 털어놓으니 살 것 같다"는 말로 그동안의 마음고생을 대신했다.
백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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