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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오기가 탄핵사태 불러 4당대표와 회담 두차례나 거절"

“노무현 대통령의 오기 때문에 아무것도 되지 못했고 16대 국회도 제 할일을 못했다. 참담한 심정 금할 길이 없지만, 보다 나은 17대 국회를 만들기 위한 진통의 과정이라고 생각해달라.”
대통령 탄핵 과정을 주재했던 박관용 국회의장은 12일, 본회의가 종료된 후 서울 한남동 의장 공관에서 이뤄진 기자와의 단독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탄핵정국을 대화로 풀 수 있는 두 번의 기회가 있었지만, 노 대통령의 거부로 결국 국회법에 따라 표결강행으로 처리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헌정 사상 첫 탄핵안을 처리했는데.

“어떻게든 대화로 문제를 풀기 위해 지난 10일 낮 청와대 비서실장에 전화해서 노 대통령과 4당대표와의 회담을 간곡히 제의했지만 5시간 후 대통령이 ‘지쳤다’며 회담을 거절해왔다. 그 후 김원기 열린우리당 의원이 11일 오후 ‘의장이 제의했던 회담을 오늘 해도 되겠느냐’고 내게 물어왔지만 그 또한 대통령에 의해 거절당했다.

이날 밤 다수의 의원들이 제기한 탄핵소추안을 일방적으로 무시할 수 없어 나는 결심할 수 밖에 없었다. 또한 질서유지권 발동까지 검토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결심에 이르기까지 고통이 많았고, 지금도 고통스럽다.”

▲ 박관용국회의장이 국회경위들의 보호를 받으며 열린우리당의원을 제치고 단상으로 오르고 있다./ 정양균기자

―노 대통령이 왜 거절했다고 보나.

“대통령이 너무 안이하게 일을 처리한 것 같다. 나는 당초 4당대표와의 회담을 제의할 때 청와대도 좋고, 식당도 좋고, 밤에도 좋고, 아침에도 좋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그러나 대통령의 오기가 사태를 이렇게 만들었다. 그야말로 자업자득이다.”

―가결 직후 어떤 생각을 했나.

“착잡했지만 우리 국민의 높은 수준과 역량을 믿었다. 이번 탄핵 가결이 대단히 충격적이고 우려스런 일이지만 국민들이 잘 극복할 것으로 믿는다. 대한민국은 어떤 일이 있어도 전진해야 한다.”

―17대 국회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지금까지 국회가 국민들로부터 질타를 받고 우려를 받은데 대해 부끄럽다. 정치관계 3법을 만드는 등 개혁적인 측면도 잘 했는데 마지막에 최악의 모습을 보인 것은 너무도 안타까웠다.”

―탄핵안이 발의된 후 가결에 이를 것으로 생각했나.

“11일 대통령의 기자회견후 분위기가 달라짐을 느낄 수 있었다. 많은 의원들이 노 대통령의 기자회견에 대해 조소(嘲笑)하는 것을 보고 직감했다. 그동안 탄핵안에 반대했던 한나라당 소장파 의원마저도 돌아섰고, 특히 12일 아침 자민련 김종필 총재가 찬성쪽으로 방향을 잡으면서 통과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솔직히 나도 193표라는 많은 표가 나올 줄은 몰랐다. 대통령이 너무도 안일하게 일을 처리한 것 같다.”

―탄핵안을 처리할 때 원칙이 있었다면 어떤 것이었나.

“나는 국회법 절차에 따른 원칙에 충실하려 노력했다. 따라서 본회의의 사회를 봐야 했고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사회를 볼 수 있는 의장석을 점거한 상황에서는 절차를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대의정치는 국민들이 의원들에게 주권을 위임한 것이고, 그 뜻이 잘못된 경우에는 다음 선거에서 심판을 받는게 대의정치 원칙을 충실히 지키는 것이다.”

―여야에 대해 당부하고 싶은 말은.

“열린우리당 김원기 의원에게 ‘왜 이런 상황을 만들었느냐. 대통령을 만든 정당을 두개로 쪼갰고, 결국 자업자득 아닌가’라고 했더니 김 의원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내가 할 말이 없다’고 했다. 결국 대화로 모든 걸 풀지못한 것이 문제였다.”

―16대 국회가 가장 생산적이지 못했다는 평가가 있다.

“난 이번 탄핵 의결이라는 계기가 17대 국회의 구성에 큰 영향을 줄 것이라 믿는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면 미래가 없다고 했다. 앞으로 차분하게 17대 총선을 준비하고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기다리는 것이 바람직하다. 30여년의 정치인생을 마감하면서 이렇게 고통스러웠던 건 처음이다.”

박 의장은 탄핵소추 의결 후 발표한 담화문에서 “대통령과 국회의 대립이 대화와 타협으로 원만히 해소되지 못하고, 끝내 탄핵소추라는 불행한 사태로 이어진 것에 대해 입법부의 수장으로서 애석하고 참담한 심정 금할 길 없다”면서 “그러나 어떠한 경우에라도 다수결이라는 의회민주주의 기본원칙이 훼손되어서는 안 될 것이며, 오늘의 탄핵소추 의결은 헌법과 국회법의 규정과 절차에 따라 엄정히 이루어진 것임을 밝힌다”고 했다.

(권경복기자 [email protect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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