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은 소재로 만든 영화 ‘더 인터뷰’가 흥행에 성공하면서 아이러니를 낳고 있습니다. 북한이 이 영화를 비난하면 할수록, 또 상영을 막겠다고 엄포를 놓을수록, 영화 흥행은 더욱 잘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북한의 반발이 이어지면서 이 영화를 만든 소니픽처스는 연일 전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덕분에 그간 이래저래 되는 일 없던 소니도 오랜만에 웃고 있습니다. 사실 소니는 그간 주력이었던 전자 산업에서 매년 수 조원대 적자를 기록할 정도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영화 사업 역시 종합해보자면 그리 만족스러운 실적을 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최근에는 매각설까지 나오던 터였습니다.
소니는 많이들 아시는대로 본래 전자업체로 유명한 바로 그 일본 기업입니다. 이번 ‘인터뷰’를 만든 소니픽처스는 소니가 전자산업 분야에서 1등을 달리던 1989년 미국의 콜럼비아 영화사를 사들여 이름을 바꾼 것입니다.
미국인들의 우려와 달리 일본의 전자회사들은 미국 영화산업에 제대로 정착하지를 못했습니다. 이질적 조직 문화, 낯선 환경, 노하우 부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이들이 야심차게 내놓았던 신작들은 잇따라 흥행에 실패했습니다. 결국 고전 끝에 마쓰시타는 1995년 유니버설을 팔고 철수하는 결단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소니는 달랐습니다. 소니는 오히려 더 적극적인 투자를 단행했습니다. 업계에서도 제조업 마인드로 무장한 마쓰시타와는 달리 소니에 대해서는 남다른 기대가 남아 있었습니다.
하지만 역부족이었던 것 같습니다. 소니는 이후로는 작품성이나 흥행성 어느 쪽에서도 눈에 띄게 주목 받는 작품을 내놓지 못했습니다. 논란이 있긴 합니다만 어쨌든 미국 영화계에서 가장 훌륭한 작품으로 꼽는 아카데미 작품상의 경우, 소니의 인수 직전에는 마지막 황제(1987년), 간디(1982년), 또 올드 팬들에게 익숙한 아라비아의로렌스(1962년), 지상에서 영원으로(1953년) 등 많은 수상작들이 있지만, 소니의 인수 이후 24년간은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영화를 내놓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기적적으로 북한이 나타났습니다. ‘더 인터뷰’에 대한 북한의 거센 반발, 또 미국 정부에 따르면 북한의 소행이라고 하는 소니 본사 서버 해킹 사태가 벌어지면서 소니픽처스는 순식간에 전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까지 여러 차례 영화를 언급하면서 초특급 화제작이 된 것입니다. 북한 테러 위협으로 개봉관이 적게 잡히자 개봉한 일부 극장에 관객들이 몰렸고 인터넷에서 폭발적 유료 다운로드가 이루어졌습니다. 미국 언론들은 소니의 ‘더 인터뷰’가 ‘극장 개봉’을 최우선으로 하는 기존 영화 배급 공식을 깨트리고 새로운 배급 질서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습니다.
게다가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이 영화를 보는 것 자체가 미국의 자유의지를 지키는 것 내지는 민주사회에 대한 경각심을 다지는 것 같은 이미지까지 만들어주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외국 독재자가 미국 영화를 검열할 수는 없다”고 선언했고, 인터뷰를 보기 위해 영화관을 찾은 관객들도 “우리는 우리 자유 의지로 이 영화를 볼 권리가 있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사실 미국 영화평론가들 사이에서는 ‘더 인터뷰’가 영화적으로 잘 만들어진 작품은 아니라는 의견이 적지 않습니다. 영화 자체가 이슈고 북한 체제에 대한 비판은 높이살만하나, 드라마적으로 잘 구성된 영화라고 보기는 힘들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북한에서 그렇게 강하게 반발하지만 않았더라도 극장에서 저절로 사라지게 됐을 영화였을지도 모른다는 시각도 적지 않습니다. 소니는 지난 연말 크리스마스에 이 영화를 개봉하려 했었는데, 북한의 해프닝만 없었다면, 가족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미국인들이 크리스마스를 맞아 전세계 유일 독재 국가의 권력자가 비키니 차림의 미녀들과 파티를 벌이는 내용을 담은 영화를 보러갔을 가능성은 상당히 낮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아이러니하게도 북한이 그렇게 미워하는 소니픽처스가 예상보다 더 오랜기간 살아남는데 도움을 주게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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