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만요. 길 좀 비켜주세요." 백화점 9층에 있는 면세점 화장품 코너는 인파로 발 디딜 틈 없이 붐볐다. 이곳저곳서 아우성이 터져나올 정도였다. 중국인들이 선호하는 화장품으로 꼽히는 이니스프리 매장 앞에서는 고객 두 명이 옥신각신하기도 했다. 그 사이 직원들은 물건을 진열할 새도 없이 박스째 옮기기 바빴다.

◇ "한국 화장품, 좋다고 입소문 난지 오래됐죠"

'요우커'로 불리는 중국 관광객들이 국내 면세점에서 화장품을 싹쓸이 하고 있다. 설화수, 라네즈, 헤라 등 인기 브랜드 매장에는 평일에도 20~30명씩 줄을 길게 서는 경우가 다반사다. SK-II, 에스티로더, 키엘 등 해외 유명 브랜드 매장이 한산한 것과도 비교된다. 헤라 매장 앞에 대기줄은 엘리베이터를 가릴 정도로 형성돼 안내원이 통제하기 바빴다.

중국 남경에서 온 20대 진가려 씨는 "중국에서 (한국 화장품) 인터넷 광고와 수 많은 댓글들을 보고 구매 목록을 적어왔다"며 "헤라 매장에서는 3개 이상 살 수 없다는 규정 때문에 단품 보다 세트 상품들을 구매했다"고 말했다.

중국 상하이에서 휴가차 한국을 찾은 30대 변옥길 씨는 "중국에서도 한국 화장품을 구매 대행을 통해 애용했는데 효과가 좋아 지인들에게 하나씩 선물로 주려고 구매했다"며 웃었다. 그는 중국에서 미리 구해온 각종 할인쿠폰을 보여주기도 했다.

화장품이 불티나게 팔리면서 일정금액 이상 사면 사은품을 제공하는 행사장 앞에도 긴 줄이 늘어서는 풍경이 벌어졌다.

롯데면세점에서 중국어 통역을 맡고 있는 김향 씨는 "중국에서 '별에서 온 그대' 등 한국 드라마가 큰 인기를 얻으면서 한국 화장품에 대한 인기도 덩달아 치솟고 있다"며 "특히 한국 연예인들이 한 화장이 과하지 않고 자연스럽다는 점을 중국인들이 좋게 평가한다"고 말했다.

◇ "요우커 잡아라"…'한방'·'황금색'·'숫자 8' 마케팅

한국 화장품 업체들도 요우커를 잡기 위해 발빠른 마케팅을 준비했다. LG생활건강은 중국인들이 많이 찾는 한방화장품 '후'를 면세점 전용 특별세트로 준비했다. 이 중 '후 천기단 화현 880세트'는 숫자 8을 선호하는 중국인들을 겨냥했다. 숫자 8(八)의 중국어 발음은 'ba(빠)'인데 돈을 번다는 뜻을 가진 '발(發·fa)'과 발음이 비슷하다.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금색 용기도 강조한다. 중국인 관광객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 비단과 자개 장식의 패키지로 고급스러움을 더했다.

중국인이 선호하는 화장품 1순위로 꼽히는 한방화장품 설화수 매장은 공간을 추가로 확장했다. 설화수 매장은 9층 한켠에 자리잡고 있었으나, 늘어나는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고 11층에 추가로 매장을 냈다. 고객 한 사람 당 세트상품 10개, 2000달러 이상 구매하지 못하도록 제한도 뒀다. 일부 중국인이 '싹쓸이'하는 현상을 막기 위해서다.

롯데면세점에서 설화수를 판매하는 직원 이한나 씨는 "별다른 광고 없이도 입소문을 통해 중국 관광객들이 몰려오고 있다"며 "9층 매장의 하루 매출이 1억6000만~2억원 정도인데 이 중 90% 이상이 중국인에게서 나온다"고 귀뜸했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올 1~7월 한국을 찾은 중국인 관광객수는 336만1654명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105만6466명)보다 45.8% 늘었다. 중국 중추절 연휴와 인천 아시안 게임(9월 19일~10월 4일), 국경절 연휴(10월 1~9일)를 잇따라 앞두고 있어 중국인 관광객이 급증할 것이란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