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날 인사동 골동품 거리 뒷골목서 탁 배기 한 사발 하고 돌아왔다.

며칠 전부터 세면대의 下水가 잘 빠지지 않아, 공구함을 뒤졌으나 배관에 맞는 공구가 없었다. 작심하고 어제야 청계천 3가에 있는 철물. 공구도매상. 이수만물에 가서 세신 파이프렌치14인치를 18.000원 주고 샀다.

철 늦은 비는 주룩! 주룩! 끊임없이 오는데 돌아오자니 탁 배기 생각이 나고. 한 부록 건너 종로 3 가 인사동 골동품 거리가 보고 싶기도 하여 가까운 거리지만 지나가는 택시를 잡았다. 우산은 갖고 있었지만 바지 젖는 게 싫었다.

빗길에 택시도 신호에 막혔다. 운전기사에게 "요즘 영업은 어떻습니까?" 말을 걸었더니,

"돈 벌이가 안 된다는 거다." 그걸 시작으로 하여 현실에 대한 불만 불평이 쏟아졌다. 대략 50은 된 것 같은 운전기사 말씨는 호남인이었다. 근데 무척 유식했다. "神은 없다는 거다." 철학자 니체의 말은 인용하면서 신이 있다면 "저런 인간들을 가만 두겠느냐는 거다".

~중간 생략하고~

그럼 누가 대권후보가 되면 좋겠느냐? 물으니

의외로 손학규와 김두관을 꼽는다. 요즘 민주당 경선서 제주부터 돌풍을 일으킨 문제인은 없었다. 모바일 프로그램에 52%로 딱 맞춰 놓은 것 같은 대세론 자(大勢論者)도 이 택시운전사에겐 완전 남이었다. 뿐 아니라 같은 동향사람 정ㅇㅇ후보도 관심의 대상은 아닌 게 신기했다.

그런 가운데 낙원상가 밑 굴다리 밑에 도착했다. 거기서 내려 우산을 펴고 인사동 골동품거리 중심가로 들어서니. 비오는 날의 낮 익은 인사동 거리는 거기 있었다.

인간은 오랑우탄이 아니기에 기본적 굶주림이 해결 되면 문화를 갈구 한다. 같은 탁 배기 한잔을 마셔도 문화가 있는 곳서 마시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비가 갑자기 세차게 쏟아지고, 눈앞에 "이 강순 낚지 집"간판이 보였다. 낚지 손을 잡은 이강순 여사 그려진 간판 밑의 음식점 문을 밀고 들어섰다. 손님은 많지 않았다. 사는 게 괜찮아 보이는 60줄의 여성 5~6명이 맥주에 소주를 타 마시며 뭔가를 한 참 예기 중이다.

다른 한 테이블에는 역시 노년층의 남녀 일행 한 쌍이 탁 배기 잔을 앞에 놓고 마시고 있었다. 탁 배기 반 주전자와 낙지볶음을 시켰더니, 콩나물 찜에 백김치. 부추 잎 썬 게 겉 따라 나왔다. 콩나물 찜은 비린내가 나지 않아야 제법인데 이집 콩나물은 비린내 없는 담백한 맛으로 유명하다. 탁 배기로 대충 목을 추 긴 다음 비오는 인사동 거리로 나왔다.

낮 익은 찻집도 들려 차 한 잔 시켜놓고 창밖 거리를 내다보다가 일본인 관광객으로 보이는 여성 4~5명이 들이닥쳐 쫓기듯 찻집 문을 열고 나왔다.

아침에 막힌 세면대 밑 배관 벨브를 어제 산 파이프 렌지로 돌려 열었다. 몇 년 모아진 찌꺼기로 가득 찼다. 낡은 칫솔로 배수관 속의 찌꺼기를 쓸어내고 파이프를 이었다. 막힌 곳이 뚫린 세면대 물은 시원스럽게 흘러 내렸다.

정치도 이런 게 아닐까? 알맞은 공구만 있으면, 이렇게 쉬운걸!

훌륭한 지도자 한사람이 나타나면, 국가는 백년의 반석위에 세워지나, 악정을 펴는 정치꾼이 나타나면 나라는 퇴보하고 민생은 토탄에 빠질 수밖에 없다.

오래 묵은 찌꺼기 쌓인 곳을 알맞은 공구로 열고 뚫어주기만 하면 되는데, 우리 현실은 왜 자꾸 꼬여만 갈까? 여기까지 생각하자 세면대 배관은 뚫어 졌으나 다시 울화통이 치밀어 어제마신 탁 배기 효능을 살아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