對北전단 등 위협 느끼자 '응징하라' 지시문 하달

"反김정일 세력 처단"… 탈북자 소탕 명령
中활동 탈북자 잇단 납치
외부 연계된 北 주민들 대대적 색출 작업 진행

북한이 작년 11월 황장엽(87) 전 노동당 비서에 대한 암살 명령을 신호탄으로 ‘탈북자 소탕’에 돌입한 것 같다는 분석이 21일 나오고 있다. 북한이 반(反) 김정일 체제 성향 탈북자에 대한 작전을 개시한 것은 작년 11월쯤부터인 것으로 분석된다. 황장엽 암살조가 지령을 받고 북(北)을 떠난 그 시점이다.

이조원 중앙대 교수는 "작년 11~ 12월 북한의 양대 공안기관 수장(首長)인 우동측 국가안전보위부 수석 부부장과 주상성 인민보안부장이 잇달아 방중(訪中)했는데 중국측과 탈북자 문제를 논의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특히 국내에 정착한 탈북자 가운데 중국에 잠시 나갔다가 연락이 끊긴 경우가 올해에만 3~4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북 라디오매체인 '자유북한방송' 김성민 대표는 "중국 단둥특파원으로 일하던 탈북자 출신 A씨가 2월 19일 북한 내부 소식통을 만나러 갔다가 실종됐다"며 "북에 납치된 것으로 추정한다"고 말했다.

또 북한 내부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 당국은 지난달 초 '탈북자 등 민족반역 세력을 철저히 응징하라'는 내용의 지시문을 각 지역 공안기관에 하달했다고 한다. 이후 북한 전역에선 탈북자 등 외부와 연계된 주민들을 색출·단속하는 작업이 대대적으로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북·중 국경의 탈북자 가족들은 내륙으로 추방됐고, 3~4년 전 외부와 통화하다가 적발된 주민들에 대한 재조사까지 진행된 것으로 전해졌다. 탈북자단체 관계자는 "최근 북한 내부와 연락하기가 매우 힘들어졌다"고 했다.

북한은 지난달 23일 '민족화해협의회' 대변인 담화를 통해 국내 탈북자 단체들의 실명(實名)을 일일이 거명하며 "첫째가는 처단 대상이 될 것"이라고 공개 협박했다. 온라인매체인 '우리민족끼리'가 지난 5일 황장엽 전 비서에 대해 "결코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 것도 '탈북자 소탕' 맥락에서 읽힌다는 관측이다. 정부 당국자는 "지난 10일 장성급회담 북측 단장이 탈북자들의 삐라를 단속하지 않으면 '결정적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통보한 게 이젠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고 했다.

북측이 이처럼 탈북자에 대한 강경조치에 나선 것은 "황 전 비서를 정점으로 한 탈북자들의 '반(反) 김정일' 활동이 체제 안전을 위협할 수준에 달했다는 판단을 하는 것"(안보부서 당국자)이란 설명이다.

실제 탈북자들이 주로 날려보내는 대북 전단(삐라)에는 북한에서 언급 자체가 금기(禁忌)인 '김정일 가계도' 등이 담겨 있다. 이런 삐라는 후계자로 알려진 김정은(27) 우상화 작업에 상당한 걸림돌이 된다. 또 탈북자들이 운영하는 대북 매체들은 휴대전화 등으로 북한 내부 소식을 거의 실시간 전하고 있다. 작년 말 북한의 화폐개혁 정보는 우리 정부보다 빨리 확인했다는 평가다.

대북 라디오매체 관계자는 "탈북자 출신 앵커가 북한 주민들이 이해하기 쉬운 말로 방송을 한다"며 "최근 탈북자 중에는 대북 방송을 몰래 듣고 탈북을 결심하게 됐다는 경우도 꽤 있다"고 말했다. 현재 13~14개 라디오 매체가 북한으로 전파를 쏘고 있다. 국내 탈북자는 조만간 2만명을 넘어서고, 중국 등에도 3만~4만여명의 탈북자가 흩어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