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랜 친구의 아버님이 돌아가셨습니다.
어린시절 평안도 사투리를 쓰시는 친구의 부모님들을 뵈면서
그저 6.25때 남한으로 나오신 분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친구의 아버님은 그야말로 기골이 장대하다는 말이 꼭 어울리시는 분이셨습니다.
70이 훨씬 넘으셔서도 북한산을 매일 오르시고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정착해야한다고 늘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우리에게 말씀을 주시던 분이셨습니다. 누구보다도 바르게 사셨던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십여 년 전 갑자기 치매가 시작되면서
그분이 보여주신 모습과 달리 얼마나 마음고생을 하며 사셨는지를 알게 되면서
명절 때 실향민들이 고향을 향해 합동 차례를 지내는 모습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치매가 시작되면서 보여주신 모습은 옷 보따리를 품에 앉고 누군가가 생명을 위협하니
빨리 도망을 가야한다며 숨으셨습니다. 그리고 잠이 드시면 무슨 꿈을 꾸시는지 가끔씩 괴성을 지르시며 정신을 잃곤 하셨다고 합니다.
게다가 제 친구를 북에 두고 온 자녀들로 착각을 하시고 손을 붙들고 미안하다고 하시면서 이제라도 만날 수 있어 다행이라고 우시곤 했다고 합니다.
건강하셨을 때는 가슴 깊이 묻어두시고 꺼내 보이시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치매가 시작되면서 더 이상 숨겨두시지 못하셨던 것이겠지요.
저는 6.25에 대해 어린시절 그저 남의 이야기였고 그저 시대 상황 속에서 사람들의 인생이 원하지 않는 삶으로 될 수도 있구나 하는 맘이었는데 그런 친구 아버님의 모습을 보고 또 이야기를 들으면서 마치 제 삶의 한 토막처럼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명절 때가 되면 그 많은 실향민들이 모여서 북을 향해 합동 차례를 지내는 것이고 합동 차례를 지내는 그분들의 마음이 얼마나 안타깝고 절실할지를 느끼곤 합니다.
그리고 전쟁을 겪지 않아 그저 영화나 책을 통해 전쟁을 간접경험했을 뿐인 저는 친구 아버님의 삶을 보면서 전쟁을 상처가 얼마나 사람들의 삶에 깊이 남는지 그리고 절대로 잊혀지거나 지워지지 않는 상처라는 것을 깊이 느끼게 되었습니다. 또 다시는 이 땅위에서 동족상잔의 비극은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도요.
며칠 후면 구정입니다.
실향민들에게는 또다시 가슴 아픈 날이 되겠지요.
친구 아버님 같은 분들의 희생과 가슴 아픈 사연이 그냥 잊혀지고 사라지지 않고 값진 밑 걸음이 되어 모두에게 기쁨이 되는 평화통일의 날을 기다려봅니다.
윤주경
부정부패추방시민연합회(부추연)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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