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의 민주당 탈당을 충격적인 사건으로 바라보는 것 은 ‘집권초 무(無)당적 대통령’이라는 생경함 때문이기도 하지 만 일반의 예상을 뛰어넘는 전격성 때문이다. 물론 누구나 탈당 을 예상했지만, 청와대 측근들조차 낌새를 차리지 못할 만큼 이 렇게 갑자기 이뤄질 것으로는 보지 않았다.
문제는 노 대통령이나 청와대가 탈당이후 정국 운영 방안을 당장 내놓지 못하고 있는 점이다. 감사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에 대 한 국회 부결에 대해 감정적으로 대응하다보니 탈당후 정국운영 방안을 준비하지 못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사상 초유의 임기초 무당적 대통령이라는 정치실험에 이처럼 감정적 요인이 개입되어 , 흔히 말하는 ‘로드맵’이 없다면 이는 대단히 불안스럽다.
노 대통령이 어제 탈당을 천명한뒤 외국언론인들과의 자리에서도 통합신당 창당에 대해 ‘창조적 파괴’‘창조적 와해’라는 최 상의 수사를 동원해 정당화하면서도 왜 즉각 신당 입당 의사를 밝히지 않았는지 의문이다. 청와대 참모들의 관측대로 정기국회 가 끝나는 12월9일까지 신당 입당을 미룬다는 계획이라면 정치현 실과는 동떨어진 전술이다. 그 때까지는 한나라당, 민주당, 자민련 등과 무당적 정책연합을 한다는 얘기인데, 총선을 앞두고 이들 정당이 노 대통령의 ‘선택’에 순순히 응할 리가 없다.
바로 여기에 노 대통령이 신당 입당 문제를 빨리 매듭지어야 할 이유가 있다. 신당에 대한 노 대통령의 분명한 입장이 정해져야 만 정책연합이 선명한 방향을 갖고 추진될 수 있다. 대국민 직접 정치라는 이름의 여론몰이를 통해 국회를 움직인다는 것도 ‘민 주주의〓정당정치’라는 도식을 인식하지 못한 공허한 얘기다. 어쩔 수 없이 야권의 협조를 받아 이라크 파병 문제 등 숱한 국정 과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다.
총선 전이나 이후까지 신당 입당 문제를 미룬다면 그동안의 국정 표류를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걱정스럽다. 노 대통령은 앞으로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무엇 보다 야당을 국정운영의 파트너로 새롭게 인식해야 할 필요가 있 다. 야당과의 대화를 재개해 협조를 이끌어 내야 한다. 그것이 노 대통령의 표현대로 미국식 의회 운영의 본령에 가깝고, 또한 성숙한 국정 운영의 자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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