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예상을 깨고 중도성향의 정운찬 전 서울대학교 총장을 총리 후보자로 내정하면서 한때 정 전 총장을 ‘아군’으로 여겼던 좌파세력이 패닉상태에 빠졌다.
정운찬 내정자는 이념적으로 좌파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중도성향임에도 불구하고 지난 2007년 대선 당시 집권세력이었던 열린우리당 일각에서는 정 내정자를 대선후보로 영입하기 위해 집요하게 노력한 바 있다. 이는 중도세력과 일시적으로 손잡아서 세를 불리는 ‘좌익 통일전선전술’의 일환으로 평가됐었다. 물론 정 내정자는 결국 좌파진영의 영입 제안을 뿌리치고 2007년 4월에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었다.
정권교체 이후에도 좌파세력은 정 내정자가 자신들의 편이라고 착각해 왔다. 한 좌파성향 시사주간지는 노무현 전 대통령 자살 직후 실시한 차기 서울시장 관련 조사에서 정운찬 전 총장을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로 두고 가상대결 여론조사를 실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 전 총장이 민주당이 아닌 한나라당 정권의 총리로 내정됨으로서 좌파세력은 또 한명의 대권주자 및 서울시장 후보를 잃은 셈이 됐다. 일부 여론조사에서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에 이어 2위를 달리고 있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대선 불출마 입장을 수차례 밝힌 것에 버금가는 타격일 수밖에 없다. 차기 대선후보 여론조사에서 밀리고 있는 좌파진영의 ‘인물난’이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정운찬 전 총장의 입각이 민주당 등 좌파진영을 더욱 곤혹스럽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는 정 전 총장의 이념성향이 ‘중도’에 가깝다는 것이다. 정 전 총장은 그간 한나라당과 민주당 양쪽 인사들로부터 “이념적으로 치우치지 않고, 어떤 정파와도 소통이 가능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아 왔다. 민주당이 김수행-한홍구 등 극좌인사들을 공식 행사에 초청하고 북한의 대남협박에도 우리 정부를 비난하는 등 선명한 좌파노선을 과시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 전 총장이 이명박 정부에 합류했다는 사실은 한나라당과 청와대가 중도세력과 손잡고 민주당-민노당 등 극좌진영을 포위하는 구도로도 읽혀질 수 있다.
실제로 민주당 등 좌파 야당들은 정 전 총장의 입각에 대해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노영민 민주당 대변인은 “정 총리 후보자의 그동안 발언에 비춰볼 때 대통령과 총리 둘 중 한명은 소신을 접어야 공존 가능한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라며 이번 인사를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도 “논에 장미를 옮겨 심은 격인데 꽃이 필 지 의문이다”며 흠집내기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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