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대로 천안함 합동조사단의 최종 보고서가 발표된 뒤에도 음모론은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천안함이 북한의 어뢰 공격에 의해 침몰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끊임없이 논란을 재생산해내는 세력들이 간과한 역설(逆說)이 하나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바로 천안함 음모론이 커지면 커질수록 북한이 천안함에 대해 선택할 수 있는 카드는 없어지고, 북한이 원하는 인도적 지원이나 6자 회담 재개도 멀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천안함 제재 국면을 탈출할 목적이 됐건 인도적 지원을 받을 목적이 됐건 북한은 현재 다양한 방법으로 정부에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인도적 지원을 요청했고 이산가족 상봉도 제의했다. 정부도 쌀 5000t을 포함한 100억원 상당의 인도적 지원을 약속했고,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까지 논의를 확장시키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북한에 대규모 인도적 지원이 이뤄지려면 북한의 천안함 사과가 전제돼야 한다"며, 일정한 선을 긋고 있다. 당연한 일이다.
정부 당국자는 "인도적 지원 문제가 진척되면 남북 당국자 간 접촉이 있을 것이고, 그때 천안함 문제도 북한과 논의를 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북한이 천안함 사건에 대해 진전된 입장을 표명하면, 그때부터 정부의 대북 지원이나 6자 회담 재개 문제는 질적인 변화를 맞게 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천안함 사건에 대한 북한의 침묵이다.
물론 북한이 범행을 시인하기는 쉽지 않다. 북한은 범인이 잡혔는데도 아직까지 아웅산 테러와 KAL 테러를 시인하지 않고 있다. 정부는 공개적으로 밝히진 않고 있지만, 북한이 "천안함은 우리가 침몰시켰고 이에 대해 사과한다"는 수준을 요구하는 게 아니다. 북한이 우회적인 표현으로라도 천안함 사건에 대해 책임 있는 행동을 보이면, 이를 사과로 인정할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지금 북한의 상황이 절박하다면 자신들의 체면이 손상되지 않는 선에서 천안함 사건에 대해 변화된 입장을 보이는 것이 불가능한 것도 아닐 것이다. 과거 김일성은 1·21 청와대 공격에 대해서 "극좌 맹동분자들의 소행"이라고 시인한 적도 있다.
그런데 우리 내부에서 "천안함은 북한이 공격한 것이 아니다" "정부가 조작한 것이다"는 음모론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북한은 천안함 문제에 대해 기존 입장을 조금도 변화시킬 수 없다. 남한 내부에 있는 자신들의 우군(友軍)을 위험하게 만들 일을 북한이 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정부는 북한에 천안함 탈출로를 다양한 경로로 열어두고 있지만, 남한 내부의 음모론자들이 북한이 선택할 수 있는 출구를 좁히고 있는 것이다.
현재로선 북한이 '천안함 출구'를 찾을 경우의 수는 두 가지뿐이다. 하나는 북한이 천안함 사태에 대해 우회적인 방법이라도 태도의 변화를 보여 정부가 대규모 대북지원과 6자 회담 재개에 나설 명분을 주는 일이다. 또 하나는 음모론자들이 바라는 대로 한국 정부가 일부러 천안함을 침몰시켰다는 것이 밝혀져 북한의 '누명'이 벗겨지는 경우다. 둘 중 어느 것이 사실이고 현실인지는 음모론자들조차 속으로는 잘 알 것이다. "천안함 음모론자들이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정부가 아니라 북한일 수 있다"는 외교 당국자의 말을 음모론자들은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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