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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양미영기자] 위기는 기회를 만든다. 미국 서브프라임에서 촉발된 금융위기가 거대한 금융기관 공룡들의 연쇄도산으로 번지고 있는 이번 역시 예외는 아니다.

신용위기로 인해 미국의 월가는 초토화되고 있는 반면, 그 빈자리를 아시아 강대국들이 속속 메우면서 세를 불려가고 있다.

일본은 굴지의 미국 금융기관들의 지분을 잠식해가고 있으며 중국 역시 월가의 모시기 힘들었던 금융 인재들을 싼 값에 스카웃해 오고 있다. 반면, 리먼과의 지분매각 협상으로 세계의 주목받았던 한국은 정작 뒤로 처지면서 `만년 열등생`에서 벗어나지 못할 조짐이다.

◇ 日, 위기 틈타 월가 투자은행 `잠식`중

23일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WSJ)과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는 오프라인신문 1면에 일본 금융들이 미국 투자은행 사냥에 나섰다고 전했다. 하루사이 일본의 금융기관들은 리먼과 모간스탠리가 내놓은 등 굵직한 매물을 잇따라 잠식해가며 기민한 기업사냥꾼으로서의 면모를 과시하고 있다.

노무라는 지난 22일 리먼브러더스의 아시아법인을 인수하기로 했다. 한국의 삼성증권과 홍콩 HSBC은행 등도 물망에 올랐지만 노무라의 공격적인 입찰 전략이 주효했다.

노무라는 향후 한국의 리먼브러더스 법인 역시 인수를 추진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으며 리먼브러더스 유럽법인마저 가장 유력한 인수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상태다.

리먼과 메릴린치에 이은 다음 타자로 지목됐던 모건스탠리 역시 일본의 미쓰비스UFJ를 지분매각 대상 기업으로 택했다. 미쓰비시UFJ는 모간스탠리의 지분을 최대 20% 사들이는 투자를 통해 해외 투자은행 사업을 확대해 나가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밖에도 일본 금융기관들의 입질은 활발하다. 일본의 2위 은행인 스미토모미츠이파이낸셜그룹은 지난 6월 영국 바클레이즈은행에 10억달러 가까운 유동성을 지원했다. 스미토모는 리먼이 보유한 일본 자산 매각을 위해 리먼과 협상 중에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미즈호파이낸셜 역시 지난 1월 12억달러의 메릴린치 우선주를 사들여 주목받기도 했다. WSJ는 최근 이같은 흐름에 대해 미국의 금융위기가 현금이 풍부한 아시아나 중동국가들에게 기회를 열어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특히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중국이 가장 우위를 점할 것으로 점쳤지만 오히려 신용위기 상처가 덜한 일본이 가장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다고 전했다.

◇ 中 "인재사냥 기회는 이때"..금융기관 인수도 관심

중국 역시 일본에 선수를 뺐겼지만 모간스탠리 인수 대상으로 씨틱증권 등이 거론되기도 했다.

특히 중국은 미국 월가은행들의 몰락을 인재사냥의 기회로 삼고 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중국의 국부펀드인 중국투자공사(CIC)는 지난 20일 웹사이트를 통해 주식투자, 채권, 거시경제 조사, 등 11개 분야에서 30개 직책 이상을 채용한다고 밝혔다.

월가의 금융전문가들의 보금자리를 잃으면서 현 시점이 채용의 적기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인력 선택의 기회가 보다 늘고, 우수한 인재를 끌어오기 위해 평소에 지불했던 엄청난 연봉을 줄 필요가 없어졌다.

CIC는 리먼, 메릴린치 등으로부터 인력을 확보해 유능한 해외 인력을 통해 해외 투자 확대에 박차를 가한다는 전략을 내세우고 있다.

이에 더해 미국 사모펀드인 블랙스톤과 투자은행인 모간스탠리의 지분 매입에 수십억 달러를 쏟아붙는 등 해외 투자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

◇ 韓, 다잡은 고기 매번 놓쳐..만년열등생으로 남나

그러나 일본과 중국의 `승승장구`와는 대조적으로 한국은 사실상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한국 역시 리먼의 파산보호 신청에 앞서 시장에 매각 기대를 품게 했던 장본인이었지만 시장에 잡음만 만든 채 협상은 결렬됐고, 결국 영국 바클레이즈와 일본 등에게 자리를 내줬다.

한국의 외환은행 보다 매력적인 매물들이 시장에 쏟아지면서 역시 찬밥신세가 됐다. 외환은행의 대주주인 론스타펀드와 인수협상을 벌여왔던 HSBC는 가격이 맞지않아 발을 뺀다고 밝혔지만 거물급 투자은행 자산들의 매력에 밀린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한 때 한국과 마찬가지로 세계 IB들에게 동시다발적으로 밀렸던 중국과 일본이 새로운 금융 질서 재편의 주도를 자처하고 있지만 한국의 경우 초라한 만년 열등생으로 남을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