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측의 최고 수뇌님께 보내는 편지-

김정일 님께.

김정일 님.

저는 김정일 님을 어떻게 불러야 하는지 모릅니다. 최고의 존칭을 써야하는지, 그리고 지금 당장은 하대를 하며 제 의견을 전해야 하는지, 우선 저는 이 글을 쓰려고 마음먹을 때부터 그런 등등이 막막했습니다.

우리 동방예의지국의 관습으로는 김정일 님은 분명 한 나라의 수뇌이고 세계에서도 몇 안 되게 일인치하를 거느린 권력자시니 한도 껏 예우를 갖춰 호명해야 한다는 정도는 저도 압니다. 하지만 경색된 현 사회구조에 대해 아는 만큼 불필요할 정도로 몸이 사려지는 건 어쩔 수가 없는 일입니다.

저는 반미주의자도 친미주의자도 아닙니다. 그냥 허접스레 읊어대는 민족주의자도 아닙니다. 누가 그랬지요? 세계에서 민족주의자가 모두 죽어 사라지기 전에 평화는 오지 않는다고. 그런 의미에서 저는 초 본능적으로 그냥 평화를 추구하는 발본주의자라고나 할까요, 그러나 제가 몸담아 왔던 나라에서 잘 길들여진 애완용 강아지처럼 말 하란다면 반공주의자 정도는 되야겠고, 또 그렇습니다.

저의 반공주의는 사실 길들여진 것은 아닙니다. 초 근본적인 원인에 의해, 그것은 제가 목격하고 겪은 바에 의해 단순한 어린 시절부터 제가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싹이 터서 굳어진 고정관념의 일종이랄까 하는 그런 겁니다.

이념이 뭔지, 공산주의 정치행동 원칙으로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장점이나 단점이 뭔지 전혀 모르는 어린 나이에 6.25 사변을 만났고, 저는 아버지가 옷장 속에 동굴을 파고 그 안에 숨어 계시다 무더기로 조준이 되고 있는 따발총 군에게 고꾸라지고 엎어지시면서 이끌려 가시는 걸 보았습니다.

앞집에 사는 의학박사 최영욱 님은 1년 전에 미국에서 돌아오셔서 서석병원을 개업하셨는데 아버지와 함께 끌려가시는 걸 보았고, 다른 한 분 호남갑부 최 모 님과 세 분이 어느 학교의 교실에서 매 맞으며 뒹굴다 다시 밀려들어오는 국군을 막아내지 못하고 북으로 후퇴를 해야만 하는 지경에 이르자 두 분은 대창으로 살해되고 저희 아버지만 옷고름도 없는 동저고리 바람으로 집에 돌아오셨습니다.

두 분이 뾰족하게 깎아 흉기로 사용되고 있던 대창에 가슴이 찔려 돌아가셨다는 얘기는 집에 돌아오신 아버지로부터 들었지만 끔찍하다는 생각 밖에 어린 가슴에 반공이 싹튼 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어머니를 잃고 세상에서 끔찍이도 사랑하며 따르던 오빠가 서울의 용산부대에서 전사했다는 통지를 뒤늦게 받고부터였습니다. 저의 원한은 하늘에 닿을 정도였고 그 때부터였습니다. 공산주의라는 것에 대한 흑백론이 성립이 된 거지요.

그런데 어처구니없는 사실 하나가 대두되었습니다.

세 분의, 아버지와는 절친한 바둑친구이고 친 형제처럼 가까웠던 최영욱 씨와 호남 갑부였던 최모씨가 대창으로, 사형집행이 되어 돌아가셨는데 아버지만 왜 혼자서 살아 집에 돌아오실 수 있었을까, 참으로 묘한 인연의 대칭적 발상이랄까, 그런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아버지는 경상도 분으로 재정이 넉넉한 분이셨습니다. 금광을 하셨는데 전라도에 15군데나 진짜로 노다지광이었던 광산을 소유하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부의 산물이나 처럼 지방관청의 높으신 분들과 교류가 잦았고 판검사를 손에 쥐고 흔든다는 말까지 나돌았을 정도였습니다.

그런 아버지께 늘 옆에 계시며 지금으로 말하면 비서나 보좌역이랄까, 하여간 친 형제 친 아우 같은 분이 예셨습니다. 두 분은 단 하루도 서로 얼굴을 안 보면 큰일 나는 분들이셨습니다. 그냥 어린 저희들로부터 ‘영낙이 아저씨’로 불리면서 아버지의 온갖 시중을 들고 어딜 가자면 앞장서 나서고 저 만큼, 물렀거라 김 주사님 나가가신다, 라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사또가 행차 시에 길 닦는 관리처럼 행동하는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그 분이 찾아와 무작정 방성대곡을 하는 겁니다. 듣고 보니 OOO로 활약을 하던 아우가 지리산에서 붙잡혔는데 제발 자신의 단 하나 혈육인 아우 놈을 살려달라는 겁니다. 눈으로 볼 수 없을 정도의 오열과 몸부림은 저마저 눈시울이 붉어질 정도였습니다.

아버지는 영낙이 아저씨가 말하는 하나뿐인 아우를 살려내셨습니다. 돈의 세도가 막강한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나 봅니다. 검사까지도 절절 긴다고 하는 아버지로부터 크게 은혜를 입은 영낙이 아저씨 동생은 자유의 몸이 되자 어디론가 곧장 사라져버렸습니다.

6.25 사변이 터지고, 아버지가 잡혀 가시고, 그때까지 이미 타계한 영낙이 아저씨의 OOO 아우는 저희 가족의 아주 잊혀진 인물이었습니다. 아주 까맣게. 그러다 수년이 지난 아주 먼 훗날, 7월 중순께였을 겁니다.

아버지가 인민군 지서로부터 관리되고 있는 초등학교 교실에 갇혀 취조를 당하고 계셨는데 인민 보위부라나 하는 곳의 아주 높은 사람이 그냥 지나쳐 가며 지서를 시찰하던 중에 잡혀 와 있는 반동분자들의 명단을 훑다가 아버지의 이름을 발견한 겁니다.

그가 아버지를 찾아 감방으로 쓰이고 있는 교실에 나타났을 때, 처음으로 아버지는 살아생전 은혜입어 전전긍긍 몸종이나 처럼 헌신했던 영낙이 아저씨의 못된 OOO 아우 놈(영낙이 아저씨가 생명의 은인에게 인사도 없이 사라진 자신의 아우를 언제나 그렇게 말했음)과 만난 것입니다.

짐승도 자기 목숨을 살려 준 은인을 안다니까 그 역시 은인을 살려낼 의무감 정도는 지니고 있었나 보다고, 그렇게 아버지는 살아 집에 오셨던 겁니다. 영낙이 아저씨의 <못된 OOO 아우 놈>으로 인해 이념의 희생물로 대창에 찔려 세상을 하직하실 뻔 했던 것을 그러지 않아도 되셨던 겁니다. 바로 여기에 저의 영원한 수수께끼는 싹트기 시작한 겁니다.

저는 언필칭 문학소녀로 초등학교에서부터 이름이 날렸을 정도였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쯤인가, 국군장병에게 의무적으로 쓰고 있던 위문편지가 나달나달해서 교장선생님께 되돌아온 적이 있었는데 너무나 명문의 글이라 학교로 다시 보낸다는 전언과 함께였습니다. 온 장병이 다 읽고 보내느라 그토록 제가 보낸 위문편지가 나달나달 했다니까요. 그 편지의 내용이 뭐였는지 아십니까?

바로 저희 집에서 기르던 메리라는 세퍼트의 얘기였습니다. 메리는 인민군이 밀어닥친 저희 집 대청마루 밑에, 아버지가 숨어 계시던 장롱(아래쪽 바닥을 파서 움으로 만든 피신처)에서 그다지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입에 재갈이 물린 채 숨어 있다가 인민군에게 발각됐습니다.

그 개는 그냥 개가 아니라 저희 집 가족이었고 아버지는 그 개에게 주기적으로 육회를 먹이며 애지중지 하기를 자식 대하듯 하셨는데 단 한마디로 앉으라면 앉고 서라면 서고, 눈앞에 육회 접시를 놓고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먹으라는 말이 떨어질 때까지 그냥 지켜보고만 있을 정도로 잘 훈련된 개였습니다,

인민군이 그 개를 끌고 갈 때 하필이면 제가 도와야 했습니다. 인민군이 그 개를 발견해서 대청마루 깊숙한 곳에서 이끌어내도록 저를 시킨 겁니다. 저는 위협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인민군이 들고 있는 따발총으로 그냥 갈겨버리겠다는 말에, 조용히 나오게 하면 데려다 자기들이 기를 거냐고 묻는 제 말에 그들이 그렇다고 했기 때문에 그 개를 나오게 한 겁니다.

대청마루 깊숙한 곳에서 나와 목과 어깨를 한껏 낮추며 저의 등 뒤에 숨었습니다. 그런 메리의 목에 끈을 매어 이끌고 시냇가로 갔는데 저보고 시냇가의 전봇대를 고정시킨 쇠줄에 개의 목에 걸려 있는 끈을 매어놓도록 시켰습니다. 저는 그대로 했고 이젠 됐으니 넌 가라는 말을 들으며 돌아서서 터벅터벅 두어 걸음 옮겨 놓았습니다. 그 때였습니다. 이제껏 조용하기만 했던 메리가 갑자기 큰 소리로 하늘에 대고 울부짖듯 짖어대기 시작하는 겁니다.

저는 귀를 막은 채 앞으로 내달았습니다. 그 엄청난 굉음! 꽝! 그리고 케겡--! 그렇게 메리의 최후가 끝난 겁니다. 그 때의, 아버지마저 잡혀가시고 난 후의 인민군에 대한, 공산주의에 대한 하늘을 찌를 듯했던 증오와 염오의 감정이 국군장병에게 보낸 그 위문편지 속에 담겨 있었습니다. 국군 아저씨! 메리의 원수를 갚아 주세요. 그런데⋯⋯.

그런데 바로 그것이 아버지가 살아 돌아오신 이후의 영원한 수수께끼와 뒤범벅이 될 때의 심정을 저는 또 위문편지에 썼고, 그것이 실은 지금도 제 가슴속에 이율배반적인 느낌으로 남아 있는 겁니다. 우리 아버지는 살아 오셨거든요⋯⋯. 하지만 우리 오빠!

그렇게 된 겁니다. 제 가슴에 남아 있는 슬픔과 유사한 슬픔이, 그리고 또 다른 많은 슬픔 등이 김정일 님의 가슴에도 비 오는 날, 또는 흐리거나 맑은 날 꿈틀거림으로 남아 눈앞을 흐리게 하는 때가 종종 있으시리라 봅니다.

김정일 님의 일인치하에서 가엾은 인민이 배고파 죽어갈 때 그리고 죽어갔을 때, 태연한 척 아무도 모르게 홀로 가슴 부등켜 마음으로만 슬피 우시기도 할 겁니다. 그런 당신을 누가 알겠습니까? 그것이 바로 우리 인간사회의 끝없는, 알베르 까뮤가 말한 저 세계의 부조리, 바로 그런 데에 얽혀있는 대칭적 요소가 아닐까요? 

인간의 삶에 대해 저는 아주 많이 생각합니다. 어디서 왔는가, 무엇을 하다 왔는가. 거기에 저는 인간이란 자체가 어느 행성에서 죄를 짓고 이승이라는 감옥으로 수감되어 왔을 거라는 생각을 아주 많이, 그리고 자주 합니다.

절대로 완전한 행복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는 이승의 죄수가, 수감자들이, 온전한 행복 가운데 여흥을 즐기도록, 어느 간수들이 그냥 지켜만 보겠는가고. 모범수로 조금 누리게 하다가 어떤 방법으로든 고통으로 바꾸어 놓는 그런 것이 저승의 이승에 대한 징계의 방법 아닐까, 그래서 어느 누구도 온전한 행복을 누릴 수는 없는 거라는 생각을 아주 많이 합니다.

중국 속담에 좋은 일 있어도 하늘을 보며 웃지 말라는 말이 있잖습니까? 하늘이 시샘을 한다고 말입니다. 그런 이승에서 우리가 살면 얼마나 산다고, 우리가 수감된 생활에서 벗어나 자유의 몸이 되는 그 자체가 죽음인 것을, 남남갈등, 북북갈등, 남북갈등 북미, 한미, 동서양 갈등 등⋯⋯. 하물며 신을 숭앙하는 자들의 종교적 갈등까지, 온통 갈등 속에 수수께끼를 풀어 갈 시간마저 잃어가는 우리들!

이제 그만, 본론을 말씀드리기로 하겠습니다.

엊그제 판문점을 통해 <議題>로 남한에 전해져 왔다는, 사단법인[한반도 평화를 추구하는 모임] / [한반도평화탑]건립추진위원회가 자유로에 큰 광고판을 내 걸고 그곳에 <평화통일 촉진의 매개체가 될 DMZ [한반도평화탑]건립추진을 온 국민 동참으로!>라고 쓰인 글자 중에 6.15공동성명을 저해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며 철거를 요청해 왔습니다.

그에 대해서, [한평추]가 금년 정월 초하루와 초이틀에 임진각에서 <온국민 동참 천만인 서명운동을 벌이고 2.17.도라산역사 내에 행사를 단행했던 것, 그리고 자유로에 큰 야립 간판에 쓴 큰 글자(글자 한자 크기 1m 70cm짜리로 <평화통일촉진의 매개체가 될 DMZ [한반도평화탑]건립추진을 온 국민 동참으로!>라는 글자를 써서 남북을 오가는 길목에 세워놓게 된 이유에 대해 되도록 상세히 말하려고 합니다.

그 이전에 드리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다름 아닌, 6,15라는 글자에 대해서, 정부에서 또는 사회일각에서 6.15를 수없이 읊어대는데 제게 느껴지는 것은 오로지 정치적인 정서뿐이라는 겁니다. 6.15! 이제 식상을 해버린 그 숫자들에는 일반적으로 실소를 머금을 수밖에 없는 의미까지 포함됩니다.

그에 상응하는 답방도 얻어내지 못한 채 일국의 대통령이 임기 중에 작은 의무 하나 완수한 것이 모두 경축의 의미를 담고 휴일 화 된다면 노는 날 아닌 일하는 날은 일년에 며칠 되지도 않을 거라는 생각입니다. 큰 의미를 확보하지 못한 6.15는 제게 오로지 6월 14일의 다음날이고 6월 16일의 전날에 지나지 않는 겁니다.

기업들마저 매일같이, 또는 걸핏하면 하는 게 회의이고 그로 인한 시간 손실도 만만찮거늘 의미까지 부여해서 해마다 경축을 일삼아야 하는 풍토부터 바뀌어야 한다는 걸 저는 주장하고 싶은 겁니다. 때문에도 저는 우리 단체가 결행한 일들에 대해 당당하게 말할 수가 있는 겁니다.

어쨌거나 맹렬히 추진하여 몰아치다시피 한 도라산 역 행사, 그리고 자유로의 광고물 설치에 대해 소원했던 대로 김정일 님이 아시게 됐고 관계 당국이 들어 그 이유를 말 하란다면 그것은 제가 바라는 성공의 의미여서 이제야 말로 영광스러운 마음으로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그 첫 째의 이유는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들, 그리고 7년 여 세월에 걸쳐 해 온 일들에 대하여 적시적출 사단법인[한평추]가 준비된 단체의 면모를 보이며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정체성 확보의 <선점>을 좀 더 명확히 하려는 데 있습니다.

그 밖에 다른 데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닙니다. 속말로 제가 정치를 하고 싶어서, 선거 때가 되니 비례대표로 누가 나를 이끌어내 주지나 않을까 했던 것도 아닙니다. 누군가가 전에 그 비슷한 말을 제게 한 적이 있었는데 봉변을 당하다시피 했습니다. 오물을 뒤집어 씌워주고 싶었을 정도로 저는 화가 났습니다.

저는 글쟁이이고 하루 속히 적임자를 찾아앉히고 저는 제 서재로 물러앉는 소원밖에는 없습니다. 여성시대라며 걸핏하면 여성을 앞세우려 하는데 저야말로 심히 부정적입니다. 여성도 여성 나름이고 인물도 인물 나름이라고 전 생각합니다.

저는 여자이면서도 정말로 혐오스러운, 젠체하는 멍텅구리를 너무 많이 보아 왔기 때문에 여성에 대한 무조건적인 선심성 전략에는 알레르기 반응을 지닌 편입니다. 아무 것도 모르면서 엄격한 검증도 거치지 않은 채 어쩌다 사회 지도층에 올라 국익을 낭비하는 여인네들 멀미가 날 정도로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죽도록 혐오하는 것은 또 있습니다. 현 시대의 어처구니없는 발상의 하나로 노동 싫으면 박사나 교수로 진출(진짜 석학들에게 하는 말이 아니니 관계된 분이 진정한 석학이라면 오해하지 않으시리라 봅니다)하고, 게다가 말도 안 되는 단체는 늘고 거기에 민족 팔아먹는 사이비 얼치기들이 뒤로는 이권운동을 하면서 기부금 받아 월급봉투를 집에 들고 갑니다.

하지만 저는 아닙니다. 집에서 남편의 연금, 남편의 공로상으로 받은 금붙이까지 모두 내다 팔아 이 일을 하고 있는 겁니다. 원고료를 털었고 자식들이 주는 용돈은 늘 칼라잉크 값으로 나갑니다. 1미터짜리 헌 냉장고 하나도 이제 고장이 나서 말을 잘 듣지 않지만 새 걸 살 돈이 있으면 서명운동에 쓰려는 생각만 합니다. 

목소리 크면 기부금을 주는지 저희는 아직 재경부 장관 승인의 공익성 기부금 대상단체이면서도 중량을 지닌 기업으로부터 아직 기부금이 들어오지 않고 있습니다. 기부금 받아내는 재주가 제게 없다고요? 천만에요! 하고 많은 단체들이 들끓는 곳이 대한민국 현주소인데 그러한 현장에서 차별화된, 변별력을 지니는 것만이 우선이었기 때문에 아직은 거기까지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우선은 깨끗한 단체의 기틀을 다지는 데 혈안이 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 자신 그에 대한 자부심은 하늘을 찌르고도 남습니다. 우후죽순처럼 돋아난 잡초 같은 모임들, 너무나 유명무실한, 어떤 이는 자신의 직위를 이용해 우리의 특허등록까지 끝마친 명칭에 관하여 아무 거리낌 없이 침범을 해(심지어 지방자치제의 관에서까지) 오기도 합니다.

그런 와중에서 우선 생각난 것이 사단법인[한평추]가 들어 과감하게 교통정리를 해야겠다는 거였습니다. 그리고 분명한 것을 분명하게 갈라놓아야 한다는 것이 저와 함께하는 많은 분들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적시적출 대화의 물꼬를 트고 김정일 님과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담판을 짓고 싶었습니다.

그것이 곧 <선점>인 것이고 우리가 지금 모든 걸 다 갖춘 연후에도 몰지각한 이들의 일회성 추월이 자행되지 않도록 조금만 더 발 빠른 움직임을 보여 교통정리를 해야만 하겠다는 것이 또한 저의 결심이었던 겁니다. 그렇게 당신과 함께 협상 테이블에 앉겠다는 것, 그 일념밖에는 없었습니다.

도라산 역사에서의 행사도, 자유로에 내 걸려진 대형 광고물에 대해서도, 결행에 있어 온전히 순서를 밟지 않았다는 것은 고백합니다. 관습과 허접스러운 질서주장, 특히 지방의 관료주의 등에 잠시나마 얽매이고 싶지 않았으므로 저는 저의 경우와 도덕관과 상식에 준하여 그대로 밀어붙여버렸습니다.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에서부터 시작하여 도라산 역에 진출하기까지 절대적인 기교는 필요했습니다. 기교라기보다는 지략으로 평가되어도 무방할 것입니다. 관계자들이 어처구니없어 하는 면까지 있었고 그것마저 포함해서요.

도라산 역 행사의 가능성이 아주 조금 보였을 때 저는 우선 준비에 착수했습니다. 무허가 건축도 지붕까지 올라가고 나면 국가적 손실에 적용이 되어 함부로 철거명령을 하지 못한다는 원리를 그대로 이용한 거지요.

그렇게 도라산 역사의 행사는 무사히 끝마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자유로에 내 걸린 광고물이 또 문제의 핵심으로 등장하게 되어 버린 겁니다. 실은 바로 그것을 저는 원했는데 말입니다!

<議題>로 판문점을 통해 내려왔다는 것이고, 6.15 공동성명에 위배되는 행위를 제가 저질렀다는 것입니다. 저는 웃었습니다. 실소가 아닌, 통쾌한 웃음을 웃은 겁니다.

왜냐하면 임진각에서의 행사, 도라산 역의 행사, 그리고 자유로에 내 걸은 광고의 내용과 결행이 [한평추]가 소지한 사안의 중대성을 모두가 알아차리는 데 있었고 그것이 바로 통일부 사단법인[한평추]가 <북>으로 보내는 공개적인 메시지였기 때문입니다.

어느 시대나 절차와 과정이 매우 까다로운 속에서 좋은 큰일들이 좌초되어 버리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위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어느 행성에서의 감옥인 이승에서의 우리들의 바람은 언제나 벽에 부딪치도록 시스템 화 되어 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도라산 역사 내의 행사에 통일부 명칭 사용허가까지 신청하여 갖추고 있었던 것이고 모든 원인은 바로 그런 데에 있었던 겁니다.

지금이 適期다! 그것이 저를 더욱 분망케 한 원인이었는데, 김정일 님.

당신이 중국을 방문하고 계시다는 뉴스를 듣는 순간 저는 알아차렸습니다.  이제 와 위폐다 가짜담배다 몰아세우면서 6자회담에도 미온적인 미국을 성토하기 위해 가신 게 아니란 걸 대뜸 알아차린 건데 그대로 적중하는 느낌이었습니다. 김정일 님이 중국에 경제개념의 노하우를 얻기 위해, 정립하기 위해 간 거라면 이젠 됐다! 라고 생각하며 쾌재를 부른 것이 저의 잘못이라면 잘못이겠고 그런다 해도 하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곧장 우리 [한평추]가 있다는 생각이 제 머리 속에 차오르기 시작한 겁니다.

태드터너가 와서 운운했기에 DMZ가 더 유명해지기 이미 수년 전부터 우린 DMZ에 [평화의 탑]을 지으면 우리 국민 모두가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는 구호를 외치며 고군분투해온 바가 있습니다. 그것도 남북이 공동으로 손 맞잡고 짓기 시작하면 홍보 면에서 전 세계적인 뉴스메이커가 되어 관광객이 몰려 올 것이고, 그 순간부터 수익성이 발생될 것이며 전쟁은커녕 바로 그 자리에 부분통일의 기틀이 마련되는 거라고, 그러니 이번에 매력적인 그 발상에 대해 김정일 님이 알아차려 주셨으면 하고 염원하기 시작한 겁니다. 

<미국을 더 잘 먹여 살리는 건 MIT가 아니라 디즈니랜드이다. 그런데 이건 한국의 디즈니랜드 정도는 되겠군!> 이라고, 바로 금세기 한국의 대 문호이신 이어령 선생께서 우리의 프로젝트에 대해 거론하신 바도 있었습니다. 

우리 국민은 눈에 보이는 것, 그리고 그것이 옳다는 판정만 내려지면 세계 어느 국민보다, 거의 극렬한 정도로 함께 나서서 모두가 앞장을 섭니다. 월1만원의 회비를 우리 국민 중 1천만 명이 내면 매월 1천억 원씩 금융 감독원을 통해 어디엔가 비축이 되겠지요. 그 돈을 남북이 나누어 쥐고 DMZ에 첫 삽을 뜰 수 있도록 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린 <DMZ에 [한반도평화탑]건립추진운동 1,000만 명 서명운동을 지난 2002년부터 시작하여 해 온 것이고 김정일 님만 수락을 하면 되는 겁니다. UN(중립국감시위원회) 관할의 DMZ는 남북이 대치하며 휴전상태에 있기 때문입니다. 남북이, 그러니까 당사국의 당사자(수뇌)들이 손을 잡으며 <평화협정>을 체결하면 바로 그 순간 DMZ는 우리의 관할로 환원이 되는 거라고 저는 압니다.

김정일 님의 인민들이 영양실조에 걸려 있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인권 유린을 당하고 있는 거라고들 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를 하지 못한다는 말이 있질 않습니까? 

우리나라는 인권이 없어서 지난겨울 장애인이 안방에 흘러 들어온 수돗물을 어쩌지 못하고 동사를 했겠습니까? 독거노인이 홀로 죽어 생육이 그냥 부패되어버리는 일도 있답니까? 인민이 배고파할 때 속수무책인 당신의 쓰린 가슴을 누가 알겠습니까? 겉으로는 태연한 척 하면서 아깝게 죽어간 불쌍한 인민을 위해 가슴으로 우는 그 울음을 누가 알겠습니까? 

저는 지금 김정일 님의 좋은 점에 대고 호소합니다. 우리와 함께 경제개념의 프로젝트에 대해 귀를 기울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몰두해 주시기 바랍니다. 바로 그러한 저의 충원이 이번 자유로에 걸린 광고물에 담겨 있었던 겁니다.

끝으로 아주 간략하게 제가 이번 결행의 두 번째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국민의 한 사람으로, 사단법인, 재경부 장관의 공익성이 인정된 단체의 장으로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우리나라 통일문제를 또다시 거론하시며 나서려 하시는 것, 그리고 또한 그의 방북을 막고 싶었습니다.

그 어른이 아니라도 후진들 얼마든지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 현재의 대통령이 그 후진으로 나서면 안 되는 겁니까? 그 어른은 자리보전하고 누워 계시지는 않을망정 매우 연로하신 분이십니다. 먼 길, 그나마 잔뜩 짊어진 사명감 때문에 중압감을 가슴에 한 아름 안고 어려운 자리에 가셨다가 만약에, 아주 큰 만약에 큰일이라도 나시면, 그 소동은, 그 번거로움은, 그 모두가 다 국익에 전혀 보탬이 되지 않는 일인 겁니다.

그 분은 [한반도평화탑]건립추진위원회가 태동을 시작할 때 전임자인 국회의원을 불러다 놓고 <아주 좋은 일이니 잘해 보라>고 하셨다는데 노벨 평화상을 겨냥하신 게 아니라면 제가 맡아 정치색 모두 배제하고 아태재단 건물에 비어있는 4층 사무실 한 모퉁이를 할애받기 위해 그토록 열심히 편지를 썼는데 전혀 반응 비슷한 것을 보이시지도 않았습니다. 

나라 일에 결부되었다는 생각으로 장벽에 부딪힐 때마다 네 번 편지를 올렸고, 임기 끝나시고 동교동으로 돌아오신 후 세 번, 이희호 여사님께 두 번 편지를 올렸지만 그 때도 역시 답장은 없었습니다.

그때야 말로 6.15 결과가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어른이야말로 진정한 매개체가 되어 북측에 품신을 올릴 수 있는 장본인이라는 생각을 접기 시작한 겁니다.

일국의 대통령을 지내신 분이 국민의 한 촌부라 할지라도 수없이 보내는 편지에 설마 응답을 안 하실까 하면서. 실은 그 한 장의 답장도 없었다는 것으로 저는 모든 판정을 굳게 내릴 수가 있었고, 그 분에 대한 모든 것이 또 제게는 금세기의 대단한 수수께끼로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이번에 <의제>로 판문점을 통하여 우리 정부에 제시가 됐다고 하는데 김정일 님. 부디 그 내용을 자세히 알고 싶습니다. 아무래도 저의 진의가 잘못 전달 된 듯도 하여 그것을 규명하고자 간 크게 이 글을 씁니다.

저는 직선적인 데다 어느 한쪽에도 의지하지 않고 있으므로 홀로 강해져야 하는 입장이어서 무례한 언사나 글귀에 대해서는 이 쪽의 정서에 맞추느라 그런 것이니 부디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앞으로는 많은 현세의 상식을 쌓아 온건하고 예절바르게 적절한 표현을 써서 또 편지 올리겠습니다. 부디 마음의 평정 가운데 온유하시기를!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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