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년과 정을 통한 놈들이 누구누구이더냐? 어서 이실직고하지 못할까?”
어우동이 성종의 눈을 주시했다. 성종의 눈빛은 예전의 청풍이 이미 아니었다. 어우동이 대답을 하지 아니하자, 의금부 관군들이 주리를 틀기위해 다가섰다. 어우동의 눈빛이 떨리었다. 허나, 그것은 두려운 것이 아니었다. 후회의 것들이며, 연민의 것들이었다. 나무 몽둥이가 어우동의 허벅지로 파고들자, 성종이 팔을 들어 저지하였다.
“저년이 입을 열지 아니하는 것을 보니, 죄를 받아들임이니라. 죄인을 다시 하옥하라.”
어우동이 다시금 옥사에 하옥되었다. 주책없이 눈물만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훔쳐도, 훔쳐도 계속하여 흘러만 내렸다. 늦은 밤이 되자, 밝혀놓은 횃불 사이로 사람의 그림자가 흔들리며 다가왔다. 어우동이 급히 몸을 돌리자, 경이었다.
“그리 일러두지 않았습니까? 어찌하여 일을 이 지경까지 만드신 것입니까?”
어우동이 고개를 숙였다. 무어라 말을 하여도, 그건 변명이 될 수밖에 없었다. 어우동이 경에게 청을 하였다.
“부탁이 있습니다. 연이가 어찌 지내는지 걱정입니다. 한번 둘러봐 주시겠습니까? 우습습니다. 참으로 우습습니다. 인간이란 것이 이리도 어리석은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이제야, 이제야 서방님의 참뜻을 알았으니....... 압니다. 너무 늦었다는 것을요. 하지만, 후회는 없습니다. 이리 서방님의 손에 죽게 되어 참으로 다행입니다. 그것이 참으로 다행이니, 원이 없습니다. 허나, 이 몸 또한 서방님에 대한 마음이 진실이었다는 것을, 참이었다는 것을 알아주십시오.”
“....... 알고 있습니다. 하오나, 그리하신다고 하여, 전하의 의중이 바뀌는 것은 없을 것입니다. 전하께서는, 전하께서는 부인으로 인해, 이성을 잃었습니다. 억울하다 고하지 그러셨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고하지 그러셨습니까? 이것이 무엇입니까?”
“그리 고한다고 믿어나 주시겠습니까? 아닙니다. 이리 함구할 것입니다. 이 몸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서방님께서는 믿지 않으실 것입니다. 또한 그것이 참이라고 하더라도, 그것 또한 믿지 않으실 것입니다. 괜찮습니다. 괜찮습니다. 늦게라도 서방님의 심중을 알았으니, 이 얼마나 다행입니다. 그것마저 마지막 가는 길에 모르고 떠났더라면, 죽어 원기가 되어서도 서방님을 용서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서방님을 잘 보필하여 주십시오. 잘 보살피어 주십시오.”
경이 일어섰다. 깊은 한숨이 절로 나왔다. 참으로 어찌할 방도가 없는지, 막막할 뿐이었다.
사정전에 또다시 중신들이 들었다. 아직도 어우동의 형벌을 놓고 신경전이 벌어졌다. 강경론과 동정론이 팽팽하였다. 정 창손이 성종에게 아뢰었다.
“전하! 어우동은 종친의 처이며, 사족의 딸로서 음욕(淫欲)을 자행한 것이 창기(娼妓)와 같으니, 마땅히 극형에 처해야 합니다. 그러나 태종과 세종 때의 사족의 부녀로서 음행(淫行)이 매우 심한 자는 간혹 극형에 처했다 하더라도, 그 뒤에는 모두 율에 의하여 단죄하였으니, 지금 어우동 또한 율에 의하여 단죄하소서.”[<성종실록>11년 [1480] 9월 2일]
조정의 전례에 따라, 정해진 법률에 의해 죄를 심판하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성종은 자신의 의지를 굳히지 않고, 참형을 주장하였다. 이에, 율 밖의 형벌을 적용하면 자의적으로 율을 변경하는 실마리가 된다며 김 국광이 견해를 말하였다. 채수의 의견도 마찬가지였다. 어우동의 죄는 무겁지만, 그것이 사형에까지는 이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윤 필상이 두 사람의 의견을 가로막으며 어우동의 사형을 주청 드렸다.
“전하! 어우동이 강상을 무너뜨렸는데도 불구하고, 죽이지 않으면 음란한 풍속을 어떻게 그치겠사옵니까. 남녀의 정은 사람들이 크게 탐하는 것이므로, 법이 엄격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장차 욕정을 자행하는 춘추시대 정나라, 위나라의 풍속이 되살 날 것이옵니다. 청컨대, 어우동을 큰 벌에 처하여 후세 사람을 경계하시옵소서.”[<성종실록>11년 [1480] 9월 2일]
이어, 홍 응과 한 계회가 아뢰었다.
“전하! 국가에서 죄를 정할 때는 한결같이 율문에 따르고, 임의로 가볍게 하거나 무겁게 할 수는 없는 것이옵니다. 하물며, 전하께서 즉위하신 이래 형장을 강등하여 관대한 법전을 따랐으며, 법외로 논단한 적은 없었사옵나이다. 어우동의 추악한 행실은 마땅히 극형에 처해야 되나, 임금의 은덕은 죽음 중에서도 살릴 길을 구해야 하옵니다. 청컨대, 율에 의해 결정하옵소서.”[<성종실록>11년 [1480] 9월 2일]
이어, 심회가 법률 밖의 법을 따르자며 어우동의 사형을 주장하였다. 김 계창도 이를 더욱 찬성하며 나섰다.
“전하! 어우동은 극형에 처해야만 마땅하옵나이다. 이를 그냥 넘겨서는 아니 될 것이옵니다. 어우동을 극형에 처하여, 본보기로 삼으시는 것이 옳을 것이옵니다. 청컨대, 전하! 부디, 전하의 뜻을 굽히지 마시옵고, 어우동을 극형에 처하여야 할 것이옵나이다.”
이미 성종의 심중을 헤아린 김 계창이 어우동의 사형을 극구 주장하고 있었다. 어우동을 동정하는 대신들을 향해, 차마 입에 담기도 민망한 말들을 쏘아내며, 김 계창은 어우동의 사형에 뜻을 꺾지 않았다. 성종의 의중이 그러했으니, 김 계창은 그것을 놓치지 않으려 애를 썼다.
**
경이 어우동의 집으로 들었다. 연이는 마루에 걸터앉아있었다. 눈이 풀렸으며, 끼니는 매 걸렀는지, 꼴이 말이 아니었다. 경이 든 것도 모른 체, 그리 앉아있었다. 반쯤 벌어진 입이, 정신을 놓은 것만 같았다.
“연이라 하였더냐? 정신을 차리어라.”
뜻밖의 손님에 놀라는 기색도 없었다. 그저, 그 상태로 고개를 올리더니, 경을 바라보았다. 경이 다시금 말을 건네었다.
“부인께서 네 걱정이 많으시다. 그러니, 이리 넋을 빼고 있지 말고, 너라도 정신을 차려야 할 것이 아니더냐?”
연이가 다시금 풀린 눈을 내리며 말을 꺼내었다. 그것은 이미 포기의 상태였다.
“우리아씨, 우리아씨가 죽는다면서요? 참말입니까? 밖으로 나가면 온통 그 이야기로 쑥덕입니다요. 아니지요? 우리아씨, 우리 고운 아씨, 죽는 것이 아니지요? 청풍서방님께서 그리하실 리는 없습니다요. 암요, 우리아씨 꼭 살아나올 테니 두고 보십시오.......”
경이 시선을 돌려 먼 곳을 응시하였다. 그리 가는 것도 복일 터였다. 허나, 남아있는 사람들의 고통은 어찌 감당하란 말이던가. 경이 깊은 숨을 들여 마셨다.
“그렇다면, 이리 있어서는 더욱 아니 될 것이 아니더냐? 정신을 차리어라. 부인께서도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시다. 그런데 너마저 이리 있으면 되겠느냐? 뭐라도 먹었더냐?.......”
경이 갑자기 말을 끊으며 고개를 대문으로 향하였다. 대문을 열고 누군가가 들어서고 있었다. 아장아장 걷는 아기였다. 앙증맞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넘어지지 않으려 애를 쓰면서도, 신기하던지 제 걸음에 깔깔거리며 웃고 있었다. 큰 눈망울에 검은 눈동자가 너무나 맑고 깨끗하여 눈이 부셨다. 오뚝한 코가 어우동을 빼어 박았다. 시원스레 웃는 작은 입술이 야무졌다. 색동 꼬까옷을 입고, 마당을 너머 오다 경을 쳐다보았다. 순간, 웃음을 멈추던 아기가 고개를 비스듬히 돌리더니 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다시금 깔깔거리며 웃고 있었다. 그 뒤로 갑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연이가 반기지 않는 걸로 보아, 도성 안으로 돌아 온지 제법 된 모양이었다. 경이 마당으로 내려와 한쪽 무릎을 꿇으며 아가를 살피었다. 어쩜 이리도 귀엽고 고울 수가 있는지 마냥 신비로웠다. 아기가 아장아장 걸어와 경의 얼굴에 자그마한 팔을 뻗어 코를 만지려하였다. 그때, 연이가 황급히 일어나서는 아기를 품에 안고 감추었다. 갑상이 다가와 경에게 묵례를 하였다.
“어찌되었습니까? 아씨께서는 영영 나오시질 못하는 것입니까?”
경이 갑상에게 가벼운 묵례를 하며, 대꾸하지 않았다. 이어, 연이가 미친 사람처럼 경을 향해 소리쳤다.
“이 아기씨는 아닙니다요. 그러니 어서 가셔요! 이 아기씨는 제 아이입니다요. 도련님과 제가 나은 아깁니다요. 그러니 어서 가셔요. 가시란 말입니다요.”
어찌나 앙칼지게 소리치는지, 달려들어 물어뜯을 기세였다. 갑상이 연이에게로 다가가 등을 토닥이며 다독거렸다. 그러자, 뒤를 힐끔거리며 아기를 안고 방으로 냅다 들었다. 갑상이 경에게 다시 다가섰다. 경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아기씨가 참으로 어여쁘십니다. 이름이 무엇입니까?”
“번좌입니다....... 정녕, 정녕, 그리는 놓아주시지 못하신다 하셨습니까? 정녕, 죽어도 놓아주지 못하신다 하셨습니까? 그리, 그리 목숨을 가져가셔야 온전해 지신다 하셨습니까?”
“남녀간의 은애가 이리도 무서운 것인지 몰랐습니다. 두 분의 사모곡이 이리도 무서운 것인지 몰랐습니다. 멀리 가십시오. 부인께는 함구할 것입니다. 저 아이도 데려가십시오. 부인의 심려가 크십니다.”
나서려는 경의 팔을 갑상이 붙잡았다. 경이 돌아보자, 갑상의 두 눈 가득 눈물이 고여 있었다.
“정히, 정히 그 방법밖에는 없다 하시었습니까? 꼭, 꼭 그리 목숨마저 가져가셔야 하시겠다 하시었습니까? 말려주십시오. 차라리, 이 목숨을 가져가고, 아씨를 살려 달라 하십시오. 이리는 못 보냅니다. 이리 보낼 수는 없습니다. 차라리, 차라리 제 목숨을 가져가라 하십시오.......”
“....... 이리 끝이 나야합니다. 그래야, 두 분의 가슴에 온전히 남을 것입니다. 그리하여야, 두 분의 가슴에 다시 피어날 것입니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갑상의 팔이 미끄러져 내렸다. 경이 짧은 묵례와 함께 자리를 떴다. 갑상의 애달픈 부르짖음이 세상을 깨우는 듯하였다. 그 소리는 천둥보다 더 컸으며, 번개보다 빠르고 날카로웠다.
**
“하늘에서는 비익조가 되길 원하였고, 땅에서는 연리지가 되길 바랬었습니다. 서방님을 사모하는데 있어, 소첩 한 치의 거짓도 없었으며, 그리 한 우물만을 팠습니다. 하오나, 너무나 깊게 파, 그 곳에 수몰되고 말았습니다. 그것을 누구에게 원망하리까. 이 년, 서방님에 대한 오해는 풀었으나, 어찌 갈까 두렵습니다. 서방님을 그리 다치게 했던 이 몹쓸 년, 어찌 갈까 두렵습니다. 이리 죽는 것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서방님의 크나큰 상처에 고름 한곳 짜드리고 가지 못하니, 그것이 한스러울 뿐입니다.”
어우동이 옥사의 벽에 기대어, 쉴 새 없이 넋두리처럼 혼잣말을 해대었다. 청풍이 처음 들었던 그 모습을 회상하며 그리 웃어보고 싶었으나, 그것마저 죄 많은 사람의 욕심이었는지, 쉽게 그려지질 않았다. 그 마음이 동하였는지, 옥사 밖이 시끌벅적하였다. 요란스러움도 잠시, 성종이 옥사로 들었다. 대동한 내시에게 성종이 눈짓을 하자, 고개를 조아리며 물러났다. 성종의 눈빛은 여전히 살찼다. 어우동이 일어나 예를 갖추었다. 어우동은 고개를 숙이고, 성종의 발만을 주시했다.
‘저 고운 걸음으로 제게 오시었건만, 이제는 그 발마저 제 것이 아니듯 하옵니다. 어찌하여, 이렇게 낯설게만 느껴지는지 모르겠사옵니다.’
성종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어우동의 검은 머릿결에 시선을 박았다. 그러다 성종이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피었다. 옥사 안은 형편없었다. 짚들이 깔린 차가운 바닥에 어우동이 앉아있었다. 저리, 잠을 자는 것도 아니게 청하였을 것이고, 곡기도 걸렀을 것이었다. 그도 잠시, 또다시 끓어오르는 배신감으로 인해 성종의 눈이 뒤집히는 듯하였다. 한동안 우왕좌왕 갈피를 못 잡던 성종이 자리에 쪼그려 앉으며 팔을 뻗었다. 그리고는 어우동의 얼굴을 들어올렸다. 두 사람은 그리 눈빛을 주고받았다. 아무런 말없이, 그리 서로의 눈빛만을 주고받으며 애석해하였다. 어우동의 눈에서 눈물이 주루룩 흘러내리자, 성종이 팔을 걷으며 고개를 돌렸다.
“내게, 내게 마지막으로 무슨 할말이라도 있으시오?”
“서방님!......”
성종이 어우동을 또다시 쳐다보았다. 울음을 참으려는 것인지, 성종이 입술을 깨물며 인상을 찌푸렸다.
“서방님! 소첩 괜찮사옵니다. 이리, 서방님을 뵙고 가자니, 망극할 따름이옵니다.”
눈물을 흘리며 어우동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이 더욱 서러워 성종이 차갑게 말을 받았다.
“나를, 나를 그리 부르지 마시오. 나는 그대의 서방이 아니외다. 나는, 나는 이 나라의 지엄한 임금이외다. 그러니....... 그러니, 죄인은 나를 그리 부르지 말라.”
어우동이 여전히 웃어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애석한 통곡이 새어나올세라 어우동이 입을 틀어막았다. 성종이 어우동을 향해 물었다. 눈을 맞추지 아니하였다.
“참이더냐? 참으로, 참으로 그리 몸을 함부로 던졌더냐? 왜 그리하였노라고 묻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대답만 하라.”
어우동이 말을 잇지 못하며 고개만을 흔들었다. 계속하여 고개만을 흔드는 어우동을 향해 성종이 소리쳤다.
“대답하라하질 않더냐? 내, 네게 대한 모든 것이 진실 이었다 이르질 않았더냐? 네게 갔던 모든 것이, 이, 이, 사내의 순정이 참이었다 이르질 않았더냐? 어찌하여, 어찌하여 내게 그랬느냐? 내가, 내가 참으로 몹쓸 사람을 사모하였단 말이더냐? 내가, 내가 참으로 음탕한 계집을 사모하였단 말이더냐?”
“전하! 전하......! 으흐흑!”
결국, 어우동이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성종이 몸을 일으켜 세웠다. 옥사를 나서려는 성종을 향해 어우동이 울부짖었다.
“전하! 소첩의 말도 듣고 가시옵소서. 소첩, 죽는 것이 두려워 이러는 것이 아니옵니다. 전하! 소첩도 전하만을 은애하였사옵니다. 소첩, 전하의 손에 죽으니, 무엇을 더 바라겠사옵니까. 하오나, 전하! 소첩의 마음도, 소첩의 심정도 헤아려주시옵소서. 전하!”
성종이 뒤돌아보았다. 그리고는 싸늘히 말을 뱉었다.
“허면, 허면 아니라고 말해보라. 상소문이 모두 거짓이라 말해보라. 어서!”
“전하! 전하......!”
“발칙한 것 같으니라고. 그리 전전하며 살고 싶더냐? 그리 함부로 몸을 휘둘리며 살아남고 싶더냐? 그 탐욕스런 몸뚱어리로 목숨을 연명하고 싶었더냔 말이다.”
성종의 고함소리에 고막이 터질 듯하였다. 어우동이 귀를 틀어막으며 바닥에 엎드렸다. 그리고는 흐느껴 울었다.
성종 11년(1480)10월 18일 날이 밝았다. 어우동은 의금부 마당에 끌려나와 새끼줄에 또다시 묶이었다. 바람이 불었다. 가을바람치고는 살을 에는 칼바람이었다. 비가 오려는지, 하늘이 먹먹하였다. 어우동이 눈을 지그시 감았다. 어디선가 연이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았다. 아가의 재잘거림도 들리는 것 같았다. 꽃비가 내릴 것만 같았다. 그 옛날, 동희였을 적에, 맞았던 꽃비가 내릴 것만 같았다. 어우동이 눈을 감고 자신을 뒤돌아보았다.
‘나는 정녕 무엇이었을까. 사람들에 의하면, 나는 풍기가 문란하고 음탕(淫蕩)한 여자였다. 한지아비를 섬기지 못하였고, 여러 사내와 통정을 하였으니, 음탕한 여자가 아니던가. 허나, 나를 사모했던 사내들은 모두 어딜 가고, 나 홀로 탕기(蕩妓)가 되어 앉았으니....... 차라리 기생(妓生)이 되었더라면, 기녀(妓女)가 되었더라면. 그 많은 기녀들을 잡아다가 문초는 하지 않을 터, 어째서 나만이 홀로구나. 차라리 기생이라도 되었을 것을, 기생이라도........ 꽃비가 내렸으면 좋겠구나. 그 꽃비 사이로 내님도 오시지 않겠는가....... 누구였던가. 그 분이 뉘였던가. 나를 그토록 어여뻐해 주고, 괴이해주셨던 분이 누구였던가. 아버님이었던가? 아닐 것이다. 아버님은 나를 버리지 않았던가. 내 딸이 아니다 라고 그리 말씀하시지 않았던가. 그럼 누구였던가? 청풍서방님이 아니던가. 그 분을 생각하면 왜 이다지도 솔 향이 솔솔 풍기는지, 기분이 좋구나. 그러고 보니 어디선가 솔내음이 나는 것도 같구나. 서방님! 내 서방님! 이 생에 태어나, 마음 것 흠모하게 해주신 고마운 서방님! 내 서방님! 내 정인이셨던 서방님! 소첩에겐 오로지 서방님만이 가득하였을 뿐이옵니다. 그 마음이 너무나 많아, 그 마음이 너무나 커, 그것이 미안하고 죄스러울 뿐입니다.’
감은 두 눈 위로 꽃비가 내리는 듯하였다. 상큼함이 내려앉아, 어우동의 코를 감미롭게 하였다. 눈을 뜨기 싫었다. 이대로 눈을 뜬다면, 꽃비가 시궁창 더러운 오물로 바뀔 것만 같았다. 어우동의 귓가로 찢어질 듯한 연이의 울부짖음이 들려왔다.
“괜찮다. 괜찮다. 연이야! 왜 우느냐? 나만 홀로, 좋은 세상으로 떠나 미안하구나! 네게 좋은 것 하나 제대로 먹이지 못하고, 네게 좋은 것 하나 입히지 못하여, 그것이 한스러워 눈이라도 감을 수나 있을는지....... 괜찮다는데 왜 자꾸 우는 것이더냐. 그만 하여라. 그치지 아니하면 화를 낼 것이다.”
관군들이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어우동을 두려운 듯 쳐다보았다. 지금 의금부에선 또다시 김 계창이 어우동의 사형에 주청을 드리고 있었다. 밤새 침수를 들지 않았던지, 성종의 눈이 퀭해있었다. 핏대 선 눈을 하고 성종이 신들의 의견을 다시금 물었다. 역시나, 율에 의해 처벌함과 사형이 상반되었다. 이에, 김 계창이 뜻을 굽히지 아니하고선, 심회와 같이 성종을 부추겼다. 성종이 의금부에 일러 다시금 형을 조정하라 일렀다.
“음란 방종에도 불구하고, 어우동을 죽이지 않는다면 뒷사람을 징계할 수단이 없을 것이다. 이에 의금부는 사율(私律)을 적용하도록 하라.”
곧이어, 의금부에서 성종의 뜻에 맞추어, 율 밖의 법을 적용하여 아뢰어왔다.
“전하! 어우동은 남편을 배반하고 도망하여 바로 개가(改嫁)한 것을 비의(比擬)하여, 교부대시(絞不待時)에 처해야 할 것이옵니다.”[<성종실록>11년 [1480] 10월 18일]
교부대시(絞不待時)라 함은 교형을 처하되, 시간을 기다리지 않는 것이었다. 대신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에, 성종이 어명을 내리며, 입을 막았다. 성종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어우동이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 성종과 눈을 맞추려 애를 썼다. 보아야 할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청풍의 따스했던 눈길을 보아야 할 것이었다. 그리 온화하게 가야 할 터였다. 허나, 성종은 어우동의 시선을 피해 다른 곳만을 주시하고 있었다. 한참만에야 성종이 힘겹게 고개를 돌려 어우동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엔 은애도 있었고, 분노도 있었고, 원망도 있었으며, 편함도 있었다. 어우동이 성종의 눈빛을 피하지 아니하며, 속으로, 속으로 애원하였다.
‘괜찮사옵니다. 소첩, 참으로 괜찮사옵니다. 이리도 편하여보긴 태어나 난생 처음인 것 같습니다. 그러니 주저하지 마셔요. 주저하지 않으셔도 되옵니다. 전하가 주저하시면 미천한 계집, 더욱 살고 싶어집니다. 그러니, 그러지 마셔요. 그런 눈빛으로 저를 바라보지 마셔요. 소첩도 한낱 여자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부모님의 사랑의 원했고, 출가하여, 지아비와 시부모의 사랑을 원했고, 자식의 사랑을 원했습니다. 어찌, 소첩의 욕심이 크다고 하겠나이까. 그 욕심 버리자, 너무나 귀한 분이 제 마음속으로, 몸속으로 그리 들었습니다. 너무나 고귀하고 소중하며, 소첩 품지 않을 수가 없었사옵니다. 서방님! 내 서방님! 은애하였습니다. 은애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옵니다....... 소첩 무엇으로 태어나, 이리도 파란만장한 삶을 영위하였는지, 무슨 죄가 그리도 많아, 이리도 기구한 운명을 엮어갔는지 모르겠사옵니다. 그런 눈으로 소첩을 보지 마셔요. 흐르는 물처럼, 자연의 섭리처럼, 그리 살고 싶었습니다. 서방님 한분 제 마음속에 깊이 가두고, 그리 살고 싶었사옵니다. 억울하다 소리치지 않을 것입니다. 원통하다 그리 소리치지 않을 것입니다. 서방님을 원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언젠가는 소첩의 진심을 알아주실 것이라 믿사옵니다. 먼저 가겠사옵니다. 먼저 가서 기다리겠사옵니다. 그러니, 부디 소첩을 잊지 마시옵소서. 마중나간 소첩을 모른다하시어 뿌리치지 마시옵소서. 그때는, 그때는 두 손 꼭 붙잡고, 그리 한평생 살아보고 싶사옵니다. 기다릴 것입니다. 기다리고, 기다리며 그리 살았사옵니다. 하온데, 그 기다림이 뭬 힘들겠사옵니까. 전하! 부디, 옥체 보존하시옵고, 강녕하옵소서....... 그리고 신첩을 기억하옵소서. 그 뉘가 있어 신첩을 기억하오리까....... 다만, 다만, 소첩! 우리의 아가가 걱정이옵니다. 허나, 도련님을 믿습니다. 믿어야겠지요. 이년, 바라는 것이 있었다면, 아가와 함께 서방님과 오순도순 정겹게 웃어나 보는 것이었사옵니다. 아가! 내 아가! 이 어미를 기억하지 마라라. 그리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네 어미는 내가 아니라, 내가 아니라, 지금 네 곁에 있는 어여쁜 분이니라. 연이야! 부탁한다. 연이야! 다음 생에 다시 태어난다면 꼭, 꼭, 그때는 내가 너를 모실 것이니라.’
어우동의 눈에 눈물이 고여 떨어졌다. 하지만, 얼굴가득 미소를 담고 있었다. 그것은 피죽도 못 먹어 창백한 얼굴이 아니라, 활짝 핀 매화꽃이었다. 꽃 향을 풍기며, 성종을 향해 부드럽게 미소 짓고 있었다. 더없이 평온해보였다. 교부대시(絞不待時)가 내려졌다. 성종이 어우동을 향해 입을 열었다. 매섭지 아니하였다. 살차지 아니하였다. 싸늘하지 아니하였다.
“죄인은 들으라. 마지막으로 할말이 있더냐?”
“미천한 아녀자의 몸으로 태어나, 그저 섭리대로 살지 못한 것이 애달프고, 애달플 뿐. 이네 몸, 죽어 사라지면 그만이나, 이년으로 하여금 뿌리박혀 아픈 심정 어찌 회복할까 걱정이옵니다. 부디, 전하오니, 이년으로 받은 상처, 이년의 죽음으로 치유하시길 바랄 뿐이옵니다. 그리고 전해주옵소서. 이년의 정인에게 전해주옵소서. 이년의, 이년의 사모곡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이옵니다. 천년이 지나고, 만년이 지나도, 이년이 가슴에 품은 정인에 대한 사모곡은 계속 될 것이라고 말이옵니다. 그러니, 더 이상 아파하지 마시라, 그리 전하여 주옵소서. 그러니, 더 이상 헤매지 마시라 그리 전하여 주옵소서.”
성종이 돌아섰다. 이윽고 목에 올가미가 채워졌다. 어우동이 입가에 온화하고 편안한 미소를 지으며 눈을 감았다. 처음으로 되돌아가리라. 태어났던 그곳으로 되돌아가리라. 매화꽃 향내 그윽했던 이른 봄으로 돌아가, 한 송이 붉은 홍매화로 태어날 것이리라. 그리하여 내님 걸으시는 걸음걸음, 사뿐히 즈려 밟을 수 있도록 흩뿌려지리라.
성종이 결국, 걸음을 떼어놓지 못하고 뒤돌아보았다.
‘내, 내, 참으로, 진실로 그리 그대를 사모하였소이다. 나를 원망하지 마시구려. 어찌하여, 그대를 사모한 마음이 이리도 커, 내 자신과 그대를 이리 만들었는지, 참으로 원망스럽소이다. 먼저 가서 기다리시구려. 그리하여 나를 마중 나오시구려. 하늘의 비익조가 되어, 땅의 연리지가 되어, 그리, 그리 마중 나오시구려. 어찌, 어찌 나를, 이 몹쓸 나를 사모하였소이까. 내가 잘못하였소이다. 그대를 향해 날아들지 말았어야하였거늘. 조금만 참았어야하였거늘. 그리 가셔서 기다리시구려. 조금만, 조금만 기다리시구려. 나를 놓지 말고 기다리시구려. 억만년이 흘러, 우리가 닿을 수 없다하더라도, 언젠가는 다시 만나는 날이 올 것이외다. 그러니, 그러니, 부디, 나를 놓아서는 아니 될 것이오. 나를 마중 나와야 할 것이오. 꼭, 꼭, 그리하셔야 할 것이오.’
성종의 눈빛이 더욱 빛을 내었다. 그것은 차마 떨어트리지 못한 눈물의 잔여물일 것이었다. 어우동의 목이 하늘로 높이 치솟았다. 발이 땅에서 떨어지며, 하늘로 높이, 더 높이 치솟았다.
‘괜찮사옵니다. 괜찮사옵니다. 눈물을 흘리지 마옵소서. 어찌하여, 소첩 가는 길에 눈물을 보이시나이까. 그러지 마셔요. 그러지 마시어요. 서방님의 말씀대로 비익조가 되어 날 것이며, 연리지가 되어 뿌리박을 것이옵니다. 그러니 소첩 마지막 가는 걸음에 그 귀한 눈물은 아껴두어, 후에, 후생에 다시 만나, 환희의 눈물로 뿌려주시옵소서. 그리하시면 되옵니다. 원망치 않을 것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소첩, 먼저 가옵니다. 그리고, 그리고 다시는 헤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서방님의 발목을 붙잡고, 손목을 붙잡고, 그리 놓지 않을 것이옵니다. 은애하였습니다. 은해하옵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옵니다.......’
어우동의 발길질이 멈추었다. 발길질이 멈춘 다리 사이로 오줌이 흘러나왔고, 처진 얼굴위엔 입술로 거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올가미가 벗겨지고, 바닥에 어우동이 내려졌다. 수레에 올려져 어우동의 시신이 의금부를 빠져나갔다. 기다리던 연이가 그 모습을 보며 실신하고 말았다. 미복을 하고 뒤에 서있던 경이 연이를 들쳐 업었다. 그리고는 수레를 받아 어디론가 향하였다. 사람들의 돌이 날아 들어와 경과 연이를 때렸다. 돌팔매질로 정신을 차린 연이가 경의 어깨에서 어우동에게 속삭였다.
“아씨, 아씨! 넋을 잃지 마소서....... 아씨, 넋을 잃지 마소서. 그리하여, 그리 사모하신 서방님의 곁에 머무소서. 그리 머물다, 훗날 같이 훨훨 날아가시어요. 아씨, 아씨! 이 년의 목소리가 들리십니까요? 이 년의 목소리를 따라, 넋을 잃지 마셔요. 그리하여, 서방님 곁에 머무시다, 그리 같이 날아가시어요. 아셨지요?”
雙頰凝소髮抹漆(쌍협응소발말칠) 두 뺨은 젖이 엉긴 듯, 머리는 옻칠한 듯*酉+禾=연유 소
眼光入簾珠白樂(안광입렴주백락) 눈빛은 발로 들어 구슬처럼 또렷하구나.
故將白練作仙衣(고장백련작선의) 짐짓 흰 비단으로 선녀의 옷을 만들어도
不許紅膏汚天質(불허홍고오천질) 붉은 연지로 원래의 바탕 더럽히지 못 하는구나
吳音嬌軟帶兒癡(오음교연대아치) 오나라 사투리 귀엽고 부드러워 어린 티 나고
無限間愁總未知(무한간수총미지) 무한한 인간의 근심 전혀 알지도 못 하는구나
自古佳人多薄命(자고가인다박명) 예부터 가인은 운명이 기박한 사람 많다지만
閉門春盡楊花落(폐문춘진양화락) 닫은 문에 봄도 다 가니 버들 꽃이 지는구나.
박명가인(薄命佳人) _ 소식(蘇軾)
폐서인윤씨(연산군의 생모)는 어우동이 교부대시(絞不待時)를 받은 2년 후, 성종 13년(1482) 8월 16일 사사되었다. 어우동을 위한 유일한 위로의 기록이 있었으니, 다음과 같다.
훗날, 사신(史臣)이 어우동의 죽음에 대해 논평하기를. [김 계창이 임금의 뜻을 헤아려 깨닫고, 힘써 영합기만 하였다. 소위 ‘시대에 따라서 가볍게도 하고 무겁게도 한다.’는 것이 율(律) 밖의 형벌을 말함이겠는가? 감히, 이 말을 속여서 인용하여 중전(重典)을 쓰도록 권하였으니, 이 때의 의논이 그르게 여겼다.]하였다. [<성종실록> 11년 10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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