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동적 대국의 평화(Pax)와 수동적 소국의 평화(Peace)
주도적으로 이룬 힘 있는 평화(Pax)와 종속적으로 얻는 힘겨운 평화(Peace)
언제부터인가 “Pax Romana”, “Pax Americana”식으로 Pax라는 말이 유행되기 시작하더니, 요즈음은 Pax Koreana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하고 있다.
그래서 Pax란 무엇인지 새겨볼 필요가 있다고 여겨져서 전문지식도 없는 짧은 말주변을 늘어놓으니 미력한 보탬이라도 되었으면 한다.
원래 Pax는 중심 강국의 능동적 영향력과 패권적 힘에 의한 국제적 평화를 말함인데, 그리스 신화의 Irene에 해당하는 로마신화에 등장하는 평화의 여신의 이름으로서, 로마어(라틴어)로 평화를 뜻한다.
Pax Romana는 로마역사 중 아우구스투스(Augustus) 황제부터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 Antonius) 황제 치세기 동안 약 2백년 정도 지속된 평화로서, 로마의 강력한 힘으로 內海化된 지중해 주변국에 대한 통제적 질서와 번영을 말한다.
이는 외부에 대한 아무 걱정 없이, 자기 일상생활을 살아가는 완전한 평화였다고 한다.
그리고 Pax Britannica, Pax Americana 등의 사례를 보더라도 전성기를 맞이한 강력한 중심국에 의한 패권적 통제에 따른 질서 속에 평화를 누리는 상태, 즉 번영기를 말한다.
평화는 평화인데, “만들어진 평화”가 아닌 “만든 평화”로서, 주도적이고 능동적인 중심국이 스스로 만든 “국제적 평화”가 Pax인 것이다.
그에 비하면 Peace는 종속적이고 수동적인 주변국이 타율적으로 부여받은 “국가적 평화”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양치기는 양을 늑대나 다른 사냥꾼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양의 행동반경을 제한한다.
양은 들판을 자유롭게 떠돌아다닐 수 있는 자유는 양치기 때문에 제한 받지만, 현실적으로 사냥꾼이나 육식동물로 인한 생존위협은 양치기로 인하여 보호 받는다.
자기 양을 잡아먹든, 남의 양을 훔치든, 잡아먹고 다투든 간에 양치기 마음먹기지만, 양에게는 운명수용권 밖에 없고, 양치기를 떠나서는 자유는 있지만 생존은 보장받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양을 많이 가진 양치기일수록 목소리에 크다.
여기서 Pax는 양치기에 해당되는 것이요, Peace는 양에게 해당되는 것이다.
경제학에서 Price Maker와 Price Taker로 구분 하듯이, Pax는 운명결정자의 것으로 Peace는 운명수용자의 것으로 보아야 한다면 과잉인지?
그럼 왜 Pax의 개념이 위대한가?
보통 국제간의 분쟁은 “이권” 때문이라고 한다.
경제적 문제가 주원인이며, 당사국간에 이것이 해결되면 평화가 된다. 이때는 Peace가 된다.
그런데, 강대국 간의 분쟁을 보면 이권문제로 해석이 안 되는 것이 많다.
이권문제 타결 이후에 발생할 당사자 아닌 국가에 대한 영향 문제를 따진다는 것이다.
이는 이권보다 훨씬 상위개념의 그 무엇, 바로 “패권”문제 때문인 것이다.
패권은 중심국이 주변국을 관리하는 것이다. 즉, Pax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자기 Pax권내의 주변국이 다른 중심국의 Pax권으로 이탈하지 않도록 하는 권한이 패권인 것이다.
이권이 국익(國益)을 추구하는 것이라면, 패권은 국위(國威)를 추구하는 것이다.
따라서 패권을 노리는 자와 이권을 탐하는 자의 사고방식은 완전히 다르다.
이러한 패권차원의 평화와 이권차원의 평화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특성을 고찰해보고자 한다.
첫째, Pax와 Peace는 지리적 거리에 따라 다른 형태로 나타난다.
중심국의 Pax에 지리적으로 근린한 주변국의 Peace는 대부분 수직적 주종관계를 맺는다.
이때 주변국은 종속적으로 만들어진 제한적 평화에 갇힌다.
그게 아니면 장기적으로는 흡수합병 된다.
그러나 중심국으로부터 지리적으로 원거리에 위치한 주변국은 Pax와 수평적 대등관계 속에서 Peace를 구가한다.
왜냐하면, 지리적으로 가까운 다른 적대 Pax권으로의 이탈을 방지하기 위하여 격을 높여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적대 Pax에 대한 전초기지 내지 교두보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원교근공(遠交近攻)의 논리가 통하는 것이 패권 중심국들 간의 Pax논리인 것이다.
가령, 미국이 쿠바와 으르릉대면서, 중남미 국가들과는 별로 지원을 안 하면서도 한국, 일본, 유럽 같은 곳에는 호혜적으로 대하는 것이나, 중국이 대만, 베트남과는 으르릉대면서도 아프리카에는 호혜적으로 대하는 것을 보면 알 것이다.
과거에 우리가 중국에 사대관계 아니면 대립관계만 취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여기에 맥락이 있다.
이렇게 보면, 한국이 반미주의를 선택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알 수가 있다.
따라서 약소국은 근린 패권국으로부터의 독립을 확보하기 위한 지렛대로서 원격 패권국의 Pax권에 들어가는 것이 전술적 이권을 보호하고, Peace의 안정과 발전이 보장된다.
그리고 강대국은 지리적으로 먼 적접(敵接)지역 주변국을 자기네 Pax권에 끌어들여야 적성 강대국에 대한 교두보 내지 전초기지를 확보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한 전략적 패권의 지속과 확대를 도모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강대국에게 식민지 아닌 약소국이 스스로 식민지처럼 달라붙는 경우가 있다.
이유가 무엇일까? 그리고 그러한 움직임의 급가속 요인은 무엇일까.
거기에는 공존의 논리가 숨어있기 때문이다.
약소국이 자신의 Peace를 지키기 위한 사대주의라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근린지역 강대국에 대한 사대는 강제적 주종관계 설정에 따른 희생을 피하고 독립성의 일부를 훼손하더라도 제한적 주권을 유지하기 위함이며, 원격지역 강대국에 대한 사대는 근린 강대국의 영향력 확대에 따른 이권마찰(예 : 석유매장지역)에 따른 충돌가능성을 배제하기 위한 수단이다.
약소국이 원격지역 강대국의 Pax권에 편입하는 것은 전초기지라는 중요성을 제공하므로, 근린 강대국에 대한 군사적 위협에 대응하기가 용이하고, 독립성의 훼손이 적으면서도 수평적 유대관계를 설정한다는 데서 매우 유리하다고 볼 수 있다.
둘째, 강대국끼리 접경하면 반드시 대립한다.
서로 비교우위적 요소 때문에 교류가 필요하지만 그것은 이권차원이고, 패권차원에서는 교류의 필요성인 비교우위적 요소를 무너뜨려서 종속화 위험을 없애려고 하기 때문이다.
가령, 중국과 러시아의 예를 들면, 중국의 인구?러시아의 자원개발에 도움이 되지만, 러시아 측에서 보면 극동지역의 자국민 감소와 중국인의 증가는 극동지역 영토주권의 존폐문제까지 위협한다.
또 러시아의 군사력 강화는 당장에는 두 나라의 공동 적국인 미국의 위협으로부터 중국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겠지만, 자칫하면 중국안보에 대한 위협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비교우위 부문별 주종관계 발생소지에 따른 위협의식 때문에 깊은 협력관계가 될 수 없으며, 결국은 깨어진다. (天無二日 土無二王)
이러한 패권충돌을 이권마찰로 위험을 완충시켜주는 대리인이 주변국이다.
셋째, 그럼 우리 주변의 이러한 역사적 사례는 없는가.
먼저, 조선시대의 중국에 대한 사대외교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사대외교에서 중요한 부분이 조공이었는데, 실제로는 조선이 중국에 갖다 바치는 조공보다 중국이 조선에 하사하는 것이 더 많았다고 한다.
그리고 호위병력 때문에 조공행렬은 도적떼들의 습격으로부터 가장 안전하므로 무역상인들이 조공행렬과의 동행을 무역경로로 가장 선호하였고, 이는 무역과 물류의 발전에도 크게 기여하였음은 물론, 중국의 비교우위상품을 다량 반입하여 일본 등 비조공국과의 무역으로 큰 차익을 남겼다고 한다.
조공물보다 하사품이 더 많았다는 것을 대국의 체면 때문이라고 해석하고 있는데, 이게 소국적 인식의 한계다.
非戰時의 Pax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비용으로 보아야 한다.
여기서, 뱁새와 황새라는 비유도 있지만, 소탐대실이란 말이 생각난다.
소탐대실을 이 경우에 갖다 붙이면 “이권을 추구하다 패권을 잃는 것”이란 의미가 된다.
즉, 대중사대로 취한 이권보다 그에 따른 종속 때문에 잃은 패권이 더 크다는 것이다.
가령. 하다못해 무역경로의 도적떼 토벌의 구실은 군사력 강화의 좋은 빌미인데도 말이다.
군사적 긴장을 초래하지 않을 정도의 소규모 군대를 무역행렬에 동행하게 하여 도적떼도 토벌하게 하여 실전경험도 익히고, 군사적 지리도 파악하고, 적정수준의 호위비용을 징구하여 군사재원도 조달하는 등 용도가 무지무지하게 많다.
그러면 조공행렬 없을 때도 무역하여 더 많이 벌 수 있는데도 말이다.
또한 중국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모택동의 문화혁명기에 몽골영웅 징기스칸을 패권주의자로 매도하여 그의 사원을 패쇄할 정도로 배척하였다가, 등소평 이후 추구한 동북공정에 있어서는 오히려 징기스칸 일대기를 영화로 제작하는 등 징기스칸의 중국인화를 시도하고 있다.
몽골을 중국의 Pax권에 포함시키기 위한 교묘한 술책이다.
실용주의 노선에서 볼 때, 공산주의는 집권도구요, 패권주의가 정책목적으로 보면 되는 것이다.
이는 푸틴 집권이후의 러시아도 마찬가지일 것으로 본다.
중국과 러시아가 미국을 압박하는 형태를 취하기 위하여 중남미 국가들과 로마시대의 파트로네스와 클리엔테스의 관계처럼 친중·친러화 시키는 그들의 전략적 책동을 볼 때, 이권적 측면에서 2차원 평면지도를 바라보는 우리의 눈에는 탈냉전 시대일지 모르나, 패권적 시각에서 3차원 지구본을 내려 보는 그들의 시각에서는 신냉전시대가 도래한 지도 한참 오래되었다고 봐야 한다.
그러니, 이러한 Pax觀이 없는 우리나라 좌익 먹물들이 펼치는 가장 우스운 논리 중에 하나가 “냉전시대 논리” 들먹거리며 탈냉전적 시각에서 평화(Peace)를 주장하고, 반미적 시각에서 미국의 모든 행위를 그들의 이권추구 차원이라고 남들 다 아는 소리를 가르치는 것이다.
그들이 이념을 빙자하여 친중·친러적 Pax觀에 예속된 중국·러시아에 대한 사대적 의도에서 내뱉는 전략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들은 역사를 읽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어쨌든, 위와 같은 관점에서 볼 때, 최근의 신냉전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구냉전과 Pax진영이 비슷하기 때문에 부르는 이름이고, 역사적으로 볼 때, Peace라는 평화는 Pax끼리의 냉전상태의 부산물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고 본다.
이는 Peace적 사고방식에 안주한 먹물들은 이해할 수 없는 논리다.
왜, 중국·러시아 같은 육접(陸接)된 근린국가와의 대등적 친교가 맺혀지기 어려운지, 왜, 미국·일본 같은 격리된 원격국가와 친교를 맺어야 되는지, 왜 바다로 나가야 되는지, 왜 혐군(嫌軍)적 비무장 평화가 나쁜지....소평화(Peace)적 아집에 갇힌 자는 모른다.
스파르타나 북한 같은 극히 희귀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군사강국이 대부분 경제강국이었음을 모르는가.
이권(利權) 위에 패권(覇權)이다.
남의 이권 범위를 보호라는 구실로 제한할 수 있고, 자기 이권의 범위를 확대할 수 있는 것이 패권이다.
깨어나라. 이젠 좀 그 지긋지긋한 소평화(Peace)추구 태도를 버리자. 대국굴기(大國屈起) 좀 해보게!
오 필승 코리아, Oh-Peace Korea!에 나오는 Peace Korea를 Pax Korea로 고쳐서 Oh-Pax Korea!로 불러보고 싶고, Pax Koreana를 뛰어 넘어 우리도 Pan-America(凡美), Pan-Am처럼 Pan-Korea(凡韓), Pan-Ko라는 것도 지향하고 추구해보면 뭐가 덧나나.
소평화(Peace)를 버리고, 대평화(Pax) 아니 기왕이면 범평화(Pan)까지 추구해보자.
2008년 무자년 새해에는 이러한 관점이 많이 요구된다고 생각되어 써본 것이니, 필자의 얕은 지식에서 흠결을 찾지 말고 깊은 마음에서 새로운 각오를 다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2008. 1. 1.
6485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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