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학규 씨에 보내는 공개 질의
손학규 씨! 귀하는 3월19일 기자회견을 갖고 한나라당 탈당을 공식 선언했습니다. 귀하의 탈당 선언을 지켜보면서 또 ‘배반의 계절’이 돌아왔음을 실감합니다. 귀하는 “한나라당에 등을 돌리지 않기 위하여 대한민국의 장래와 국민의 희망에 등을 돌릴 수는 없다”고 했습니다만, 탈당은 결코 아름답게 보이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의 장래와 국민의 희망을 위해 정권교체를 열망하는 입장에서는 또 하나의 ‘구태’가 국민의 희망에 찬물을 끼얹은 것으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에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첫째, 귀하는 기자회견에서 “낡은 수구와 무능한 좌파의 질곡을 깨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한 새 길을 창조하기 위해 한나라당을 떠나기로 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낡은 수구’는 한나라당을, ‘무능한 좌파’는 노무현 정권을 지칭한 것으로 이해됩니다. 따라서 한나라당도, 노무현 정권도 아닌 제3의 정치세력이 나서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기자회견문 제목도 ‘새로운 정치 질서 창조의 길에 저를 던지고자 합니다’로 되어 있었습니다.
노무현 정권이 대한민국을 퇴보시켜 왔음은 새로운 사실이 아닙니다. 따라서 노 정권의 노선이 더 이상 대안이 될 수 없음은 국민 누구나 공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나라당이 ‘낡은 수구’라는 건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무슨 뜻으로 ‘낡은 수구’라고 한 것입니까? 이념적 성향은 보는 사람의 위치에 따라 달라집니다. 한나라당을 ‘수구’, 그것도 ‘낡은’ 수구로 본다는 것은 보는 이가 좌파의 입장에 서 있음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실제로도 한나라당을 수구로 비난해 온 세력은 좌파였습니다. 그렇다면 귀하는 이념적으로 ‘무능한 좌파’의 입장에 서 있는 것임을 스스로 드러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탈당의 명분이 모순에 빠져 있음을 말해줍니다. 귀하는 스스로 좌파를 자처하는 것입니까? 지금까지 한나라당에 있었던 것은 ‘위장취업’이었습니까?
둘째, 귀하는 “한나라당은 원래 민주화세력과 근대화세력이 30년 군정을 종식시키기 위해 만든 정당의 후신이지만 그러나 지금의 한나라당은 군정의 잔당들과 개발독재시대의 잔재들이 버젓이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고 비난했습니다. 이건 배가 부르자 이제껏 맛있게 먹던 음식에 침을 뱉으며 “음식이 상했다”고 하는 것과 하나도 다르지 않습니다. 군정 잔당들과 개발독재시대의 잔재들이 버젓이 주인 행세를 하는 정당에서 귀하는 지금까지 그들과 함께 맛있게, 그리고 배부르게 음식을 먹었습니다. 귀하가 한나라당의 이름으로 국회의원과 장관, 그리고 경기도지사를 지낸 게 그것입니다. 한나라당 간판이 아니었어도 귀하가 국회의원과 경기도지사에 당선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까? 한나라당이 군정 잔당들과 개발독재시대의 잔재들이 주인 행세를 하는 정당이었다면, 그래서 함께 갈 수 없는 정당이라면 귀하는 애당초 왜 그런 정당의 공천을 받아 출마했습니까? 귀하가 국회의원이나 경기도지사에 출마할 때만 해도 그렇지 않았는데, 요즘 와서 한나라당이 군정 잔당들의 정당이 되었다고 하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알기로 한나라당 의원들은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정치신인들이며, 설혹 다선 의원이라 하더라도 과거 5공 출신은 극소수에 지나지 않습니다. 혹 박근혜 전 대표나, 이명박 전 서울시장을 군정 잔당이나 개발독재시대의 잔재라고 지칭하는 겁니까? 그건 국민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국민이 청산되어야 할 대상에게 귀하를 압도하는 높은 지지를 보내고 있으니 말입니다. 정치도의상, 그리고 상식과 도덕률에 비추어 귀하의 이런 행위가 정당화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스스로 낯이 뜨겁지는 않습니까?
셋째, 귀하는 이어 “그들(군정의 잔당들과 개발독재시대의 잔재들)은 자신들만 과거의 향수에 젖어있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역사와 미래를 거꾸로 돌리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건 또 무슨 말입니까? 구체적으로 어떤 게 대한민국의 역사와 미래를 거꾸로 돌리는 것입니까? 노무현 정권이 망쳐 놓은 나라를 바로 세우고, 피폐해진 경제를 다시 일으켜야 한다는 게 국민의 명령이자 기대입니다. 그런 길로 나아가겠다는 한나라당 및 한나라당 대선주자들의 약속과 다짐이 대한민국의 역사와 미래를 거꾸로 돌리는 것입니까? 그게 아니라면 역사와 미래를 돌리는 행위, 혹은 정책노선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입니까?
넷째, 결국 귀하의 탈당은 좀처럼 올라갈 것 같지 않은 귀하의 낮은 지지율 때문 아닙니까? 삼척동자라도 귀하의 탈당은 한나라당 대선 후보자가 되기 어렵다는 판단 때문일 거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귀하가 한나라당에서는 대권 도전의 기회를 갖지 못할 것이 확실시 되니까 탈당하는 게 아니냐는 것입니다. 경선에 참여하여 1위를 차지하지 못하면 대권도전의 길이 사라지기 때문에 차라리 탈당함으로써 범여권의 후보자가 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놓으려는 것 아닙니까? 그게 아니라면 귀하는 왜 지금껏 한나라당 간판으로 영화를 누려온 것입니까? 그렇게 누릴 것 다 누리고 이제 와서, 그것도 한나라당 대선후보자 결정을 눈앞에 두고 탈당한 것입니까? 귀하가 지적하듯 줄 세우기는 사라져야 할 구태입니다. 하지만 그건 비단 한나라당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사실 줄 세우기보다 더 큰 문제는 ‘배신’입니다. 지난 몇 번의 대통령선거에서 매번 ‘배신자’가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한국 정치의 퇴보를 불렀을 뿐 아니라 한국의 진로를 불행한 방향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국민은 이제 ‘아름다운 승복’을 보고 싶어 합니다. 귀하의 이런 행태야말로 버려야 할 구태 아닙니까?
다섯째, 귀하는 한나라당을 바꾸기 위해 노력했지만 실패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귀하가 한나라당을 바꾸기 위해 무슨 노력을 기울였습니까? 혹 귀하 자신의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데 실패했음을 그런 식으로 말한 것 아닙니까? 귀하가 국민적 지지를 이끌어내지 못한 것은 귀하 자신의 책임이지 그것이 왜 한나라당의 책임입니까? 왜 자신의 책임을 지금까지 귀하가 의탁해 온 당에 전가하는 것입니까?
여섯째, 귀하가 일신의 영달을 위해 탈당한 것은 아무래도 좋습니다. 하지만 굳이 지금까지 자신이 몸담아 온 당에 독설을 퍼붓고 나가야 할 까닭이 무엇입니까? 그래야 귀하의 탈당행위가 정당화되리라고 생각했습니까? 하지만 귀하는 먼저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도리부터 생각해야 했습니다. 귀하의 행위는 도리가 아닙니다. 탈당으로 귀하가 잃은 것은, 국가지도자로서는 부적당한 인물임을 드러낸 것 외에도 귀하가 최소한의 도리마저 팽개치는, 인간적으로 신뢰할 수 없는 사람임을 확인시켜 준 것입니다. 귀하는 어쩌면 정치생명보다 훨씬 더 큰 것을 잃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생각지 않습니까?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묻겠습니다. 그럴 리야 없으리라고 믿지만, 귀하의 탈당이 혹 현재로서는 변변한 대선주자 한 사람도 없는 여권의 판 흔들기의 일환과 모종의 관련은 없는지 확인해줄 수 있습니까? 이런 질의를 하는 것은 항간에 떠도는 설 때문입니다. 대선정국 막판에 가서 이른바 ‘3자 연합’을 통한 여권의 후보단일화로 시너지 효과를 일으킬 것이라는 설이 그것입니다. 후보 단일화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나 노무현 대통령이 “재미 좀 본” 전형적인 판세 뒤집기 수법입니다. 이번 대선에서도 여권에서 3자, 또는 2자의 후보를 만들어 하나로 단일화함으로써 ‘대통합’, 혹은 ‘대연합’을 기치로 내세움으로써 막판 뒤집기를 시도할 것이라는 것은 쉽게 예상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최악의 시나리오로 정권교체가 물 건너 가버린다면 국민은 희망이 없습니다.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습니다. 그래서 확인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귀하의 탈당이 여권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입니까?
귀하는 “한나라당을 위해 순교하기 보다는 국민을 위한 순교를 선택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도 그걸 바랍니다. 진정 국민을 위한 순교를 택하겠다면 정권교체에 장애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진심으로 일신의 영달이 아닌 국민을 생각한다면 지금이라도 차라리 정계은퇴를 선언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어떻게 하든 판을 흔들어 정권교체를 저지하고자 하는 현 집권세력에 이용당함으로써 역사에 오명을 남기지 마십시오. 죽어야 산다는 걸 상기하기 바랍니다.
2007년 3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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