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과정, 거꾸로 가는 교육부
[중앙일보 2007-01-15 00:19]
교육인적자원부가 며칠 전 발표한 초.중.고 교육과정 개정안을 보면 2012년부터 고교 2.3학년이 필수로 이수해야 하는 선택과목 수가 늘어난다. 개정안은 주5일 수업에 맞춰 학생들의 학업 부담을 줄이겠다는 취지에서 마련됐지만, 실제로는 완전히 거꾸로다. 담당 과목을 필수로 지정해 입지를 강화하려는 교사들의 압력에 교육부가 무릎을 꿇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무엇을 위한 개정안인지 알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우리 고교생의 필수 과목 수는 현재도 17개나 된다. 미국.영국의 두 배 이상이다. 교육부도 그동안 우리의 필수 과목 수를 외국처럼 줄이겠다고 거듭 장담해 왔다. 그런데 개정안이 확정되면 오히려 19개로 늘어난다. 이러니 학생.학부모들이 "교육부가 교사들의 밥그릇을 위해 학생들을 희생양으로 삼았다"며 아우성치고 있지 않는가.
지금도 대입을 준비하는 우리 학생들을 보면 너무 딱할 정도다. 교육부는 대학에 내신 비중을 높이라고 강요하고, 대학은 논술을 중시하다 보니 우리 학생들은 대입에 짓눌려 살고 있다. 오죽했으면 '죽음의 트라이앵글(논술.수능.내신)'이란 말까지 나왔겠는가. 이런 마당에 필수 과목을 늘린다 해보자. 학생들의 내신 부담은 더 커지고, 새 필수 과목의 사교육이 기승을 부릴 것은 뻔하다. 이것이 말끝마다 사교육을 없앤다고 호언장담해온 교육부의 정책인가. 전체 수업시간은 줄어드는데 필수 과목을 늘리면 과목마다 교육내용이 부실해질 가능성도 크다.
개정안 초안을 만든 한국교육과정평가원도 이런 문제점 때문에 필수 선택과목 증가에 반대했지만, 교육부의 요구로 정반대로 수정됐다고 한다. 학생.학부모는 안중에 없고, 특정 교사들의 이익단체 역할만 하는 교육부라면 있을 필요가 없다. 필수과목 축소는 세계적인 추세다. 다양화 시대에 맞춰 개설 과목을 늘려 선택 기회를 많이 주되, 필수 과목은 대폭 줄여야 한다. 학생들이 자신의 진로에 맞춰 과목을 선택하게 하고, 대학이 자율적으로 평가하게 하는 것이 다양화.국제화 시대에 맞는 교육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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