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여군부대 시찰 사진이 공개된 방식엔 특이한 요소가 많다. 정부 당국자는 세 가지를 꼽는다. 첫째, 느닷없는 새벽 보도다. 조선중앙통신은 주민이 모두 잠든 11일 새벽 이 소식을 전했다. 통신이 대외용 매체라는 점을 고려해도 특이한 사례다. 새벽에 ‘현지지도’를 알렸다는 점도 전례를 찾기 힘들다. 공개된 사진도 유별나게 많다. 대개 2~3장인데 이번엔 처음에 10장이었다가 2장이 추가됐다. 북한 언론은 보통 김 위원장의 시찰 소식을 전하고 하루 이틀 뒤 사진을 내보냈다. 당국자는 “모든 점이 아주 이례적”이라며 “의도는 분석 중”이라고 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북한 인민군 제821부대 산하 여성포중대를 시찰하고 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1일 공개한 사진이다. 김 위원장의 자세와 얼굴 모습은 이전과 다름이 없다. 최근 아팠다고 하지만 전혀 수척해 보이지 않는다. 왼쪽 끝이 리명수 대장이고 나머지는 부대 지휘관들이다. 두 여성은 중대장과 정치위원으로 보인다.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동국대 김용현 교수는 “대외를 겨냥해 잘 짠 시나리오일 수 있다”고 했다. 김 위원장이 김일성대에서 축구 경기를 관람했다고 보도된 시점은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이 평양 방문을 마친 다음날인 4일이었다. 이번에는 북한의 테러 지원국 해제가 결론을 향해 긴박하게 움직이는 시점, 또 미국이 깨어 있는 시간에 보도됐다. 게다가 미국은 북한에 이미 테러지원국 해제와 관련된 신호를 보낸 것으로 알려진 상태다.

김 교수는 “미국과의 핵 협상과 김 위원장의 동선이 연계돼 있을 수 있다”며 “해제가 공식 선언되면 김 위원장이 출현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대내적으론 8월 16일 이후 잠적한 김 위원장에 대한 북한 주민의 동요를 해소할 필요성이 있었을 수 있다.

최대 의문점인 최근 사진인지 여부는 현재로선 가릴 수 없다. 청와대 당국자는 “1감은 최근이 아닌 여름 사진 같다”고 했다. 와병설을 진정시키기 위해 건강하던 때 사진을 내놓았다는 의심이다. 그러나 가짜가 뻔히 드러날 사진을 공개했겠느냐는 반론이 따른다. 노동신문도 11일자 1면에 군 시찰 사진을 실었다. 가짜라면 대단한 모험인 셈이다. 통일부 당국자는 “가짜일 가능성은 작은 것 같다”고 했다. 진짜 최근 사진이라면 ‘김 위원장 와병’을 주장하는 측엔 곤혹스러운 증거다. 정보 당국은 현재 사진을 분석 중이다

사진 전문가들은 “얼굴 살이 빠진 듯해 보이지만 이전과 별 차이를 발견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헤어스타일, 뒷짐 지거나 팔장을 끼는 자세도 전과 다름없다. 입고 있는 긴팔 인민복 상의가 ‘쌀쌀해진 요즘 가을 날씨’를 반영한 것이며 따라서 사진은 최근 것이란 주장도 할 수 있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10월까지 같은 종류의 상의를 입다가 11월부터 외투를 입었다. 김 위원장은 이 부대를 2001년 9월, 2003년 8월과 10월, 2004년 7월에도 방문했다.

당국자는 “부대에 붙어 있는 세 자리 숫자(821)는 사단이나 군단급을 의미하며 해안포 부대”라고 했다. 중앙통신은 2004년 7월 29일 “이 부대가 전연(전방)에 있다”고 소개했다.

결국 김 위원장이 주요 국정 현안을 정상적으로 장악하고 있음을 내외에 천명하는 사진이란 분석에 무게가 실린다. 와병설 정세를 일단락시키는 셈이다. 동시에 ‘김정일 와병’ 입장을 유지하는 정보 당국의 입장을 어렵게 만든다.

‘축구 경기 보도’로 정보 당국 긴장
정보 당국에 따르면 4일 김 위원장의 축구 경기 관람 보도는 우리 대북 요원들을 한껏 긴장하게 만들었다. 관계 당국에 비상이 걸렸다. 정보망을 총가동해 조속히 확인하라는 상부의 긴급 지시였다. 미국의 대북 정보 감시망에도 협조 요청이 전달됐다. 한 핵심 당국자는 “모든 정보망을 가동했지만 정황은 포착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이 공개활동을 할 때 포착되는 호위총국(경호실) 요원들의 움직임이나 관련 동향이 없었다는 얘기다. 김 위원장의 평양 나들이나 현지지도 때에는 의전과 경호에 쓰이는 전용회선의 특정 신호가 감지된다고 한다. 또 내용을 밝힐 수는 없지만 우리 측 체크리스트에 올라 있는 몇 항목에 변화가 나타난다. 그런데 이런 내용들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정보기관 요원 사이에서는 “김 위원장이 병실에서 TV로 축구를 봤다는 얘기”라는 우스개까지 돌았다.

당국에서는 휴민트(humint·인적정보)를 통한 확인을 시도했다. 하지만 시간과 장소조차 특정되지 않은 축구 경기를 확인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게다가 이런 고급 정보를 은밀히 수집해 우리 측에 전달해 줄 대북 정보망이나 협조 채널은 거의 없는 상태다. 대북 요원 사이에서는 김일성대 교수나 교직원 중 한두 명은 활용 가능한 루트가 있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자책도 나왔다고 한다.

축구 관람 보도와 관련해 일각에서는 극히 통제된 상황에서 짧은 시간 관람이 이뤄졌을 가능성도 제기한다. 우리의 정보망을 따돌렸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정보기관 핵심 관계자는 “북한이 8월 중순 김 위원장이 쓰러진 직후 신변 관련 정보 관리를 더욱 극비리에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호위총국에서도 핵심인 제6국의 극소수 인원만 김정일 관련 정보를 접한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의 병세와 관련해 주목되는 가장 최근의 첩보는 중국의 대북 특사 파견설이다. 최근 중국 외교부의 부부장급 인사가 평양을 극비리에 방문했다는 줄거리다. 이 특사는 ‘김 위원장의 쾌유를 빈다’는 후진타오 국가주석의 친서를 소지했다. 하지만 김정일은 특사 면담을 하지 않았다. 대신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만나 친서를 접수했다는 것이다. 김정일이 이른 시일 내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풀이됐다.

김 위원장의 건강을 가장 잘 파악하고 있는 건 베이징 지도부라는 관측도 눈길을 끈다. 다급한 상황에서 북한 당국이 중국으로부터 5명의 의료진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극비에 부쳐져야 할 그의 건강상태가 노출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얘기다. 이들은 아직 김 위원장의 병상을 지키고 있는 것으로 우리 정보 당국은 확인했다. 한 관계자는 “어쩌면 북한의 김정일 측근보다 더 상세하게 중국이 김 위원장의 용태를 파악하고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일본도 의료진과의 접촉 루트를 뚫으려 공을 들이고 있으나 철저히 차단되고 있다고 한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김 위원장의 최근 상태에 대해 “구두로 지시할 수 있고 주요한 사안은 직접 결정하는 상황”이라고 귀띔했다. 또 다른 체크 포인트로 장남 김정남을 주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과 홍콩·마카오를 오가는 김정남이 급히 평양으로 들어가면 뭔가 중대한 변고가 있는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안성규·이영종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