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프리존 www.freezone2005.com 대표필진칼럼 김성회>
시절이 하 수상하니, 별 요상한 일이 다 벌어진다. 노무현 정권 등장이후 온 나라를 파헤치고 들쑤시다보니 정치권은 물론 나라 전체가 뒤죽박죽이 되고 있다. 그렇게 나라를 뒤죽박죽 만들더니, 이제는 노무현 대통령의 정체성도 알아볼 수 없게 되었다. 그 정도에서 끝난 것이 아니라, 노무현과 대척점에 서 있는 박근혜 대표의 정체성도 뒤죽박죽이 되었다.
지난 8일 저녁, 필자는 눈과 귀가 의심되는 뉴스를 접했다. 친구들과 회의 때문에 늦게 들어가 마감 뉴스를 보며, '허 헛'하는 헛 웃음을 터뜨리고야 말았다. 바로 박근혜 대표의 대표연설과 노무현 대통령의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짜이퉁'지와의 회견내용이 그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독일 방문을 앞두고 독일의 유력일간지인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짜이퉁'지와의 회견 시, 북한 핵문제를 언급하면서 "지금 이 시점에서 미국에게 새로운 양보를 요구하는 것은 무리"라고 하며, "북한이 무조건 6자회담에 복귀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또한 그는 10일 독일을 방문한 자리에서 "남북관계에서 때로는 얼굴 붉혀야"한다는 말을 하며 북한에 일방적으로 끌려가서는 안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북한 김정일의 답방 약속을 지켜야 할 것"이라며 북한을 압박하는 한편, 북한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데 일방적인 평화선언은 있을 수 없다는 강경발언을 토해냈다.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 내용만 본다면, '동북아 균형자론'을 이야기하며 '탈미'를 감행한 모습을 발견할 수 없다. 오히려, 미국의 입장을 이해하며 북한의 전향적 조치를 촉구하는 확고한(?) '우파적 입장'에 서 있는 모습이다.
반면, 박근혜 대표는 국회연설을 통해, 미국 방문 때 이야기했던 이야기를 재탕했다. "미국은 북한의 회담 참여를 위해 구체적이고 명확한 약속을 제시해야 한다"고 하며 북한 핵문제와 관련하여 미국의 '전향적 조치'를 재촉구했다. 또한 필요하다면 김정일 위원장과 만나겠다고도 했다. 그러면서도, 노무현 대통령의 '동북아 균형자 외교'에 대해선 한미동맹을 해칠 수 있는 것이라며 이를 철회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대표의 연설을 보면,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이다. 앞에서는 미국의 전향적 조치를 촉구하며 '미국의 뺨을 때려놓고', 뒤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이 한미동맹을 훼손하고 있다며 이를 시정할 것을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연설 내용조차 앞뒤가 안맞는 대표연설을 한 셈이다.
어찌되었든 노무현 대통령과 박근혜 대표의 대표의 발언만을 놓고보면 여야의 관계가 뒤바뀐 느낌이다. 나아가 노무현 정권과 열린우리당은 좌파, 한나라당은 우파라는 등식이 허물어지는 느낌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우파가 되고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좌파가 된 것처럼 보인다.
노무현 대통령은 "미국이 더 이상 양보할 것이 없다"며 북한의 무조건 6자회담 복귀를 촉구했는데, 박근혜 대표는 "미국의 전향적 조치를 재촉구"하고 있으니, 이것을 어찌 보아야 할까?
북한 핵문제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인식변화는 환영할 만하다. '동북아 균형자론'을 이야기하며 탈삼각동맹의 행보를 보이던 행보와는 전혀 딴 판이다. '동북아 균형자론'이 대한민국을 국제 미아로 만들 수 있는 위험천만한 발상임을 생각할 때, 노무현 대통령의 '대북 또는 북한 핵문제' 인식에 대한 변화는 뒤늦게나마 다행스런 일이다.
하지만, 박근혜 대표의 변화는 무엇인가? 미국에 가서 '전향적 조치'를 촉구하고, 김정일과 만나겠다며 디제이의 입장을 앵무새처럼 떠들더니, 이제는 국내에서 대표연설까지 그러한 주장으로 일관하고 하고 있다. 노무현보다 훨씬 더 좌파같은 소리만 하고 있는 것이다.
정영, 여야가 아니 좌우가 뒤바뀐 것일까? 노무현이 우파가 되고, 박근혜가 좌파가 된 것일까? 이 기막힌 현실을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해야 할까?
필자가 그 뉴스를 듣고 이튼날 아침 산책을 하며 곰곰히 생각해본 결과, 문제는 '포퓰리즘' 때문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정체성이 불분명한 좌익 포퓰리스트 노무현, 정체성을 잃어버린 우익 포퓰리스트 박근혜가 어떠한 모습을 보일 것인가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다.
포퓰리스트들은 그때 그때 정체성을 바꾼다. 여론의 추이에 따라 자신의 주장을 바꾼다. 또는 자신이 연설하는 곳의 청중의 반응에 따라 자신의 입장을 손바닥 뒤집든 뒤집는다. 그것이 좌든 우든 포퓰리스트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그들에게 좌우파의 정체성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인기있는 것이면, 표를 얻을 수 있는 곳이면 언제 어디든지 간다. 언제든지 입장을 뒤집는다. 국민들이 헷갈리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일단 인기를 유지하거나 얻으면 그만이다. 왕을 연기하던지 노비를 연기하던지 상관없이 주인공으로 시청자들의 사랑만 받으면 그만인 탤런트들처럼, 그들은 정치인이 아니라 연예인에 불과한 포퓰리스트들이다.
그런 정치연예인들에게 지난 날의 정체성은 하나도 중요한 것이 못된다. 그래서 노무현은 우파가 되고, 박근혜는 좌파가 된 것이다. 그렇게 해서 4월 8일 하루동안 대한민국의 좌우는 뒤바뀐 것이다. 아니 언제든지 뒤바뀔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언제든지 정체성이 뒤바뀔 수 있고, 뒤바뀌는 것에 적응을 해야 할 듯 싶다.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며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에겐 불행한 일이지만, 어쩔 수 없다. 그것이 대한민국 사회에서 정체성을 갖고 살아가려고 하는 사람들의 슬픈 자화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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