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학법은 성역이 아니다"
이른바 개방형이사제를 위헌·무효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1974년의 학교 평준화 이후 사학은 사학을 사학이라 부를 수 있는
학생 선발권과 등록금 결정권을 박탈당하였다.
사실상 국공립 학교와 다를 바 없이 운영되었다.
그런데 개정사학 법의 개방형이사제는 사립학교를 설립·경영하는 주체인
사학법인 이사회의 이사 선임권을 빼앗아 학교법인의 의사결정권 자체를
본질적으로 침해하여 사립학교법을 더 이상 사학법이 아니라
관립학교법인 관학법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년 12월 국회의장이 직권 상정하여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강행 통과시킨
이 사학 법이 자유민주주의와 사적 자치에 기반을 둔 자유시장경제 질서를 기본으로 하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에 반한다는 이유로 헌법소원이 제기되었다.
또 아무리 “이사의 전부가 아닌 일부를,
그것도 2배수로 추천된 자 중에서 선임하도록 하는 정도”라 강변하더라도,
종교계 학교 법인은 설립 취지에 따른 종교교육을 못할 개연성이 커지고
특정 단체의 사학 장악은 용이 하게 되었기 때문에 그 재개정 논의가
국민 사이에서 공감을 얻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사학법 강행 통과 직후 한나라당의 장외투쟁 이후인
올 1월 여야의 신임 김한길·이재오 원내대표가 북한산 산상회담에서
국회 정상화와 사학법 재개정 논의에 합의하고,
지난달 29일 노무현 대통령이 사학법 재개정과 관련해
‘여당의 대승적 양보’를 권고한 것은 옳은 방향이었다.
한나라당은 개방형이사의 추천 주체에 ‘등’이라는 낱말을 추가해
‘학교운영위 또는 대학평의 원회 등’으로 수정하여 다른 단체나 기구도
이사를 추천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기게만 한다면 다른 민생 법안들의 일괄 처리에
협조하겠다고 하였다.
원칙에서 보자면 이는 일점일획을 긋는 후퇴임에도
열린우리당은 이를 정면으로 거부하고 반점반획도 못 고친다 하고 있다.
노 대통령의 권고도 받아들이지 않는 열린우리당의 이런 자세는
“여당이 양보하면서 국정을 포괄적으로 책임지는 행보가 필요한 때”라고 말한
대통령의 속마음을 5월 지방선거를 겨냥한 ‘짜고치기’로 해석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면
나오기 어려운 모습이다.
“국정 운영은 여야뿐 아니라 여당과 정부 사이에서도 서로 주고받는 일이 필요하다”는
대통 령의 말을 무시하고, “사학법은 열린우리당의 정체성과 같은 법”이라며
“한나라당의 수정안을 수용하면 얻는 것 없이 핵심 지지층만 잃게 될 것”이라면서
“3·30 부동산 후속 대책 관련 법안을 이번 국회에서 처리하지 못해도
사학법을 재개정할 수는 없다”고까지 하는 것 은 아직도 자신들의 시대정신이
헌법정신보다 우위에 서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이후 지방선거에서 어떤 결과를 가져오든지
대통령의 ‘레임덕(임기 말 권력누수 현상)’ 을 본격화시킬 것이다.
그런데 더 안타까운 일이 있다.
그것은 국회의장이 부동산법안 등을 또다시 직권 상정하여
지난번 개정 사학법을 직권 상정함으로써 의회민주주의의 핵심인
다수결과 정족수 원칙을 위반하는 등의 적법 절차를 지키지 아니한 절차적 흠을
되풀이하려 한다는 점이다.
국회의 장이 곧 국회는 아니다.
그럴 바에야 국회의장 한 사람만 두고 국회를 운영하는 것이 더 편 할 것이다.
민의의 전당으로서 국민의 의사를 계속하여 확인하는 방식을 택하여야 하는 것이 국회다.
이들 직권상정 법안을 또다시 강행 통과시킨다면
열린우리당의 의회민주주의적 존재 가치 회복에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세계일보 강경근 숭실대 교수·헌법학]
2006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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