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말'은 못 하더니 '들을 말' 안 듣겠다는 여당
대통령이 사학법 재개정 문제에 대해 여당이 야당에 양보할 것을 권고하자
여당이 받아들일 수 없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대통령은 4월29일 여야 원내대표들과 만나
“국회 구조상 다수결만으로는 국정 운영이 어렵다.
여당이 양보하면서 포괄적으로 책임지는 자세가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대통령이 여당에 야당의 사학법 재개정 요구를 들어주라고 주문한 것이다.
그러나 여당은 이날 밤 긴급 의원총회를 갖고
“한나라당이 제시한 타협안은 사학법 개정의 근본정신을 무너뜨리는 것이어서
결코 수용할 수 없다”면서 대통령의 양보 권고를 수용하지 않기로 했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여당이 양보를 못하겠다는 속내는 따로 있다.
여당은 작년 12월 사학법 개정안을 강행 처리한 뒤 지지자들로부터
“오랜만에 후련하다”는 평가를 받았었다.
노사모의 핵심 멤버였던 모씨는 여당 의원에게
“잘했습니다. 그런 식으로 몽땅 밀어붙이시기를”이라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그렇게 재미를 봤던 사학법 개정안을
야당 요구를 받아 들여 다시 바꾸라고 하니 속이 쓰리다는 것이다.
대통령 역시 지난 2월까지만 해도
“(사학법 문제는) 한나라당이 완패한 것 아니냐”며 즐기는 입장이었다.
대통령은 그러나 이후 사학법 문제 하나 때문에 국회가 꽉 막혀서
나라가 돌아가지 않는 것을 보고 결국 여야 간 중재에 나서게 된 것이다.
국정을 책임진 입장에서 문제를 풀자고 하면 대통령 말처럼
여당이 한 발 양보할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
그 런데 여당은 “그렇게는 못하겠다”는 것이다.
여당이 전에도 대통령을 상대로 ‘소신’을 펴왔느냐 하면 천만의 말씀이다.
여당은 국가 보안법 폐지에 부정적인 국민 여론을 감안해 국보법 개정 방침을
정했다가 대통령이 “국보법은 박물관에 보내야 한다”고 한마디 하자
곧장 폐지 쪽으로 입장을 바꿨었다.
대통령이 누구도 공감 못하는 대연정 주장을 되풀이할 때도
여당은 속으로는 투덜거리면서도 겉으론 무슨 무슨 위원회를 만들어
대연정 구상을 뒷받침한다고 수선을 피웠다.
이렇게 ‘할말’을 해야 할 때는 우물우물했던 여당이
대통령이 정말 오랜만에 책임 있는 자세로 책임 있는 말을 했더니
그 말만은 못 듣겠다며 청개구리 시늉을 하고 있다.
도대체 어떤 박자에 맞춰 돌아가는 정권인지 알 수가 없다.
[조선일보]
2004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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