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식사도 마다하고 한강 자전거 도로에서 자전거를 탔다. 김포 공항에서 광진교까지 왕복 70 km를 달렸더니 싸늘한 강 바람이 가을이 깊었음을 실감하게 한다.
차거운 날씨지만 온 몸은 땀에 젖었고 배가 슬슬 고파온다. 언제나 처럼 방화대교 밑의 간이 매점, 7- ELEVEN 에서 컵라면을 먹으려고 들어갔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야외에 마련된 테이블을 선호하던 자전거 족들이 대부분 실내 홀로 들어가서 실내에는 빈 테이블들이 많지 않았다.
유리창 너머로 따가운 햇살로 데워진 매점 회랑으로 들어가니 따뜻한 공기로 몸이 후끈거리고 땀이 줄줄 흐른다. 자리에 앉아 컵라면이 익는 동안 땀을 닦고 있는데 앞 자리를 선점한 30 대 후반의 여성들이 움추리고 앉아서 도시락을 먹고 있다. 집에서 도시락을 준비해온 3명의 여성은 자전거 족이 아니라 피크닉을 나온 것 같다.
그 여성들 옆으로는 자전거 안전모를 쓴 노인이 앉아서 혼자 막걸리를 마시고 있다.
추운 표정을 짓는 여성 일행 중 한 명이 일어서서 벽걸이 전기 히터를 켜려고 한다. 지난 여름 동안 먼지가 앉지 않도록 비닐로 감싸서 동여매고 테이프를 붙여놨는데 테이프를 떼어내고 있다. 지금 실내 기온은 25ºC 는 족히 될 정도로 나는 땀이 나는 데 매점 주인이나 종업원의 허락도 받지 않고 전열기를 켜려는 발상이 가당치가 않아 보인다.
순간적으로 막걸리를 마시는 노인을 쳐다봤다. 그 역시 따사로운 가을 날에 전열기를 켜려는 여인들이 못 마땅한지 미간을 찌푸리고 있다. 용기를 내서 말을 하려고 일어서는 데 노인은 고개를 강하게 가로 졌는다. 나서지 말라는 강한 부정이다.
" 춥지도 않은 데 전열기를 켜시려고요? "
" 자전거를 타신 분들은 더워도 저희들은 춥네요. "
" 전열기는 최소한 11월 하순은 지나야 켜는 것이고, 언제부터 켤 것인지는 매점에서 결정하는 것이지 포장된 것을 임의로 풀어서 켜는 것은 좀 좋지 않네요. "
" 손님을 위해서 있는 것인데 좀 켜면 안 되나요? "
" 전기 난로는 전기료가 많이 나오잖아요? 매점의 허락 없이 켜면 안 되죠? "
이 때 쯤 홀에 앉은 사람들이 일제히 우리 쪽으로 시선을 주시하고 우리의 대화를 듣는 것 같았다.
" 아저씨의 돈 나가는 것도 아닌데 왜 참견하세요? 라면이나 드시고 가세요 ! "
" 손님이라고 하셨는 데 오늘 매점에서 무엇을 사셨는데요? "
" 오늘은 도시락을 싸고 왔기 때문 안 샀지만 평소에는 많이 팔아준다고요. "
" 기백원하는 막대 커피랑 종이 컵까지 집에서 가져와서 매점에서 더운 물만 받아다가 커피를 마시는 것 보니 가게에 전혀 도움이 안 되면서 전열기까지 켜겠다니 너무 하는 것 아닌가요? "
" 남자 분이 좀스럽게 웬 참견이세요 ? 손해가 나도 아저씨가 아니라 가게 사장이 보는 것데 까탈스럽긴 ........................"
여성 일행 중에 누군가 양심이 있는 사람이 나서서 말리기라도 할 줄 알았더니 돌아가면서 대꾸를 하고 이제는 면박까지 준다. 물러서기에는 너무 늦었으니 할 말은 해야겠다.
" 여성 분들 요사이 집에서 전기 난로 켜세요? "
" 집에서야 안 켜죠? 여러 사람이 모이는 장소니까 전부 따뜻하라고 켜는 것이죠. "
여성 A 가 주로 대꾸를 했는 데 여성 B 가 말을 받는다.
" 매점 사장은 부자잖아요 ! 부자 돈 쓰는 것인데 뭐가 그리 잘못 됐다고 그러세요? "
" 내 돈 나가는 것 아니니까 부자는 망해도 괜찮다는 것인가요? "
" 우리나라 부자들이 양심적으로 돈 벌어서 부자 된 사람이 있나요? 다 졸부들이잖아요. "
" 이런 사람들 때문에 우리가 가난한 것이라고요. "
나는 라면도 먹는 것을 포기하고 그냥 나왔다. 그 많은 사람들 중에 나의 말을 거들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왜 나서서 여자들에게 망신당하느냐는 경멸의 눈초리를 뒤로 하며 나오는 데 여성 중에 누군가가 기어코 내 등에 대고 확인 사살을 하는 것이었다.
" 저 양반도 부르주아인가 봐 ! "
이 사회가 왜 이렇게 됐을까? 부자를 증오하고 계급투쟁을 조장하는 편가르기 식 역사 교과서에 의한 교육 병폐를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이념 문제만이 아니다. 병든 사회가 더 이상 병이 악화되지 않도록 치유하기 위해서라도 가진 자를 증오하고 경영자를 노동자의 착취 계급으로 묘사하고 있는 역사 교과서 바로 잡기는 시급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이래 저래 나라 걱정에 잠을 못 이루는 밤이 늘어나고 있다. 나의 고민이 깊어감에 따라 언제부터인가 내 눈썹에도 하얀 서리가 내리는 것은 비단 나이탓만은 아닌 것 같다. 그나마 붉은 색이 아니어서 다행이다. 나는 붉은 색이 정말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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