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밤길의 여인을 유인하여 잡아먹다.
양강도 대홍단군 읍 여관은 1980년대 초반에 지어져 김일성의 혁명역사를 자랑하는 백두산 사적지를 운영하는 여관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해마다 봄, 가을, 겨울이면 젊은 청년들을 김일성 사상으로 일색화하기 위하여 중앙 사로청위원회에서 집적 조직을 만들어 김일성,김정일을 위하여서는 청춘도, 목숨도 바치는 것이 영광이라는 뜻으로 사적지 답사를 강요하고 있었다.
그러나 1990년대 초반에 들어서면서 국가가 국민들에게 식량을 공급하지 못하는 처지에 이르러 백두산 관광길을 비롯한 청년들의 답사행로가 없어지자 살길을 찾아 헤매며 다니는 사람들이 숙박하는 여관으로 바뀌고 말았다.
양강도 대홍단군은 해발고가 높은 지대로서 강냉이 농사는 꿈도 꾸지 못하며 전 군민이 감자농사를 지어 감자로 다양한 음식을 만들어 먹으면서 살아가는 군(郡)이었다.
1997년도 말에도 대홍단군 흥남과 흥암리에서는 보기 드문 감자풍년을 이루었다.
이 소식을 알고 있는 함북도 청진시 주민들과 고무산, 무산군에 사는 주민들이 대홍단군에 감자를 사려고 떼를 지어 몰려들었다.
ㄱ자형으로 생긴 대홍단군의 읍 여관은 20여개의 방으로 되어 있지만 감자를 사려고 오는 사람들과 감자를 사 가지고 청진으로 가는 사람들로 매일 대만원을 이루며 살고 있는 중요한 길목의 여관이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는지 이 여관에서는 남, 녀 방이 따로 없이 옷을 입은 채로 빼곡히 누워자야만 했으니 그 실태를 잘 알 수 있다.
전깃불도 없는 캄캄한 방안에서 신발도 분실될까봐 베개로 사용하며 자야했던 대홍단군 읍 여관은 살 길을 찾아 해매는 사람들로 항상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1997년 12월 30일 설 명절을 이틀 앞둔 날이었다.
김씨는 대홍단 읍에서 20리를 걸어 흥암리에 와서 감자 60킬로를 사가지고 다시 그날 저녁으로 대홍단 읍에 있는 여관에서 쉬고 있었다.
두 자식들 생각에 잠을 자지 못하면서 설 명절 전에는 무조건 집에까지 도착해야 된다고 생각하며 이 생각 저 생각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이놈의 세상이 언제면 망할 것인가를 원망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밤이 얼마나 깊었는지 졸음이 왔다. 그런데 밖에서 자동차가 멎는 소리와 함께 웬 사람들이 차에서 내리고 부산스럽게 말들이 오가며 계단으로 올라오는 다급한 발소리들이 들렸다.
다시 눈을 뜨고 누구인가를 알아보려고 하는데 김씨가 자고 있는 2층 10호 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잠근 문을 잡아채며 전지불을 자고 있는 사람들에게 비치면서 들어오고 있었다.
"누구야?"
소리치며 김선생이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대홍단군 안전부에서 왔습니다. 이제부터 증명서 검열이 시작되오니 증명서를 다 꺼내 준비하시오. 빨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시오."
여관 한 방에 세 명씩 배치되어 증명서 검열이 시작되었다.
주민등록증과 통행증이 있는 사람은 저쪽으로, 주민등록증만 있는 사람은 이쪽으로, 아무 것도 없는 사람들은 체포대상이 되었지만 왜 야밤중에 불시에 검열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렇게 야단하며 증명서를 검열하는 사이 날이 밝기 시작했다.
대홍단군 안전부에서는 여관에서 자고 있던 수백명의 주민들을 모두 여관밖으로 끌고 내려갔다.
어제 저녁인 12월 30일 밤 11시 30분에 여관 앞 10m에 있는 오물장에서 피묻은 자루가 발견되었는데 안에는 아가씨의 머리와 손목과 발목을 잘라서 자루에 넣어버린 것이 있었다.
이 사실이 대홍단군 안전부에 신고되었으며 그 범인을 잡으려고 군 안전부가 비상소집하여 여관으로 출동한 것이었다.
이 아가씨가 누구이며 어디서 살며, 누구하고 대홍단군까지 왔으며, 왜 살해되었으며, 범인은 누구인가를 잡으려고 조사중이었던 것이다.
" 여러분, 조용하시오. 나는 대홍단군 안전부 감찰과장입니다. 이 사건을 해명하려고 주민들을 쉬지도 못하게 만들어 죄송합니다. 그러나 이 살인 사건의 범인을 꼭 잡아야 되니까 주민들은 이 아가씨의 얼굴을 보고 누구인지, 어디서 사는지, 어제 저녁에는 누구의 집에서 자겠다고 말하고 갔는지를 알려주면 좋겠습니다. 분명 멀지 않은 곳에 살인자는 있습니다. 이것을 해명하지 못하면 증명서가 없는 사람은 구속될 것입니다."
의자에 아가씨의 피묻은 머리가 맥없이 놓여 있었다.
주민들은 눈을 비비며 그 광경을 보았다가 고개를 돌리곤 했다.
몸뚱이는 어디로 갔는지, 머리만 있는 시신 앞에서 울고 있는 사람, 무서워 소리를 지르는 사람, 일생에 이런 현실을 처음 목격하는 사람들의 분노의 함성 속에서 주민들이 아가씨의 얼굴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눈도 감지 못하고 두 눈을 다 뜨고 있는 상태의 얼굴이었다.
한 사람씩 거의 의무적으로 그 앞에 다가가서 자세히 보고 누구인가를 확인해 나갔다.
한 명, 두 명, 세 명... 열 명까지 확인을 계속했다.
피비린내가 주민들의 정신을 못차리게 만들었다.
30명의 주민들이 얼굴을 보면서 누군지 알지 못하겠다고 지나갔지만 그 얼굴을 알아보는 아주머니가 있었다.
무산군에서 같이 떠나 대홍단까지 같이 왔으며 전날 저녁까지만 해도 그 아주머니와 같이 하루종일 흥암리의 농촌부락을 다니며 감자를 샀는데 하루밤에 몸뚱이는 어디 갔는지 머리와 손목과 발모가지만 자루에 있는 것을 보고 땅에 풀썩 주저앉으며 소리쳤다.
"어마나! 세상이 아무리 모질고 험악할지라도 이런 변이 어디 있을고."
이렇게 되어 죽은 아가씨의 이름과 주소를 알게 되었지만 누가 그녀를 죽였는지가 의문이었다.
분명 멀지 않은 곳에서 이 사건이 발생하였을 텐데, 이렇게 직감하고 대홍단 안전부는 총동원하여 집중수사에 들어갔다.
군 안전부와 분주소를 비롯하여 군의 교양소조원들을 동원하여 대홍단군 읍 여관으로부터 1킬로미터 안에 있는 주민 집들을 모조리 수색하면서 고기를 먹거나 수상한 자가 있는가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12월 31일은 사고가 발생한 다음날이었다.
해마다 이날이 오면 양력설 준비를 하느라고 공장들과 기업소에서는 생돼지를 잡아다가 킬로에 200원 남짓의 가격으로 노동자들에게 공급하여 주었다.
돈이 있는 사람들은 생돼지를 사다가 잡아서 장마당에 팔아 돈을 벌고 있었다. 이런 시기에 살인자를 잡는다는 것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집집마다 돼지고기를 12월 29일에 사다 놓고 있는 사람도 있었고, 30일 저녁에는 돼지고기를 가져온 집도 많았으니 어떻게 특별히 사람고기를 먹은자를 가려내는가가 문제였다.
그러나 군 안전부에서는 돼지고기를 먹은 사람마다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얼마에 가져왔는가를 재확인하면서 조사를 하기 시작했다.
사고는 대홍단군 읍 여관으로부터 100미터 떨어진 곳의, 판자로 벽을 막고 그 속에 톱밥을 넣고 살아가는 집에서 발생했다.
그는 34살 난 대홍단군의 자재상사에 다니는 박 모씨였다.
그는 자재상사에서 출장을 다니며 남에게 꾼 돈이 많았다. 꾼 돈을 가지고 출장길에서 돈을 벌려고 하였지만 장사는 되지 않고 빚도 값지 못할뿐만 아니라 제 가정을 먹여 살리기도 힘이 들었다.
30살 난 처와 세 살짜리 아들과 한 살난 딸이 있었지만 굶주림으로 죽도 변변히 먹지 못하고, 애 엄마는 대홍단 벌의 여기저기로 다니며 언 감자를 주워다 먹으며 명을 유지하고 있었다.
빚도 갚아야지 먹고도 살아야지 겨울 준비도 해야지... 가정은 엎친데 겹친 격으로 죽을 길을 재촉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야박한 세월에 누구하나 방조(傍助)해 주는 형제들이 없어서 앞으로의 생활이 문제였다.
12월 29일 박씨의 아내는 애들을 데리고 친정에 가서 설 명절을 쇠고 오겠다고 하고는 친정으로 떠나고 박씨만이 집을 지키며 설 명절을 보내야 했다.
돈이 없으니 쌀을 살 생각도 못하고 설 명절도 굶어서 보내야 하는 하루가 지나갔다.
12월 30일 저녁에는 여관으로 나가서 남의 감자 배낭이라도 훔치려고 하였지만 여러 명씩 합쳐서 다니는 것을 보니 훔칠 수도 없었다.
그러나 이 때 잠자리가 없어서 이리저리 다니다가 여관 앞에서 서성거리는 아가씨를 만나게 되어 말을 하기 시작했다.
"아가씨는 잠자리가 없어서 그러는가요?"
"아직 찾지 못했어요."
"우리 집에서 하룻밤 쉬고 가세요."
"멀리는 못가는데요."
"100미터만 가면 우리 집이니까요."
:남의 집에 어떻게 맘대로 가요?"
"괜찮아요. 우리 처도 이해할 겁니다..."
아가씨는 일단 따라갈 수 밖에 없었다.
대홍단군의 12월의 날씨는 영하 30도가 넘었다.
여관에서는 들어설 자리가 없이 빼곡히 사람들이 들어차서 서로 자리가 좁다고 이리 밀고 저리 밀고 야단을 하고 있었다.
추운 날씨에 밖에서 더 밤을 보낼 수 없는 처지에서 박 모씨를 따라 그의 집으로 발길을 옮기게 되었다.
아가씨의 감자 배낭이 두 개였고 무게는 거의 100 킬로가 되었지만 박씨가 무거운 배낭을 등에 지고 아가씨는 가벼운 배낭을 지고 박씨의 집으로 갔다.
이 때 박씨의 생각은 변하고 있었다.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말이 벌써 여기저기로 퍼지며 소문이 돌고 있는데 나도 한 번 사람고기를 먹어볼까? 감자도 빼았고, 고기도 먹을 겸...'
이런 생각으로 굶주린 배를 채우며 1998년 설 명절을 보낼 준비를 하였던 것이다.
아가씨는 박씨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줄을 꿈에도 생각 못하고 집안으로 신발을 벗고 들어갔다.
그래도 방안이라고 온기는 있었고 구들장은 미지근하여 앉아서 몸을 녹이기에는 알맞았다.
"처가 옆집에 갔는데 금방 올 것이니 방에서 쉬세요..."
아가씨가 집 아주머니가 올 때를 기다리며 앉아서 감자를 사러 다니느라고 지쳐서 졸고 있을 때 부엌에서는 박씨는 망치를 세면 수건에 싸서 감아가지고 방으로 살금살금 들어왔다. 박씨는 인간의 정신은 어디로 갔는지 승냥이로 변하고 말앗다.
그리고 졸고 있는 아가씨의 머리통을 내리쳤다.
이렇게 고함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아가씨는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었다.
박씨는 아가씨를 부엌으로 끌고 내려가 옷을 홀랑 벗기고 부엌에 있는 칼로 발목과 팔목, 그리고 머리를 잘라냈다. 이렇게 아가씨의 피를 빼고 큰 함지에다 올려놓고 각을 뜨기 시작했다.
박씨는 아침 7시까지 그 흔적을 없애느라고 밤새껏 수돗물을 틀어놓고 야단이었지만 피비린내나는 부엌을 다는 소독을 할 수가 없었다.
1997년 12얼 31일의 아침해가 뜨기 시작했다.
이미 당국에서는 사람을 죽인 살인자를 잡으러 다니고 있을 때 박씨는 사람의 고기를 돼지고기로 만들기 위하여 토막토막 고기를 떼어내 그것을 여러 비닐에 담았다.
시장에 나가 돼지고기라고 하면서 싼값으로 5킬로를 팔아가지고 입쌀, 간장,된장, 고춧가루, 콩기름 등 설 명절에 먹을 준비를 해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박씨는 점심 때 술상을 차려놓고 친구들을 불렀다.
이렇게 되어 박씨의 집에서는 사람고기가 돼지고기로 변하였다.
고기를 먹는 사람들도 얼마나 오랫동안 고기를 먹지 못하였는지 무슨 고기인지를 분간하지 못하였으며 몇달만에 먹는 고기라서 그런지 꿀맛이라며 정신없이 사람고기를 술안주로 먹었다.
박씨의 집에 모인 사람들은 박씨에게 돈을 꾸어 주어서 이자를 받아야 할 사람들이었다. 그 때문에 술상을 대접받는 것도 박씨가 응당 대접해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술을 먹었다.
또한 남은 고기는 돈을 물어주지 못한 집에 고기를 맛보라고 가져다주었다.
세 집에 고기를 1.5킬로씩 나누어주었는데 고기를 가져다준 집에서 사고가 발생했다.
마을에서는 살인범을 잡으려고 수색이 한창인데 아무리 돼지고기라 해도 고기의 색깔과 고깃살이 이상했다. 혹 사람고기가 아닌가 의심하게 되었다.
이렇게 되어 병원실험실에 가져가 보았다.
대홍단군 인민병원에서도 사람고기라고 실험해본 일은 없지만 분명 돼지고기는 아니었다.
시장에서 사온 돼지고기와 비추어 살펴보아도 돼지고기와는 껍질도 다르고 색깔도 다른 것이 틀림없기에 이 사실을 대홍단군 안전부 감찰과에 신고하였다.
이렇게 되어 범인 박씨는 1997년 12월 31일 저녁 7시에 현행범으로 체포되었다.
박씨가 잡힐 당시에 그의 정신상태는 제 사고력이 아니었으며 정신이 나간 사람과 같이 얼떨해진 상태였다는 것이다.
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고기를 먹은 사람이 20명이 넘는다는 것이었다.
이들을 어떻게 법적으로 취급하고 다루어야 하며 어떤 죄를 씌워야하는가도 문제였지만 그들은 모르고 사람고기를 먹었다는 것이었으니 달리 처벌할 길도 없었다.
박씨는 사형판결을 받고 양강도 안전국 지하유치장에서 소문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나 아무리 이 사건을 비밀에 붙이려고 안전국에서 노력을 해도 이 세상에 비밀은 없었다.
이 사건을 본 김씨는 함경북도 무산군에서 살다가 굶주림에 시달려 생명을 견지(堅持)하기 위해 1999년 4월 중국으로 탈북하여 2000년 10월 중순경 대한민국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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