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환 장군의 회고]
박대통령 "1975년 전쟁날 뻔했다"
박대통령은 「우리가 만약 75년 3월에 제2땅굴을 못 찾았으면 그
해 11월 북한이 밀고 내려왔을 것」이라고 내게 말했으며,북한의
장거리 땅굴 가능성을 예언하기도 했다.
나는 제로 지점에서 땅굴 찾기를 시작했다. 지금처럼 비싼 장비나
전문 인력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나의 신념과 병사들의 노고만이 유
일한 도구일 뿐이었다. 적진지에서는 수시로 폭파음이 들렸으나 최초
의 3개월 동안 아무런 징후도 찾지 못했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이상
한 사람이라고 비웃었고 「진급병 환자」라고 모략을 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73년 11월 20일 최초로 땅 속에서 징후가 나타났으나 보여줄 만한
증거는 되지 못했다. 넉달 후 상급부대로부터,철원 지역에 땅굴 징후
가 없으니 병력을 철수하라는 명령을 하달받았을 때는 참으로 막막했
다. 병력은 철수해야 하는데 나로서는 그럴 수도 없었다. 나는 「전 병
력을 빼고 싶으면 사단장을 면직시켜라」고 내 목을 걸고 버텨 나갔다.
또 부득이하게 73년 12월3일에는 「아무것도 건들지 말라」는 군단
장의 지시를 어기고 땅굴 출구 예상지역에 불을 질렀다. 숲이 울창하
면 적이 굴을 파고 나와도 발견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이틀 후 20일간 땅속에서 들렸던 소리가 딱 그쳤다. 결과적으로 나의
행동은 적의 작업과 도발을 지연시켰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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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젊은 병사들은 나의 거짓없는 신념을 믿어 주었고 74년 7월
25일 새벽 드디어 8개월간의 고된 청음작업 끝에 북의 땅굴 굴착음을
찾아내었다. 내가 산에 불을 지르자 뚝 그쳤던 땅굴 굴착음이 이제 다
시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박대통령의 최종적 결단으로 땅굴 탐색 작업에 들어갔다.
당시 작업 장소인 DMZ안은 적의 공격으로부터 완전히 무방비 상
태였기 때문에 우리측 GP 앞에 철조망을 터야 했다. 그러나 3.5km나
되는 거리의 철조망을 치자면 최소한 한달 이상이 걸리기 때문에 속
전 속결을 요하는 땅굴 탐색 작전에 치명적인 장애가 되었다. 나는 수
하 3개 연대와 포사령부에 철조망 작업 경연대회를 열었다. 갖가지 아
이디어가 많이 나왔지만 모두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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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심하고 있던 어느 날 나는 부사단장과 함께 난로 옆에 앉아서 대
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난로 앞에 쳐 놓은 다이아몬드형 철망이
내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바로 이것이다」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이것은 철조망과는 달리 신속한 작업이 가능했다. 철망과 철망 사이를
굵은 철사로 엮어 이어 주기만 하면 되었다.
먼저 작업에 필요한 모든 재료와 준비를 갖춘 후 「준비 땅」 했다.
사단 전체가 동원되어 병사 한 사람이 이음새 하나씩 맡아 철사로 엮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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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니 무척 속도가 빨랐다. 철망의 밑부분은, 땅에 호를 파서 넣
은 후 시멘트를 굳히니 그렇게 견고할 수가 없었다.
한편 작업 기간 중 1급 전투 태세에 들어갔다. 1개 연대를 완전 무
장, 실탄 장전하여 포진시킴으로써 적의 기습에 대비했다. 포탄을 까
고 24시간 포문을 열게 했다. 나는 「적이 공격해 오면 즉각 응사해라
전쟁이 나도 할 수 없다」고 장교와 병사들에게 명령했다.
이러한 명령은 사단장의 권한 밖이었다. 그러나 국가적인 문제였곤
비상상황이었다. 고지대에 위치한 적은 우리의 일거수 일투족을 노려
보고 있었고 작업을 방해하기 위해 공격해 올 가능성도 있었다. 그러
므로 병사들로 하여금 비장한 마음 가짐과 함께, 적을 물리치겠다는
기백을 갖게 했던 것이다.
그러나 적은 공격하면 맞받아치겠다는 자세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우리의 모습을 보고 감히 도발하지 못했고 우리는 한 달 이상의
작업량을 단 2주 만에 해냈다.
총 3.5km 중 우리 사단이 맡은 3km 이상을 모두 끝냈을 때, 약
500m를 맡은 인근 사단은 그제야 철조망 작업에 들어갔을 정도였다.
속도가 너무 빨라 의심과 질투도 받았지만,상급 부대의 감찰 결과는
「튼튼하다. 만족스럽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74년 12월 20일에 땅굴을 파기 시작하여 75년 2월 20일경
북한 땅굴을 확인했다. 그리고 현대 건설의 장비와 인력을 동원하여
역땅굴을 관통시킨 것은 3월 19일이었다.
당시 농업진흥공사의 우물 파는 기계 10대를 들여와 시추공을 뚫었
는데, 24시간 돌려도 6m밖에 팔 수 없었다. 또 영하 20도의 추위 속에
서 작업을 하자니 매우 곤란했다. 그런 몹시 좋지 않은 여건 속에서
땅굴을 찾아낸 것은 기적이었으며 국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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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진공 직원 50명은 어느 날 갑자기 불려와 보안상 불편한 격리생활을
하면서도 헌신적으로 일했다. 현대건설 직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우리가 하는 일이 진짜 나라를 위해 하는 일이다」라는 자부심을
갖고 불평 한 마디 없이 일을 해주었다.
땅굴 내 소탕 작전을 하면서 아까운 젊은 생명들이 희생된 것은 안타깝기
이를 데 없는 일이었다. 낮에는 방문객이 많아 작업은 밤에만
가능했는데,공교롭게도 「여성 7명」이 낀 36명의 미국 선교사들이 다
녀간 날 밤에 「병사 7명」이 소탕 작전중 질식사했다.
그래서 그 열흘 뒤 국방부 초청으로 영국 BBC방송 동경 지국장인
여자가 찾아왔을 때 나는 그녀를 땅굴 안으로 들여보내지 않았다. 미
신을 믿지는 않았지만, 병사를 잃고 싶지 않은 것이 지휘관의 심정이
었다. 그녀는 국방부에 강력히 항의했고,당시 국방부 장관이 내게 직접
전화를 걸어 왔다.
나로부터 자초지종을 들은 장관은, 「서방국가 국민 중에도 우리의
땅굴 발견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 여론이 있다. 국익을 위해서 한 명
이 희생되는 한이 있어도 들여보내야 한다」고 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그 명령에 따랐다.
그날 밤 푸닥거리까지 한 후 장교 2명과 병사 2명이 지뢰 제거 작
업에 들어갔다. 병사 한 명이 부비 트랩의 인계 철선을 건드려 지뢰가
폭파되었다. 당사자는 후송되어 수도통합병원에서 전사했고, 이기웅
중위(현 농업진흥공사 근무)는 왼쪽 다리가 절단되었으며, )50m 뒤에
있던 부부대장은 파편상을 당했다. 병사 한 명은 무사했다. 정말 우연
히도 1명의 병사가 희생되었다.
나를 비롯해 당시 수색중대 요원들은 매년 4월 8일 국립묘지에 모여
희생된 병사들의 명복을 빌고 있다. 나는 그 밖에 1년에 6∼7번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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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묘지를 찾는다.
국립묘지에는 박대통령을 비롯해서 나의 선배,동료 혹은 부하로서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순수한 영혼들이 잠들어 있다. 그래서 마음
이 답답할 때 그 곳을 찾으면 마음이 경건해지고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감사하게 느껴진다.
우리 국민이 조국애가 없다고 하지만, 조국이 위태로울 때
기꺼이 목숨을 아끼지 않았던 우리의 피요, 민족이다. 그리고
국립묘지를 찾을 때마다 박대통령의 묘소를 찾아 기도를 드리곤 한다.
"각하,그 때 각하께서 말씀하신 땅굴이 서울까지 들어왔습니다.
꼭찾게 해주십시오"
이것은 개인의 안위를 버리고 온갖 어려움 끝에 제2땅굴을 발견했으며
언제 어디서나 적의 땅굴 생각을 놓지 못하고 고집스런 군인의 솔직한
신념이며 기원이기도 하다.
(군 생활 동안 큰 은혜를 입었던 박정희 대통령,윤필용 장군
노재현 전 국방부장관, 전부일 장군,그리고 함께 조국을 걱정했던 많은 ]
의로운 분들께 지면을 통해 감사드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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