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1년간 연구차 건너간 성공회대 김동춘 교수(전 참여연대 정책위원장)가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시작된 직후인 20일 참여연대 홈페이지 게시판에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습니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참여연대측의 양해를 얻어 전문을 게재합니다...<편집자주>
결국 전쟁이 시작되고 말았습니다.
설마 설마 했는데, 결국 부시는 돌이킬 수 없는 길로 들어서고 말았습니다. 이곳 시간 저녁 10시 15분 (한국 시간 오후 12시 15분) TV 화면에 나타난 부시는 대량의 이라크 민간인을 희생양으로 삼아 제국의 욕심을 채우려는 자신의 실제 의도를 피곤하고 차분한 논조로 포장하였습니다.
그는 이제 공격, 침략을 해방(liberation)으로, 전쟁을 평화로, 죽음과 더할 나위 없는 고난과 희생을 '자유'로 뒤집어 표현하였습니다. 이제 미국의 모든 주류 언론은 약속이나 한 듯이 공격이라는 용어 사용을 완전히 중단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기다려라, 이라크 국민들이여, 해방이 가까워 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공화국'의 깃발을 '제국'의 깃발로 바꾼 미국은 이제 '자유와 민주주의와 평화'의 이름으로 세계의 대다수의 사람들과 대부분 국가의 압도적인 반대 속에, 유엔과 국제 규범을 헌신짝처럼 내던진 채 지구 역사상 가장 추악한 침략 전쟁을 시작하였습니다.
"위협세력에 대한 예방 공격(pre-emptive strike)을 감행할 수 있다", "혼자 가겠다"(go alone)는 선언은 우리가 익숙히 알고 있는 바로 그것, 제국주의의 가장 전형적인 표현입니다. 제국주의는 20세기의 역사 속의 한 페이지가 아니라 바로 지금 우리 눈 앞에 전개되고 있습니다. 공격의 명분은 후세인의 대량살상 무기가 미국인의 생명과 안전에 실질적인 '위협'이 된다는 것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나 위협을 판단할 수 있는 중요하고 객관적인 증거는 부시 행정부를 제외하고는 누구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후세인의 위협은 객관적인 것이 아니라 사실은 부시 행정부 매파들의 주관적인 것입니다. 태평양 전쟁의 서막을 연 일본의 진주만 공격, 한국전쟁의 출발점이 되는 북한의 6.25 공격, 인도차이나 전쟁을 출발점이 된 통킹만 사건, 이라크의 쿠웨이트 공격으로 시작된 걸프전은 물론 상당한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그래도 상대방이 먼저 총을 쏘았기 때문에 미국이 개입했다는 최소한의 명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전쟁은 다릅니다. 예방 공격은 미국의 전쟁사에 없는 것입니다. 9.11 테러 이후 럼스펠드 국방장관이 "왜 곧바로 이라크를 치지 않는가"라고 말했을 때부터 이 전쟁은 예고된 것이었습니다. 파월을 중심으로 한 유엔의 동의를 얻기 위한 과정은 하나의 우회에 불과했습니다. 결국 영국과 스페인을 제외한 대부분의 안보리 국가들이 전쟁에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히 확인한 이후 미국은 예고된 길을 나서게 된 것입니다.
무기 사찰이라는 것도 전쟁을 위한 명분 쌓기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핵무기가 있는지, 혹은 대량살상 무기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한 절차로서 시작된 무기사찰이 나중에는 후세인이 거짓말을 하는가, 진실을 말하는가의 기준으로, 즉 후세인의 성실성을 기준으로 사찰의 결과를 판단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그리고 전쟁의 가장 중요한 명분이 되는 후세인과 알 카에다의 연계가 확인된 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 점은 언급도 하지 않는채 어느 샌가 전쟁의 명분은 어느샌가 무장해제와 '체제변화'(regime change)로 슬쩍 옮아 가고 말았습니다. 핵을 가지고 있는 파키스탄은 우방이니 봐주고, 핵이 없는 이라크는 석유가 있고, 만만하니 치겠다는 것이지요.
이 전쟁은 형식적으로나마 지키려고 했던 제2차 대전 후의 유엔 중심의 세계질서에 대한 전면도전이자, 약육강식의 세계질서의 등장을 선포하는 선전포고입니다. 한국전쟁에서부터 91년의 걸프전에 이르기까지 유엔의 사실 미국의 거수기로 존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제 소련, 공산권이 무너진 이후 도전받지 않은 '제국'인 미국은 이제 모든 국제적 규범을 무시하기 시작했고, 부시행정부는 그러한 추세를 굳혔습니다.
교토 기후협약 탈퇴에서부터 시작해서, 전쟁범죄(제노사이드) 처벌을 위한 국제기구 건설 등 모든 국제적 노력에 자국의 이익을 앞세우면서 찬물을 끼얹어온 부시 행정부는 9.11 테러를 명분으로 하여 아프칸에 대한 무차별적인 공격을 감행했고, 결국 이라크를 침공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과거의 제국주의와 마찬가지로 미국의 침공 역시 보편주의적인 비전과 그럴듯한 명분으로 포장되어 있습니다. 자유와 민주주의, 시장경제를 전파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국가건설'이라는 거창한 명분을 갖고 있습니다. 일본과 독일 국가를 건설하고, 남한을 건설한 미국은 이들이 자유주의의 세례를 받아 세계의 부국으로 등장했다고 자랑하면서, 자애로운 '제국'으로서의 역할은 방기해야할 과제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감수하면서 나아가야 할 책무라고까지 말하고 있습니다. 바로 아프칸이 그 대상이었습니다.
텔레반을 축출한 이후 건설된 새로운 아프칸이 과연 자유, 민주주의, 시장경제를 구가하는 새로운 국가인지에 대해 우리는 아무런 정보도 갖지 못하고 있습니다. 텔레반을 축출하기 위해 쌍둥이 빌딩에서 희생된 미국인들의 숫자를 훨씬 상회하는 민간이이 아프칸과의 전쟁에서 사망했다는 사실이 무엇을 말해주고 있습니까?
미국의 나라세우기는 결국 아프칸을 증오와 내전,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말았습니다. 나라세우기를 위한 원조와 지원은 모두 유엔이나 국제 인권단체의 몫으로 넘겨바리고 미국은 올 예산에서 아프칸 지원비를 ! 한푼도 책정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자애로운 '제국', '내키기 않는 제국'의 실상입니다.
어제의 적이었던 일본을 공산주의 막는다는 명분 하에 친구로 만든 다음, 구 제국주의 파시즘 세력을 다시 등용하여 신생 대한민국의 기둥으로 삼았던 미국의 '현실주의' 외교전략은 이후에도 수없이 반복되었습니다. 소련과의 전선 구축과정에서 어제의 친구였던 텔레반을 적으로 만들었고, 어제의 친구였던 빈 라덴과 후세인을 더할 수 없는 악마로 만들었습니다.
결국 자국의 이익에 도움이 되면 원수도 친구로 만들고, 친구도 원수로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미국의 힘은 바로 미국 시민들의 '망각능력'에 의존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미국은 우리 동양사람들의 윤리기준으로 보면 정말 염치 없는 나라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히 도덕적인 비판에 머물기에 그것이 미치는 영향이 너무나 크고, 그것에 의해 초래된 희생자가 너무나 많다는 것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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