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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희의 곧은소리 ]6급 공무원, 29억 짜리 졸부놀음

"난데없는 붕덕새 날아 들어/한 날개를 뚝딱 치니 천만석이 쏟아지고/또 한 날개를 뚝딱 치니 억만 석이 쏟아지고/밑의 노적은 싹이 나고, 위의 노적은 꽃이 피고/싹을 틔고 꽃을 피어주신 황제 대활예루만 놀으소서/개문(開門)하니 만복(萬福)이요, 소지(掃地)하니 황금출이라/만신의 덕담대로 축원대로 소원성취 만수무강 바라나이다."

과거 경기도 무당들이 '황제풀이 굿'을 할 때면, 이처럼 "천만 석, 억만 석의 쌀이 쏟아지게 해주십사"고 했다. '황제'란 인간만사를 지배하는 최고신(最高神)이고, '만신'은 무당을 뜻한다.
"나라 돈을 가지면 구이신(귀신)두 사귀구 자손두 빌구"라는 것은 부여(충남)의 무당들이 '장자(長者)풀이 굿'에서 하는 소리다. '장자'란 돈 많은 '갑부'를 뜻한다.
예나 지금이나 돈만 있으면 귀신도 매수할 수 있지만, 그러나 무당이 굿을 하던 시대에는 '나라 돈'이 아니고는 귀신을 부릴 만큼 큰돈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메시아가 나타나, 이 땅의 어딘가에 '지상낙원'을 꾸밀 것이라는 꿈을 안고 살았다.

계룡산에 정씨 성을 가진 구세주가 나타날 것이라고 예언하는 <정감록(鄭鑑錄)>이 고통받는 백성에게 유토피아의 꿈을 줬었다. 18세기인 영조 15년(1739년)에는 <정감록>을 "불태워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 정도로 광범하게 읽혔던 것 같다.

그러나 32살의 최모 건설교통부 6급 공무원에게 꿈의 유토피아는 바로 그 자신의 손바닥 안에 있었다.

6급 공무원, 29억 짜리 졸부놀음

그는 철도청 건설사무소에서 2년여에 걸쳐 수원-천안간 경부선 확장공사비 28억8260만 원을 횡령한 혐의로 지난 7일 구속됐다. 어이없게도 그는 29억 원을 손바닥 뒤집기보다 쉽고, 원시적인 수법으로 꿀꺽했다.
그는 작게는 1억 원에서 크게는 16억 원을 계약된 기업의 법인이 아닌, 자기 아버지 명의의 은행 계좌에 입금시켰다고 한다. 철도청의 금고는 도둑맞았다기보다, 갖다 바쳤다고 해야할 만큼 무방비 상태였다.

그야말로 "난데없는 붕덕새가 날개를 뚝딱 치니 천만 금이 쏟아지고, 또 한 날개를 뚝딱 치니 억만 금이 쏟아진"셈이었다. 그는 "주식 대박으로 백억대 부자가 됐다"고 둘러 대고, 황제가 된 것처럼 흥청망청 돈을 뿌렸다.
그는 엽전 꾸러미, 1원짜리 동전, 1만 원권 지폐 등 한국과 북한, 미국, 러시아 등의 화폐수집에 15억 원을 썼다고 한다. 신문보도대로라면 그는 횡령한 29억 원의 절반을 화폐수집에 썼다는 얘기다. 그는 또 용인에 2억5000만 원짜리 전원주택을 사서 지하에 노래방, 미니 바, 당구대를 차려놨고, 3개의 방에 만화 1000만 원 어치, 비디오 테이프 400만 원 어치 등으로 채웠다. 서울 강남 유흥업소에서 3억 원을 썼고, 내연의 애인에게 3000만 원을 줬고, 아버지, 형, 여동생에게 승용차를 사줬다. 그는 비록 6급 공무원이지만, 전형적인 졸부의 거드름을 유감 없이 피웠다.

일상화된 불법…비자금, 탈세, 투기

30대 초반의 한 6급 공무원이 연출한 29억 원의 돈 잔치는 배금(拜金)주의와 부패로 무너져 가는 이 나라, 이 사회의 어두운 현실을 노출시켰다.
법과 상식이 용납하지 않는 천문학적 액수의 비자금, 탈세, 편법상속, 불법 선거자금, 부동산투기 등 이제 거의 일상화된 불법 돈 잔치로 지금 이 나라는 사실상 법과 양심이 실종된 황량한 사막이 됐다.
돈은 땀의 성과라기보다 뚝딱 뚝딱 쏟아지는 행운의 수확이요, 거금의 돈으로 매수한 '귀신=권력'으로부터 얻어낸 것이다.
다행히 돈더미를 거머쥔 졸부들은 승용차와 룸살롱, 그리고 노래방, 미니 바, 비디오 테이프를 치장한 별장이 그들의 낙원이다. 이 나라는 그처럼 거드름 피우는 졸부들의 놀이터가 됐다.

이 천박한 놀이터의 중심에는 '책임지지 않는 권력'인 언론이 있다. 그들 자신 엄청난 탈세를 저지른 이 나라 최고의 권력이다.
법과 양심·양식을 대표해야될 이들 언론권력은 김대중 정부로부터 지금의 노무현 정부에 이르기까지 8년여에 걸쳐 직업적 정치꾼으로 행동해 왔다. 그들이 '비판'의 미명 하에 저질의 욕설을 퍼부어 온 지도 8년. 그 사이에 이 나라는 6급 공무원이 29억 원을 횡령하는 부패와 탐욕의 땅으로 전락했다. 경상도 안동의 무당들은 인간의 탐욕을 이렇게 노래했다.

"앞문에 1천 섬을 디리시고, 뒷문에 1만 섬을 디려/억만 섬 수만 섬을 불려주시고/섬 우에 섬을 얹구 독 우에 독을 얹어…."

정경희·언론인 ( [email protected]) 5903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