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시절 정치학 교양수업을 들은 적이 있었다. 교수는 꽤 유명한 사람이었다. 학문적으로 유명한지는 정치학을 전공한 사람들이 알겠지만 적극적인 사회활동으로 신문에 많이 오르내리는 인물이었다. 그 교수는 지금도 현실정치와 사회활동에 적극적이다.

교수는 출석을 부르지 않았다. 출석현황을 성적에 반영하는지 여부를 교수가 결정하던 시기여서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수업은 주로 토론이었고 교수가 이런 저런 질문을 많이 했다. 당연히 교수는 자기 생각을 가감없이 밝히면서 수업을 이끌었다. 적극적으로 수업에 임했던 학생들은 자기 생각을 밝히기도 하고, 교수의 생각과 다른 입장을 가진 학자의 논지에 대해 물어보기도 했다. 교수가 자기 생각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었다. 그 수업을 듣는 학생들도 그 교수의 생각을 대략은 알고 수업을 듣는 경우가 많았고 때론 한 시간 내내 교수와 논쟁을 벌이던 ‘예비역’도 있었다.

학기말 시험은 단순했다. ‘독일통일에 대해 논하라’였다. 수업을 충실히 듣지 않았지만 관심있었던 주제여서 관련 서적을 몇 권 읽은 터였다. 자신있게 8절지 한 장을 가득 채웠다. 뿌듯한 마음으로 강의실을 나섰다. 몇 주 뒤 성적표가 나왔다. 대학 4년동안 성적표에 거의 등장하지 않았던 알파벳이 찍혀 나왔다. ‘내가 이런 성적을 받는 날도 있다니’라며 웃었다.

며칠 후 그 수업 조교의 후배를 만날 일이 있었다. “형 혹시 시험볼 때 ‘민족’을 강조했어요?” 후배가 물었다. “그런 편이지. 통일에서 민족이라는 개념을 말하지 않을 수가 있겠냐. 그리고 독일보다는 우리가 훨씬 더 그렇지 않겠냐.” “그거 때문에 마이너네. 그 교수님 민족이라는 개념을 부정적으로 보거든요. 유럽정치에 대해 많이 연구하셔서 민족주의의 폐해에 대해 많이 언급하시는 편이에요. 수업시간에 꽤 많이 강조했을텐데? 형 수업 제대로 안 들어갔구나.” “그렇지. 수업을 많이 들었다고 해도 내 답이 달라지지는 않았을 거야.” “그럼 그 성적에 만족하세요. 성적 잘 주셨구만 뭘.”

부산대 최우원 교수의 수업이 논란이 되고 있다. 사실 교수는 자신의 정치적 신념이나 생각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게 당연하다. 그것이 학문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 제대로 설명하면 받아들이는 학생들은 받아들일테고 아닌 학생들은 반대 의견을 낼 것이다. 그런데 왜 최교수의 강의가 문제가 될까.

최 교수는 ‘노무현 대통령 선거가 조작됐다는 증거자료를 찾고 대법관이라면 이 사건을 어떻게 판결할 것인지 의견을 내라’는 과제를 냈다고 한다. <시사인>이 입수해 공개한 강의내용 녹취 파일(원문보기:[단독] 강의 음성 파일 입수… 최우원 교수, “노무현은 가짜 대통령”)을 보면 최 교수의 수업은 ‘강의’가 아니라 ‘허위사실유포’와 ‘명예훼손’에 가깝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아들의 MRI촬영 파일을 고의로 바꿔치기 했다고 주장하고 2002년 대선에서 중앙선관위가 사기를 쳐서 노 대통령을 당선시켰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학생들이 근거를 밝히라고 했지만 최 교수의 대답에 근거는 없었다. 이것은 ‘신념’이 아니라 ‘허위사실유포’에 해당하며 그에 따라 고의적으로 명예를 훼손한 행위다. 논쟁이나 논란으로 해결될 문제라기보다 형사사건으로 다뤄야 할 소지가 다분하다.

최 교수는 2012년에도 철학과 전공필수 수업 등에서 ‘종북 좌익을 진보라 부르는 언론을 비판하라’는 과제를 조갑제 전 월간조선 편집장이 운영하는 ‘조갑제 닷컴’에 올리게 하고 조교 채용 면접에서 면접자들에게 종북 좌익에 대한 입장을 밝히라고 요구해 물의를 빚은 바 있다.

교수가 신념을 말하는 것은 자유다. 교수가 신념에 따라 사회활동을 하는 것도 자유다. 교수가 인터넷커뮤니티에 글을 쓰는 것도 자유다. 하지만 허위사실을 정치적 신념으로 포장해 학생들에게 강요하는 것은 다른 범주다. 수업에서 듣다 못해 묻고 또 묻던 학생들이 이제는 강의실 밖으로 나와 공개사과와 과제물 취소를 요구하고 있다. 형사고발을 하지 않는 것이 어딘가. 아니 교수직 박탈을 요구하지 않는 것이 어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