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노 전 대통령의 사망으로 나라안팎이 시끄러운 때 김정일은 함북 강진군에서 핵 실험을 강행했다. 같은 날 지대함 미사일 3발도 발사했다. 김정일은 29일 노 전 대통령의 노제가 치러지는 시간에도 또 신형 미사일을 발사했다.
UN 결의안 1718호를 정면으로 위배한 김정일의 이 같은 행동에 한반도 주변국은 물론 주요 강대국은 크게 흥분했다. 프랑스와 일본은 북한과의 금융거래를 금지하고, 북한인의 입국을 금지시키자는 제안을 내놓았고, 미국 일각에서는 군사조치까지 거론됐다. 그동안 김정일 체제가 사고를 칠 때마다 감싸줬던 중국과 러시아마저 크게 화를 냈다.
이에 김정일 측은 29일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중국과 러시아를 ‘미국의 졸개’로까지 비하하며 강하게 비난했다.
과연 이번 핵실험이 김정일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정말 서해상 등에서 김정일 세력의 도발이 일어날까? 다른 국가들은 어떻게 대응할까?
중국-러시아 vs 김정일
냉전 시절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의 든든한 후원자였다. 하지만 냉전이 끝나면서 중국은 정치와 경제를 따로 관리하는 방식으로 개방개혁을 시작했고, 러시아는 전면적인 체제개혁을 통해 권위주의적이기는 하지만 민주적 정부로 전환했다. 두 나라 모두 과거에는 이념적 동지를 중시했다면 지금은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한다는 게 그나마 비슷한 부분이다.
러시아는 자국의 영향력 강화를 위해 서방국가와의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우리가 언론을 통해 보는 러시아의 모습은 대부분 자국의 엄청난 자원을 토대로 재벌이 된 올리가르히지만 그 뒤에는 블라디미르 푸틴과 메드베데프로 대표되는 ‘실로비키’가 있다.
흔히 ‘안보 엘리트’로 의역하기도 하는 이들 ‘실로비키’는 대부분 KGB나 GRU 등 냉전 시절 정보기관 출신들이다. 이들이 원하는 건 ‘소비에트 연방만큼의 힘과 영향력 복원’이다. 이를 위해 그동안 올리가르히가 생겨날 수 있게 도왔고, 자신들은 대신 권력의 핵심부를 차지했다. 그 덕분에 비록 인플레이션은 심했지만 러시아 경제는 급속도로 호전됐다.
한편, 이들이 대외전략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미국만큼은 아니더라도 동유럽 국가들이 NATO에 들어가는 것을 막을 정도의 산업발전과 생활향상에 전력할 수 있는 안전이다. 이때 중요한 외부 세력이 바로 중국이다. 중국이 뒤를 노릴 경우 러시아의 발전을 기대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해서 푸틴 전 대통령과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중국과의 우호 관계에 상당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 와중에 엉뚱하게 북한이 문제를 일으켰다. 시베리아와 인접한 한반도에서 핵실험을 한 것이다. 여기다 러시아도 쉽게 유출하지 않는 미사일 기술과 핵무기 제조 기술을 이슬람 근본주의 국가들에 유통시키려 한 정황도 계속 포착됐다. 북한의 이런 시도는 러시아의 대외전략에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바로 체첸 반군이 무슬림 근본주의 집단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러시아 정부는 그동안 6자 회담에서 큰 목소리는 내지 않았지만 상황을 예의 주시했던 것이다. 그런 ‘북극곰’의 참을성이 이제 한계에 다다른 것이다.
중국은 러시아와는 달리 공산당 일당독재가 계속되고 있다. 각종 통계와 언론 보도 등 겉으로 드러나는 중국의 비상은 화려하다. 하지만 그 내부를 보면 중국 사회 구조가 얼마나 연약한가 알 수 있다.
한국 사람들이 많이 진출해 있는 중국 남동지역의 대도시는 화려하다. 고층빌딩과 호화사치품, 고급 수입차에 신흥재벌까지 한국 서울의 강남보다 더 잘 사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런 도시는 중국에서도 ‘선택받은 자’들만 살 수 있는 곳이다. 16억 명 이상의 인구를 보유한 중국에서 이런 대도시에서 생활하는 사람은 전체 인구의 10% 미만. 다른 나머지 사람들은 중세시대 농노와 같은 생활을 하고 있다. 즉, 지역간 불균형, 계층간 불균형이 상상을 초월한다.
중국 공산당 정부는 때문에 향후 20년 동안 인구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농민과 빈민들의 생활수준을 향상시키는 것을 국가 목표로 삼고 있다. 하지만 이들을 대도시 사람들처럼 살 수 있게 하기 위해 필요한 교육에서부터 기반시설, 물자까지 모든 것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이미 화려한 생활을 하는 도시 인구들 또한 문화대혁명, 대약진 운동 등으로 피폐해진 정신문화를 복구하지 못해 많은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중국 공산당 정부는 이런 내부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우선 안보역량 강화가 필요하다고 판단, 대외정책의 핵심 목표를 ‘지역 패권국가’로 삼고, 실천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주변 국가의 비핵화, 재래식 군사력의 현대화, 병력 소수정예화, 특수부대 강화 등을 추진 중이다. 서구 강대국 무기의 복제판 제작, 신형 무기 개발, 한반도의 중국 주변국가화를 위한 중국인의 한국, 북한 진출 등도 이런 맥락으로 봐야 한다.
그런데 갑자기 한동안 말을 잘 듣는 듯 하던 김정일 정권이 ‘핵 난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이에 중국 공산당 정부는 우선 6자 회담을 통해 대화로 해결코자 했다. 자신들의 국가전략을 포기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잘 타이르던 상황에서 김정일이 이번에 중국의 ‘뒤통수’를 갈겨버렸다. 이에 중국은 한반도라는 ‘주변 지역’을 이대로 둘 수 없다고 판단하게 됐다.
일본 vs 김정일
한편, 이번 핵실험에 대해 매우 흥분한 반응을 보인 나라가 프랑스와 일본이다. 이들은 그동안 미국이 하고 싶어도 하지 못했던 제안을 했다. 바로 UN 안보리 결의안 1718호에서 채택은 했으나 제대로 시행되지 못한 부분, 즉 북한 정부나 김정일과 관련된 모든 금융거래의 금지와 해당 인사의 입출국 감시 및 금지, 우편물 등에 대한 감시, 통제였다.
이 같은 제재가 별 소용이 없을 것이라는 국내 전문가들의 주장도 제기되지만, 금융제재와 교역 및 통신의 감시, 통제, 자유로운 여행의 제안은 김정일 체제에 치명상을 입힐 수 있다. 이런 추측은 과거 마카오의 방코델타아시아에 대한 미국 정부의 간단한 지침만으로 김정일 정부가 치명타를 입으며 온갖 발악을 했던 것에서도 알 수 있다.
현재 각국 정보기관 및 언론 등이 추측하는 김정일의 비자금은 최대 50억 달러. 이중 상당 부분이 지난 10년 간 한국으로부터 받은 돈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 비자금은 마카오의 재벌 스탠리 호가 운영하는 카지노 등을 통해 ‘세탁’된 뒤 말레이시아 라부안이나 마카오, 룩셈부르크, 스위스 등과 같은 조세피난처 지역의 김정일 비밀 계좌로 흘러드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일부는 차명으로 미국에 투자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이런 비자금의 주 사용처는 김정일의 체제유지비용이다. 김정일은 핵무기 개발, 대남공작, 자신에게 충성하는 계급에게 주는 물자와 선물 구입비용을 모두 이 비자금으로 충당한다. 때문에 해외은닉 비자금의 동결은 몇 년 새 북한 체제를 근본부터 뒤흔들 수 있다.
일본이 프랑스와 함께 이 같은 제안을 한 외면적 이유는 이미 국내 언론을 통해 어느 정도 알려져 있다. 하지만 우리가 일본 극우세력들의 핵 무장론과 선제 공격론에만 집착할 경우 보다 큰 그림을 놓칠 수 있다. 바로 중국과의 동아시아 패권경쟁이다.
일본 연립내각은 자민당과 공명당이 구성하고 있다. 제1야당은 민주당이다. 우리나라 언론에서는 민주당을 좌파 성향이라고 설명하기도 하는데 사실 공명당 수준의 극우적 시각을 갖고 있는 게 민주당이다. 즉 이들 모두가 극우적 시각을 갖고 있다. 이들의 공통적 목표는 일본을 21세기 미국의 패권 시스템에 맞춰 ‘지역 패권세력을 맡을 수 있는 보통국가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당장에는 한반도와의 관계 개선, 중국과의 우호 관계 증진을 통해 시간을 벌고 향후 군사력, 정치력을 강화한다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그런데 변수가 생겼다. 바로 김정일 정권의 연이은 협박과 핵실험이다. 일본은 이런 김정일 정권의 핵실험을 좋은 기회로 삼아 최근에는 내부 여론까지 환기시키고 있다.
한국-미국 vs 김정일
그렇다면 김정일의 협박 상대인 한국과 미국은 어떨까. 겉으로 보면 아주 느긋하다. 때문에 지난 10년간의 안보 약화에 대해 걱정하는 사람들이 보면 불안해 보인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양국 정부가 제대로 대처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명박 정부가 탈북자들을 대우하는 것으로 미루어 한국 정부가 과연 김정일 체제와 권력층 내부 상황을 얼마나 파악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지금 김정일 패거리들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짐작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즉 지난 정권들에서 친정부 언론들이 떠들어 댔던 소위 ‘북한 강경파 이론’의 허상 등은 이미 간파한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 패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객관적인 능력 보다는 김정일에게 얼마나 잘 보이느냐, 잘 아부하느냐로 등용되는 시스템이다. 이때 중요한 건 어떤 일이 있어도 김정일보다 똑똑한 게 드러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는 70년대 후반부터 김정일이 주도했던 경제개혁이 실패로 드러난 이후의 경제관료 숙청사건이나 90년대 초반 프룬제 군사학교 출신들의 대거 숙청에서도 볼 수 있다. 특히 프룬제 사건 후 김정일은 국내파를 등용하는 한편, 엘리트에 대한 반감을 키우게 되었다.
때문에 지금까지 김정일 패거리의 대남 도발이나 핵실험, 각종 협박 선언 등은 사실 ‘군부 강경파’가 주도한 게 아니라, 이들의 부추김과 아부로 나온 김정일의 전략이었다고 봐야 한다. 김정일은 본인 스스로를 천재라고 착각하고 산다. 하지만 그는 프룬제 군사학교에 유학했다 퇴학당한 바 있다. 그는 아버지를 닮아 모략과 음모에는 능하지만 군사적인 면에서는 그리 뛰어나지 못하다. 이런 그가 지금 상황을 주도하고 있으니 제대로 된 대남, 대미 전략이 나오기 어렵고 항상 빈틈이 있을 수밖에 없다.
미국의 사정은 약간 다르다. 과거 클린턴 정부 시절 미국은 제대로 김정일에게 ‘뒤통수’를 맞았다. 경수로 일이 그러했고 비핵화 작업도 마찬가지였다. 고위급 교환방문도 허사였다. 이후 부시 정부는 김정일에게 강하게 나가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 행동은 그리 치명적이지 않았다.
새로 들어선 오바마 정부는 과거 영부인이었던 클린턴 국무장관에게 대북정책의 상당 부분을 맡기고 있다. 여기서 주의 깊게 봐야할 부분이 있다. 10년 전 대북정책 담당자들이 대거 돌아왔다는 점이다. 이들은 이제 더 이상 북한과의 대화를 중요하게 보지 않는다. 이미 웬만한 카드를 다 봤기 때문이다. 이들이 원하는 건 필요하다면 무력도 사용하고, 어떤 방법을 쓰더라도 러시아, 중국, 일본, 한국 등이 계속 미국의 동맹국으로 남아 성장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한국에겐 그나마 다행(?)인 것은 현재 미국 대외전략의 주 목표다. 지금은 미국의 눈이 아프가니스탄에 쏠려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곧 파키스탄, 소말리아 등으로 옮겨갈 것이다. 이유는 탈레반 등과 연계한 종교 근본주의자 세력의 소멸이 주요 목표기 때문이다.
반면 북한 문제는 한미일 삼각동맹을 통해 해결하거나 UN 또는 NATO 국가들이 실질적으로 주도하는 PSI를 통해 해결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즉 직접 무력을 사용하기 보다는 고사시키겠다는, 과거 부시 행정부의 정책 기조를 계속 이어나감과 동시에 실행에 있어 조금 다른 방향으로 나가겠다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그 실행할 정책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지만 이번 북한의 핵실험은 새로운 정책을 보여주는 첫 장이 될 것으로 보인다. 새 정책이 성공할 경우 나타날 결과는 바로 김정일 체제 내부로부터 분열과 폭발이다.
김정일의 마지막 선택은?
김정일이 핵실험을 선택할 때는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핵실험과 연이은 각종 협박에서 김정일 패거리들이 보여준 것은 그들이 국제 사회의 분위기를 파악하는 능력이 얼마나 뒤떨어지는가이다. 일부에서는 김정일이 얻은 게 많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정권 유지와 체제 영속성에 모든 걸 걸고 있는 김정일 입장에서 보면, 이번 핵실험은 ‘자살골’이 될 가능성이 월등히 높다.
김정일은 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시절 측근들에게 ‘평양 300만 명만 있으면 된다’고 말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충성계급만 있으면 정권을 유지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그러나 북한의 현실에 대해 알아보면 그가 얼마나 멍청한 지 알 수 있다.
지난 60년 동안 북한 사회에서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던 각종 범죄가 일어나고 있다. 경찰과 같은 사회 안전원이 폭행당하는가 하면, 후방 군부대 지휘관들은 병사들의 영양실조를 막기 위해 도적질까지 하고 있다. 중국 국경지역의 여군 일부는 생필품과 식량을 얻기 위해 중국 농부들에게 몰래 몸을 팔기도 한다. 한국의 기무사, 국정원과 같은 보위사령부, 보위부 요원들은 남한 사람들에게 달러를 받고 현지 정보를 제공하는 경우도 있다. 즉, 평양 주변과 한국 접경지역 외에 북한 사회는 이미 김정일 체제를 거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체제의 해체를 막기 위해 김정일이 당장 해야 할 일은 해외에 쌓아둔 비자금을 국민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지만, 김정일은 오히려 측근들의 부추김 속에 극단적 선택만 계속하고 있다. 게다가 앞으로 큰 문제가 될 후계자 선정도 전혀 준비된 게 없다. 그동안 그가 자랑해왔던 대남사업은 한국 내 좌파들의 몰락과 부정부패로 이젠 동력을 잃어가고 있다.
이런 북한의 현실을 파악한 중국은 공산당 연구기관을 통해 ‘필요하다면 북한에 대한 무력 개입을 해야 한다’는 주장을 수 년 째 내놓고 있다. 한편, 일본은 중국과의 밀월관계를 가짐과 동시에 북한에 대한 선제 공격론까지 들먹이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김정일의 이성적 선택은 무엇일까. 답은 하나뿐이다. 본인과 가족들의 중립국 망명을 조건으로 모든 것을 포기하고 한국과 미국 정부에 손을 내미는 것이다. 하지만 김정일의 나약함과 측근들의 비겁함 때문에 김정일이 이런 선택을 할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매우 낮다. 오히려 김정일 패거리들이 자신들의 실패를 덮기 위해 국지전과 같은, 핵실험보다 더 큰 파장을 미칠 도발을 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분쟁발생 시 북한이 목적을 달성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김정일 패거리들이 목숨 걸고 싸운다는 보장도 없다. 일선의 인민군은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똑같으니 한 판 붙자’고 나설 수도 있지만, 지휘관이 전쟁에 대한 의지가 없으면 군대는 이미 진 것이다. 즉 김정일 패거리의 다음 발악은 한국과 미국의 대응에 따라 김정일 정권의 최후, 북한 해방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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