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오세훈(사진) 서울시장은 지금 전쟁 중이다. 서울 시내 초·중학생에 대한 전면 무상급식 실시를 놓고서다. 무상급식은 6·2 지방선거 때부터 논란이 됐던 이슈다. 민주당은 전면 실시를 요구하는 반면 오 시장은 저소득층부터의 순차적 실시를 주장한다. 전선이 가팔라진 건 서울시의회에서 민주당이 무상급식 조례안을 날치기 처리하면서다. 의석 4분의 3(79명)을 차지하고 있는 민주당은 한나라당이 반발하는 가운데 지난 1일 조례안을 기습 통과시켰다.

이후 오 시장은 ‘투사’로 돌변했다. 조례안을 철회하지 않는 한 시 의회의 시정질문에 응하지 않겠다며 의회와 각을 세우고 있다.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에겐 공개 TV토론을 제안했다. 말도 거칠어졌다. “망국적 포퓰리즘”이라거나 “여기서 무너지면 대한민국이 무너진다”는 등의 발언이 쏟아지고 있다. “정치 생명을 걸고 부자급식을 막겠다”고도 했다. 차분하고 부드러운 평소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는 발언들이다.

포퓰리즘이란 뭔가. 유권자의 표를 의식해 선심성 정책을 펴는 인기영합주의다. 지난 지방선거 때 오 시장은 포퓰리즘이란 공격을 받았다. 시장 후보경선 땐 당내에서도 ‘이벤트 행정’ ‘포퓰리즘의 전형’이란 비판을 받았다. 그런 그가 이번엔 포퓰리즘을 비판하는 형국이 된 것이다. 그는 왜 그러는 걸까. 무엇이 그를 투사로 바꿔놓은 걸까.

9일 오후 서울시장 집무실에서 오 시장을 만났다.

-민주당과 곽 교육감은 지방선거 때 무상급식을 공약으로 들고 나와 당선됐습니다. 공약을 시행하려는 건데 포퓰리즘이라며 거부하는 건 지나친 것 아닌가요.
“이건 질 나쁜 포퓰리즘이에요. 이게 받아들여지면 선거 때마다 제2, 제3의 이런 공약이 난무할 거라는 아주 불안한 예감이 듭니다. 서울 전선이 무너지면 대한민국 전체가 포퓰리즘에 휩싸이게 될 테고 내후년 총선, 대선이 불 보듯 뻔합니다. 저 사람들(민주당)은 포퓰리즘으로 선거 치를 생각을 할 거고 아주 과격한 포퓰리즘 공약이 난무할 거예요. 같이 싸워보자고 했더니 한나라당 내에서도 슬금슬금 꼬리 내리는 국회의원들이 있어요. 서울시장인 내가 정치적 손해를 감수하면서 막아내지 않으면 누가 하겠어요.”

-왜 무상급식이 망국적 포퓰리즘입니까.
“이게 확산되는 순간 국가재정이 감당하기 힘듭니다. (야당은) 오 시장이 좋아하는 토목사업 예산이면 얼마든지 된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우리나라 조세부담률은 21%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27%, 스웨덴 같은 북유럽 국가들은 30~35%예요. 전면 무상급식을 하려면 앞으로 세금이 무한히 늘어날 수밖에 없는데 그건 입도 뻥긋 안 하면서 마치 국민들에게 공짜로 뭔가 줄 수 있을 듯이, 민주당이 집권하면 복지혜택이 하늘에서 뚝 떨어질 것처럼 국민을 호도하고 있어요.”

-저소득층에만 무상급식을 할 경우 감수성이 예민한 초·중학 시절에 자칫 아이들한테 심리적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지적엔 동의하나요.
“지금까지는 부주의한 선생님들 때문에 학교 현장에서 그런 현상이 있었다는 걸 인정합니다. 하지만 해결할 방법이 나왔어요. 지금까지는 학교에서 무상급식자 희망을 받았지만 앞으론 동사무소를 통해 신청 받으면 아이들이 알고 싶어도 알 수 없어요. 외국도 그렇게 하고 있어요. 그런데 민주당이 위원장으로 있는 시의회 교과위에서 이 법안을 통과시키지 않고 있어요. 돈 안 들이고 할 수 있는데 법안을 통과시키지 않는 이유가 뭘까요. 속이 뻔히 보이지 않나요. 해결 방안이 있는데 법안 통과는 막아놓고 전면 무상급식 하는 걸로 몰고 가니 얼마나 질이 나쁩니까.”

-야당에선 ‘조례안이 통과되고 나니까 오 시장이 공개 토론을 제의했다’며 오 시장의 대선 행보라고 주장합니다.
“조례안이 통과되기 전인 11월 말 제가 서울시의회 의장(민주당 허광태), 곽 교육감과 3자 모임을 했어요. 두 가지 제안을 했어요. 전 학부모를 대상으로 나와 전면실시하자는 곽 교육감이 동일한 분량으로 편지를 써서 발송해 누구 의견에 동의하는지 전수조사를 해보자. 그전에 TV토론을 하자고요. 조사 결과에 승복하겠다고요. 그런데 곽 교육감이 ‘주변에서 하지 말라고 했다’며 TV토론을 못 하겠다고 해요. 그런데 이제 와서 대권 행보에 들러리서고 싶지 않다고요? 자신이 정치적 행보를 하고 있으면서.”

-그럼 곽 교육감이 토론에 안 나오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속살이 드러나는 게 두려운 거예요. 보세요. 단순 계산으로 해도 초등학교 전면급식에 2500억원, 중학교는 1500억원이 듭니다. 급식실·조리실 시설 갖추고 조리 인력 등을 맞추려면 평균 연간 1000억원이 들어가요. 1년에 8000억원으로 학교 생활의 질과 교육의 질을 높여야 할 교육감이 5000억원을 여기에 쓰면 어떻게 될까요. 곽 교육감도 이런 사정을 알고 있다고 봐요. 그래서 ‘난 하고싶었는데 오 시장이 반대해서 못했다’는 평판을 받고 싶은 거죠.”

-‘시민의 힘으로 부자급식을 막아달라’고 했는데요.
“시민들이 도와주지 않으면 버틸 힘이 없다는 위기감이 바탕에 깔린 거죠. 지난 6개월 동안 저자세로 젖 먹던 힘까지 다해 기었어요. 시의회 개원도 하기 전에 (민주당이) 점령군처럼 쳐들어와서 양화대교 교각 확장 공사를 중단하라고 요구했어요. 굉장히 망설였지만 대화하려면 말을 들어줘야 하니까 수용했어요. 정말 굴욕적이었지만 과감하게 공사 중단했어요. 그리고 대화하자고 매달렸어요. 그런데 문제는 첨예한 이슈만 걸리면 중앙당 지시를 벗어나지 못하는 거예요. 그리고 끝내 무상급식 전면실시안을 힘으로 통과시킨 거 아닙니까.”

-경기·충북·경북·강원 등 단체장과 시의회 다수당의 소속 정당이 달라 충돌을 빚는 곳이 많지만 서울시처럼 큰 분란이 일고 있지 않습니다. 시장의 정치력에 문제가 있는 거 아닐까요.
“전 요즘 경기도가 부러워요. 서울시는 한나라당이 의석의 4분의 1을 갖고 있지만 경기도는 3분의 1석, 플러스 1석이에요. 경기도에선 재의 요구하면 돌아오지 않아요. 거기서 타협의 여지가 생기는 거죠. 그런데 서울은 재의 요구하면 바로 그 다음 날 재의돼 돌아옵니다. 그래서 6개월간 간도 쓸개도 다 빼버리고 여기까지 왔거든요. 그런데 무상급식 통과시키는 모습을 보면서 이젠 선을 그어야 할 때가 왔다는 판단을 안 할 수가 없었어요. 이 결심은 앞으로도 계속 갈 겁니다. 무상급식에 대해 철회하지 않으면 제가 아무리 의회 민주주의를 거부하는 시장이란 치명적인 정치적 오명이 남더라도 절대 이 사안에 대해선 타협하지 않습니다. 시의회가 철회할 때까지 시의회에 안 나갈 겁니다.”

-정치생명을 걸 만큼 중요한가요.
“서울 전선이 무너지면 무상급식은 대세가 됩니다. 그럼 1년에 수조원이 전국에 무상급식으로 들어가는 겁니다. 거기에 맛들인 민주당은 끝간 데 없이 복지 포퓰리즘으로 가는 겁니다. 저는 지난 4년간 나름의 복지 패러다임을 만들었어요. 서울형 복지의 요체는 자립형 복집니다. 같은 돈을 투입하더라도 성과가 나야 합니다. 그런데 무상급식을 하게 되면 저의 복지 비전이 한순간에 밀려나는 겁니다. 저한테까지 그들의 원칙을 강요할 순 없는 거죠.”

-시장후보 경선 때 디자인 정책을 놓고 한나라당 내에서도 전시행정, 포퓰리즘이란 공격을 받았습니다. 포퓰리스트로 공격받은 오 시장이 포퓰리즘을 공격하니 좀 아이러니합니다.
“(제가) 포퓰리즘이란 데 동의하지 않습니다. 선거 때 정치적으로 딱지 붙이기 위해서, 폄하하기 위한 논리죠. 저도 정치인이기 때문에 디자인이란 용어 때문에 선거 때가 되면 논란에 휘말릴 것이란 감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정을 펼쳐왔던 제가 오히려 용기 있는 시정을 폈다고 자부합니다. 비전을 함께 만들어가야 할 정치인들이 디자인이란 용어에 착안해서 비판한 걸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당 내외를 불문하고, 경선이 됐든, 본선이 됐든 전시행정이라고 몰아붙이며 하지 말아야 할 정책이라고 국민을 오도했던 정치인들은 정말 반성문 써야 합니다. 이젠 누구도 디자인 행정이 전시행정이란 말 안 합니다.”

-국회에선 부자감세 논쟁이 일었습니다. 박근혜 전 대표와 한나라당도 감회 철회 쪽으로 가고 있는데요.
“부자 감세는 본말이 전도된 논쟁입니다. 무상급식도 민주당의 패러다임에 갇힌 거지만 부자감세 논란도 한나라당 몇몇 의원이 뛰어드는 바람에 스스로 민주당 패러다임에 갇힌 겁니다. 민주당의 프레임에 걸려들어 한나라당 내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어요. 한심한 거죠. 무상급식 논쟁도 이번 기회에 우리가 지향하는 복지국가의 수준이 어느 정도일지에 대해 오피니언 리더들 사이에 논쟁이 일었으면 좋겠어요. 이런 수준의 복지를 하려면 과연 세금을 얼마를 더 늘려야 하는지 민주당이 좀 솔직했으면 좋겠어요. 더 비겁한 것은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 거치면서 감세를 해왔다는 겁니다. 자기들은 집권했을 때 감세하고 그 시절엔 보편적 복지를 안 해놓고 이제 본인들이 야당 되니까 세금 올리자는 말을 싹 감추고 복지 혜택을 늘리고 소득수준과 무관하게 (모든 아이들에게 공짜로) 밥 먹여라, 이 개명된 세상에 어떻게 이런 얘기를 합니까.”

-무상급식에 관해 왜 한나라당은 적극적 문제 제기를 안 할까요.
“일단 한 물결 지나간 선거 이슈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또 국회의원들이 서울시 문제니까 전면에 나서지 않는 것도 있고요.”

오 시장은 국회의원(16대) 시절 정치자금법 개정안을 주도했다. 기업·단체들로부터 받던 거액의 후원금을 일절 받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이른바 ‘오세훈법’이다. 당시 당내에서도 반발이 컸다. 현실을 도외시한, 인기에 영합한 포퓰리즘이란 비판도 나왔다. 그러나 당시 오 시장은 ‘17대 총선 불출마’라는 배수진을 치고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최근 청목회 로비 사건이 터지면서 오세훈법이 다시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단체의 돈을 개인이 기부하는 것처럼 소액으로 쪼개 후원금을 낸 게 드러나면서 법 개정 움직임이 일고 있다.

-‘오세훈법’ 개정 움직임을 어떻게 보십니까.
“당시 개정안이 통과되고 나서 제가 ‘바뀐 법 갖고 두 텀(17, 18대)만 선거 치르게 해달라. 그럼 한국의 정치·선거자금 풍토가 완전히 바뀔 수 있다’고 얘기한 게 기억 나요. 실제로 완전히 바뀌었어요. 의원들 만나면 ‘오세훈 정치자금법 덕분에 나 같은 사람도 정치에 입문할 수 있었다. 법정자금 외에 한 푼도 안 썼다’며 고맙다고 해요. 이 시점쯤 되면 이젠 바뀐 제도에 적응해야 할 시점이지 지금 와서 다시 흔들게 되면 다시 과거로 돌아가게 됩니다. 지금의 정치자금 시스템을 보전했으면 좋겠어요. 고통을 감내하면서 조금 더 유지해나가면 이젠 세상이 완전히 그 시스템에 적응하게 됩니다. 오로지 사명감을 가진 사람만 정치권에 남게 됩니다.”

-전임 시장인 이명박 대통령은 청계천 복원이나 버스 전용차선제 같은 굵직한 업적을 남겼습니다. 이런 점이 오 시장에게 심리적 부담을 주지 않았나요.
“임기 초에 그런 라이벌 의식이 없었다면 거짓말이죠. 하지만 그걸 승화시켜 이런 성과들이 나오고 있는 거 아닙니까. 절대로 전임시장에 비해 업적이 뒤진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120 다산콜센터가 청계천만 못합니까, 장기전세주택이 버스전용차로만 못합니까. 역대 어느 시장과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는 업적이라고 자부합니다.”

-지방선거 결과가 오 시장 재임 4년에 대한 평가라고 생각하진 않습니까.
“일부러라도 그렇게 받아들이려고 노력합니다. 억울했죠. 막판에 천안함을 비롯해 여러 가지 변수가 많았잖아요. 그렇게 해석하고 싶은 유혹이 들지만 그렇게 하면 발전이 있겠어요? 4년 전 너무 압도적으로 돼서 지나치게 자신만만한 것도 있었고 그런 마음가짐을 심판해주셨다고 생각하고 원점에서 시작하자고 다잡고 있어요.”

-당과 지지자들이 구당과 구국의 길이라며 대선 출마를 요구하면 어떡하시겠습니까.
“그런 이유 때문에 출마할 이유는 없는 거죠. 저도 정치인이니까 솔직히 그런 여지는 열어놓고 싶습니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저의 행보가 자꾸 정치적 계산을 깐 행보로 해석되는 것은 정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민주당도 대선 행보라고 폄하하고 순수성에 기운을 빼려고 하는데 거기에 말려들 생각은 추호도 없고요. 이 문제를 갖고 역사 앞에 떳떳하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갈 겁니다.”

이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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