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수개표 천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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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제아 - 손학규 대중에게 알려진 손학규 경기지사의 상징적 이미지는 ‘샌님’ ‘모범생’이다. 깐깐해 보이는 외모, 강의실을 방불케 하는 꼬장꼬장한 목소리, 경기중·경기고·서울대로 이어지는 최고학벌, 대학교수, 3선 국회의원, 보건복지장관 등. 뭣 하나 놓고 봐도 빠지는 것이 없다. 그런데 정작 손학규 지사 측은 세상에 알려진 이 ‘샌님’ ‘모범생’ 이미지 때문에 고심하고 있다. 통념적으로 샌님이나 모범생이란 말 속에는 소극적이고 수동적이라는 평가가 녹아 있기 때문이다. 사실 손 지사와 가깝게 지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를 모범생으로 일컫는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그들의 설명에는 ‘가난한 모범생’ ‘싸움 잘 하는 모범생’ ‘잘 노는 모범생’ 등의 전제가 반드시 따라붙는다는 점이다. 모범생이되 샌님은 아니라는 얘기다. 손 지사는 1947년 경기도 시흥에서 교육자 집안의 10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당시 부친(손병화·1950년 작고)은 47세, 모친(양현자·1977년 작고)은 43세였다. 그가 세 살 되던 해 초등학교 교장이던 부친이 사고로 운명을 달리하면서 손 지사는 지독한 가난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다. “학규네가 엄청나게 못살았어요. 잘 먹지 못해서 애가 항상 창백한 것이 삐쩍 말라 있었거든.” 시흥초등학교 동창생 박성철(서울 성재중교장)씨의 말처럼 유년기의 그는 영양실조로 얼굴엔 항상 버짐이 허옇게 펴 있었고, 모친은 똥지게를 지어 나르고 행상도 마다하지 않으며 10남매를 길렀다. 가난했지만 소년 손학규는 반장을 도맡아 했고 학업성적은 항상 1등이었다. 특히 불의를 참지 못하는 성격 때문에 덩치 큰 친구들과 싸움도 심심치 않게 벌였다고 한다. 박씨는 “당시엔 ‘공민반’이라고 해서 나이 많은 애들이 뒤늦게 학교에 다니며 횡포를 부리기도 했다”며 “학규는 친구들을 괴롭히는 공민반 학생과 자주 싸움을 벌였는데 코피가 나면 물러서게 마련인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피범벅이 돼서도 끝까지 싸웠다”고 말했다. ‘모범생이지만 샌님은 아닌 기질’은 그의 경기 중·고 시절을 회상하는 목소리들에서 더 잘 드러난다. 손 지사는 고등학교 1학년까지 밴드부에서 트럼펫을 불었다. 그러나 연극을 꼭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밴드부 선배들에게 흠씬 얻어 맞고 연극반에 들었다고 한다. 이 점을 놓고 봐도 그는 조용한 모범생은 아니었던 듯하다. 그와 경기고 61회 동창생인 덕성여대 이원복 교수는 “학규는 모범생이고 놀기도 잘해 동창들 사이에서는 항상 리더그룹이었다”며 손 지사를 ‘잘 노는 모범생’이라고 일컬었다. 고교 후배로 훗날 화동연우회(경기고 연극반 출신 모임)에서 손 지사와 친해진 탤런트 한진희씨는 그가 샌님이라는 데 대해 “말도 안 된다”며 손사래를 친다. “학규 형이 샌님처럼 보이긴 하죠. 그런데 그거 절대 아니거든요. 평소 성격도 호탕한 데다 악수를 해도 손아귀 힘이 얼마나 센데…. 아직도 연극에 대한 열정이 우리처럼 이걸로 밥 먹고 사는 사람이 부끄러울 정도라니까요.” ‘샌님 모범생’이라는 인식에 대한 지인들의 부인(否認)에도 불구하고 밖으로 알려진 그의 이미지는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다. 측근 사이에서는 “결국 대중에게 충분히 알릴 기회가 적었기 때문”이라며 “상대적으로 언론의 관심을 적게 받는 경기지사의 한계”라는 푸념까지 나온다. 1998년 지방선거 당시. 그러니까 한나라당 후보로 경기지사에 출마해 국민회의 임창열 후보에게 패배했던 선거의 선거운동 기간 중, 그는 지방 언론사들이 개최한 경기지사 후보 초청토론회장에 들어서며 기자들에게 한탄조로 이렇게 말했다. “휴우~, 언론 토론회 때문에 선거운동이 안돼.” 그때부터 지방선거에도 미디어 토론회 등이 본격화됐던 터라 후보들의 대(對) 언론 피로감이 극심할 만도 했지만 그의 말에는 현장유세에 나서지 못하는 아쉬움이 더욱 강했다. 그만큼 손 지사는 줄곧 ‘포장된 공간’보다는 ‘현장’에 자신감을 보여왔는데, 이는 그가 겪은 가난과 그가 좋아했던 연극, 그가 가진 리더십·의협심 등이 스스로를 현장지향적으로 만들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잘 알려진 것처럼 손 지사는 서울대 정치학과에 입학해 한·일회담 반대시위를 시작으로 학생운동에 나섰고 졸업 후에는 노동운동에 뛰어들어 무기정학, 수배, 도피, 검거 등의 고초를 겪었는데 그런 중에도 그는 탄광촌과 공단 등에서 능숙한 현장 적응력을 보였다. 1976년 그가 서울 마포의 한 기계제조공장에 ‘도바리’ 중이었을 때 만났던 당시 용접공 배옥렬(50)씨의 전언. “그땐 (손 지사가) ‘김건’이라는 이름(가명)을 썼는데 난 지금도 ‘건이 형’이라고 부르죠. 1년4개월을 공장에서 자고 먹으며 함께 뒹굴었죠. 내가 용접도 가르치고 쇠 다듬는 기술도 가르쳤는데 참 잘했어요. 팬티 바람으로 함께 화투도 치고 막걸리도 마시고, 나한텐 친형이나 마찬가지였죠.” 지금도 그는 정치인으로서, 생활인으로서 현장을 중시한다. 시장 상인 만나기 좋아하고 주말에 틈이 나면 손수 운전해 부인 이윤영씨와 교외 드라이브에 나서기도 한다. 현장에서 손 지사가 대중을 흡입하는 데는 특유의 ‘끼’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때론 육두문자 섞인 농담도 2003년 6월 화성시 한 기업에서 열린 ‘노동자들을 위한 정오의 이동 예술무대’.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던 손 지사가 빠른 비트의 댄스곡이 연주되자 갑자기 자리를 떨치고 일어나 관객과 함께 능숙한 솜씨로 몸을 흔들기 시작했다. 어느 결에 그의 얼굴엔 옆 자리 관객의 선글라스까지 씌어 있었다. 행사장은 열광의 도가니가 됐고 예상 밖의 상황에 수행공무원조차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 후에도 손 지사는 최근까지 경기도 문화의 전당에서 열린 연극공연에 배우로 출연했다. 그래서 한 측근은 본인이 없는 자리에서 손 지사를 ‘딴따라 지사’라고 일컫기도 한다. 현장을 중시하는 습관은 도정 운영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손 지사는 정책을 수립하는 데도 현장 공무원의 의견을 토대로 삼는 스타일로 알려져 있다. 현실을 중시하기에 그는 평소 의전이나 절차보다는 내용을 중시한다. 지난 9월 28일 도지사 집무실에서 만난 그는 대화 도중 익살스레 육두문자를 섞기도 했고, 대학 4학년 때 뒤늦게 시작한 35개월의 군생활을 떠올리면서는 ‘X뺑이쳤다’ ‘개구리복(예비군복)’과 같은 은어를 쓰는 등 넉살 좋은 이웃집 큰형의 면모를 보였다. 그의 오랜 지기인 소설가 황석영(영국 체류)의 얘기를 꺼내자 그 자리에서 전화를 걸어(당시 영국은 새벽) “형님, 나 학규요”하고 잠을 깨우기도 했고, 대화 중엔 구두를 벗고 소파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깔깔대고 웃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국가 경영 마인드나 이념에서 그의 소신인 현실주의의 중요성을 놓치지 않았다. ‘보수’ ‘진보’ 중 어느 쪽에 가까우냐는 질문에 그는 “그런 분류는 의미가 없고 시장경제를 존중하면서 불합리한 부분은 개혁을 해나갈 뿐”이라고 잘라 말했다. 또 송두율 교수가 국내법에 의해 처벌을 받은 일이나 최근의 맥아더 동상 철거 논란 등 이념적 색깔과 관련된 부분에 대해서는 “송 교수는 옳지 않았고 맥아더 동상 철거도 말도 안 되는 얘기”라면서 “그러나 이런 사실을 가지고 자꾸 (양쪽에서 이념적 대립을) 부추기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손 지사는 대북·대미 관계에 대해서도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북한에는 퍼주기식 지원이 아니라 기반을 만들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며 “그러면서 미국과 긴밀한 유대를 가져야만 북한이나 중국과의 관계에서 협상력을 얻을 수 있다”고 밝혔다. 미국이 신뢰하지 않는 한국은 북한에도, 중국에도 협상력을 인정 받을 수 없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그래서 그는 효순이·미선이 추모 촛불집회가 한창이던 지난 2002년 말 당시 극도로 위축돼 있던 의정부 미2사단에 찾아가 일부의 비난을 무릅쓰고 공연과 불고기 파티를 벌여주기도 했다. 현실을 잣대로 한 그의 시각은 386세대와 한나라당 내부에 대한 비판으로도 이어진다. 손 지사는 “대부분의 386세대는 제대로(현실적으로) 돌아섰는데 정치화된 386은 급진적 이념을 맹목적으로 쥐고 있으려고만 한다”며 “한나라당도 더 이상 보수를 표방하다간 망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집으로 돌아오면 그는 흔히 볼 수 있는 가장이자 남편이다. “퇴근하면 양말을 벗어서 하나는 여기, 또 하나는 저기… 아휴 어리광도 심해요.” 부인 이윤영씨는 이화여대 약대 출신. 이화여대 약대 시절 서울대 정치학과생 손학규를 만나 7년 연애 끝에 결혼했다. 이윤영씨가 본 남편은 그랬다. “밥을 거르면 정서적으로 불안한가 봐요. 중간에 뭘 먹어도 꼭 밥은 먹어야 하니까. 체력은 타고난 것 같고, 대학 땐 막걸리 마시기 대회에 나가서 신선으로 뽑혔다는데(지금도 손 지사는 정확한 주량이 알려지지 않았다) 술을 마셔도 흐트러지지 않아요. 두 딸한테는 저보다 자상하고, 아침엔 스스로 개발한 스트레칭으로 한 시간 정도 운동을 해요.” 남편의 벌이가 시원치 않던 시절 10년간 약국 일을 하며 묵묵히 내조해온 이씨에게 손 지사는 예나 지금이나 ‘항상 옆에 있는 좋은 남편’이라는 것이 가장 큰 자랑거리인 듯했다. 잉꼬부부로 정평이 나 있는 손 지사 부부는 광명의 아파트 한 채와 월급통장이 전부일 정도로 나이와 사회적 지위에 비해 돈이 없고 재테크라는 걸 해본 적도 없단다. 그러면서도 한번도 어렵다고 느껴 본 적이 없다는 것이 부부의 공통된 대답이었다. 잠재적 대권주자 중 인지도나 지지율이 바닥을 면치 못하는 데 대해서도 손 지사는 “아직 시작도 안 했다”, 부인 이씨는 “이제 올라가기만 하면 된다”고 태연해 했다. 손 지사는 지난 봄부터 정장 상의 대신 점퍼를 입고 다닌다. 국정감사 등 특별한 상황을 빼고는 어딜 가도 점퍼 차림이다. 부인 이씨가 골라준 것들이라는데 “점퍼를 입으면 더 일하는 맛이 나고 진취적이 된다”는 것이 부부의 답이다. 점퍼를 입은 마음으로 열심히 일을 하다 보면 경기도민과 국민이 알아줄 것이라는 얘긴데, 물론 샌님, 모범생 이미지를 벗고 대중에게 다가서기 위한 전략 중 하나로도 보여진다. 손 지사가 입고 다니는 점퍼가 어딘가 약해 보이는 이미지, 당내 기반 미약, 대중 인지도 열세 등 그의 약점을 보완하는 데 얼마나 효력을 발휘할 것인가. 배한진 조선일보 경기취재본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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