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퇴직연금의 실패, 국내는 괜찮을까?
[머니투데이 권성희기자]퇴직연금 시행을 앞두고 관심이 높아가고 있는 가운데 우리보다 퇴직연
금을 훨씬 더 빨리 도입한 미국에서 퇴직연금 실패 사례가 잇따라 나타나 경종이 울리고 있다.
세계적인 시사 주간지 "타임"은 10월31일자 미국판 커버스토리로 "깨어진 약속(The Broken Prom
ise)"이라는 제목으로 미국의 퇴직연금 실패 사례를 소개했다.
금융감독위원회는 11일 "타임" 커버스토리를 정리하고 국내 퇴직연금 제도와 관련한 시사점을
정리했다.
◆미국의 퇴직연금, "깨어진 약속"?
"타임"에 따르면 근무기간 동안 열심히 일하면 퇴직연금으로 노후를 보장 받을 수 있다는 근로
자와의 약속을 깨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퇴직연금에는 기업이 근로자에게 향후 받을 수 있는 일
정 금액의 연금을 보장해주는 DB형과 운용 수익에 따라 연금으로 받을 수 있는 돈이 달라지는 DC
형이 있다.
최근 미국에서 더 큰 문제를 야기하고 있는 제도는 DB형이다. DB형을 채택하고 있던 유나이티드
에어라인과 노스웨스트 등의 대형 항공사와 자동차부품업체 델파이는 최근 법원에 연금지급액
축소와 납부 유예 등을 요청했다.
기업경쟁력 저하로 회사 경영이 악화되자 과거 경영 실적이 좋았던 시기에 노조에 유리하게 체
결된 퇴직연금이 회사에 과도하게 부담으로 작용, 감당하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에서는 기업이 퇴직금을 보장해줘야 하는 DB형이 계속 줄고 있다. DB형 퇴직연금을 운
용하는 기업은 1985년 11만2200개사에서 올해는 2만9700개사로 73.5%가 급감했다.
미국의 경제 잡지 "포춘"이 선정하는 1000대 기업 가운데 2001∼2004년 사이에 DB형 퇴직연금을
폐지 또는 동결한 기업은 200개에 달한다. 휴렛팩커드와 IBM, 모토롤라 등도 신규 근로자에 대
해서는 DB형 퇴직연금을 설정하지 않는 등 DB형을 기피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DC형도 안전하지 않다
미국 정부도 DB형이 기업에 과도한 부담을 유발한다는 점을 인식, DC형 이른바 401k 퇴직연금
도입이나 전환을 유도하고 있다. 이 결과 DC형 퇴직연금은 1985년 910억달러에서 2005년에는 2조
달러로 22배 증가했다. 문제는 근로자 투자손실도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회계부정으로 파산한 엔론과 월드컴 등은 401k를 운용했는데 근로자들이 각각 10억달러씩 손실
을 입었고 미국 유통업체인 K마트도 근로자들에게 1억달러의 투자손실이 발생했다. 이들 세 기업
모두 근로자의 공격적인 자금 운용과 이에따른 실패 때문에 손실이 크게 발생한 것으로 분석됐
다.
종업원 지주제도(ESOP:갹출금 일부 또는 전부를 자사주 매입에 충당, 자사주로 연금을 지급하는
제도)를 도입한 폴라로이드도 파산보호 신청으로 근로자 1인당 10만∼20만달러의 손실을 입었다
.
문제는 기업이 파산했을 때 연금 지급을 보장해주는 연금지급보증공사(PBGC)도 기업들의 잇딴
퇴직연금 파산보호 신청으로 2000년 100억달러 흑자에서 2004년에는 230억달러 적자로 전환했다
는 점이다. 연금지급보증공사는 올해에도 적자가 30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PBGC가 부실화된 원인 중의 하나는 연금회계에 기업회계와 같은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연금 자산 및 부채 산정에 대해 일정 범위내에서 재량권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재
정이 부족한 연금을 재정이 양호한 연금으로 위장하기가 용이했다.
◆우리나라 퇴직연금은 안전할까
금감위는 미국과 국내 퇴직연금 제도를 비교한 결과 국내의 경우 기업의 퇴직연금 지급 부담이
일시금 형태로 미국보다 낮고 적립금 운용 규제도 엄격하기 때문에 퇴직연금 부실화 가능성이 낮
을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일단 국내 퇴직연금 제도 중 DB형은 미국과 달리 기업 부담이 제한돼 있다. 미국 DB형의 경우
기업이 근로자의 연금 지급까지 보장해야 한다. 그러나 국내의 경우 DB형을 도입해도 기업은 현
행 퇴직금 제도처럼 매년 30일분의 급여를 적립하면 의무를 다하는 것이 된다.
근로자가 퇴직 이후에 받는 연금은 기업이 적립한 자금을 개별 금융기관의 연금 상품에 가입해
근로자에게 제공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기업은 근로자 퇴직 때까지 적립 의무만 지고 금융회사가
연금 지급을 보장하게 된다.
다만 기업이 퇴직금을 회사내가 아니라 사외에 적립, 기업 파산시에도 근로자가 퇴직금을 받을
수 있도록 수급권을 강화했다는 점은 기존 퇴직금 제도와 크게 달라진 점이다.
아울러 DB형과 DC형 모두 주식 등 위험자산에 대한 투자한도에 제한을 두고 자사주 취득도 금지
해 투자 손실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다. 미국의 경우 운용 실패에 따라
퇴직연금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근로자가 운용을 책임져야 하는 DC형은 주식에 대한 직접 투자를 일체 금지하고 간접 투자만 허
용했고 기업이 운용을 책임지는 DB형은 주식 직접 투자 한도를 30%로 제한했다.
금감위는 아울러 향후 퇴직연금에서 발생할 수도 있는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연금 계리를 도입
하고 재정건선정 감독을 강화하는 한편, 미국처럼 기업 파산시 연금을 대신 지급해줄 수 있는 연
금지급보증 기관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권성희기자 shk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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