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1분 1초가 급한 상황. 신고를 받고 현장에 긴급 출동하던 소방대원들은 소방차 앞을 가로막는 퇴근길 차량 행렬에 절망했다. 사이렌을 크게 울리고 길을 비켜달라는 확성기 방송을 수시로 했지만 못 들은 척 버티고 선 차량이 대부분이었다. 힘겹게 정체를 뚫고 가는 소방차 행렬에 끼어드는 얌체 차량까지 있었다. 소방방재청 관계자는 "긴급 출동하는 줄 뻔히 알면서 신경질적으로 헤드라이트를 번쩍이거나 경음기를 울리는 게 대한민국 수준"이라고 말했다.
- ▲ 녁 퇴근길 차량으로 꽉 막힌 서울 신촌 연세대 앞 도로에서 차들이 길을 양보해주지 않자 119 앰뷸런스가 중앙선을 넘어 환자를 이송하고 있다. /이기원 기자
서울 관악구 강남고려병원 구급차 운전자 김종길(53)씨는 지난 3일 오후 8시 30분쯤 "내장이 타는 것 같다"며 복통을 호소하는 응급환자를 싣고 동작구 중앙대병원으로 향하다 진땀을 흘렸다. 평소 5분이면 충분한 거리지만 이날은 9분이나 걸렸다. 손님을 태우겠다고 갑자기 차로를 변경해 구급차 앞으로 끼어든 택시, 사이렌을 울리든 말든 휴대전화 통화를 하며 길을 비켜주지 않던 차량들 때문이었다.
경찰이 앞으로 이런 모습을 확 줄이겠다고 나섰다. 이르면 올해 말부터 소방차·구급차·혈액공급차 등 긴급 자동차에 길을 양보하지 않으면 차량 '소유주'에게 과태료를 물리기로 했다.
현행 도로교통법은 경찰관이 현장 단속을 통해 '운전자'에게 범칙금을 부과하도록 돼 있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았다. 운전자들도 이런 점을 알고 있어 양보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경찰 관계자는 "출동 중인 구급대원이나 소방대원들이 진로 방해 차량의 운전자를 확인해 신고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실제 단속 건수도 미미하다"고 말했다.
경찰청은 24일 '긴급 자동차에 대한 우선 통행' 등을 규정한 도로교통법 개정안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를 통과해 이르면 올해 연말부터 시행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개정안에 따르면 교통 단속 CC(폐쇄회로)TV나 소방차 등 긴급 자동차에 부착된 카메라에 촬영된 사진이나 동영상을 근거로 긴급 자동차에 길을 양보하지 않은 차량 소유주에게 과태료를 부과하게 된다. 과태료 금액은 승용차는 5만원 이상, 승합차는 6만원 이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개정안은 '골든타임(golden time)'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골든타임은 화재를 초동 진압하고 응급 환자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사고 발생 후 최초 4~6분을 말한다.
소방방재청 자료에 따르면 2009년 구급차가 현장에 도착한 평균 시간은 8분18초다. 골든타임 도달률은 32.8%에 불과했다. 구급대원들은 "심(心)정지나 호흡곤란 환자가 골든타임에 응급처치를 받을 경우 소생률이 80%까지 올라간다"며 "이번 조치로 생명을 지키는 골든타임을 지킬 수 있게 되기 바란다"고 말했다. 일선 소방관들은 "화재 발생 후 5분이 지나면 연소가 급속히 진행돼 건물 진입이 어렵게 되고 인명구조 기회도 날아간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