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현직 장관의 낯뜨거운 대선캠프行
노무현 정권 아래서 장관직을 개인의 권력욕을 채우기 위한 ‘징검다리’ 내지 경력 관리를 위한 ‘명함용’ 쯤으로 여기는 일이 또 벌어졌다. 이치범 환경부 장관이 31일 대통합민주신당 이해찬 경선후보를 지원하기 위해 장관직을 그만둔다고 밝혔다.
현직 장관의 특정 대선 주자 캠프 직행은 초유의 일, 그것도 정기국회 법정개회 직전일에 사의를 공식화한 것이다. 노 정권의 임기도 6개월을 채 남겨놓지 않은 시점이다. 후임 장관은 노 대통령의 지명과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취임하기까지 줄잡아 1개월이 소요돼 길어야 ‘5개월 장관’이다. 자신이 이끈 환경부는 물론, 공직사회 전반에 미칠 큰 부담을 알 만하면서 특정 대선주자 캠프에 합류하기 위해 장관직을 그만둔다니, 더 이상의 후안무치(厚顔無恥)도 없을 것이다.
그가 노 대통령으로부터 환경장관에 지명된 지난해 3월15일은 이 후보가 3·1절 골프 스캔들로 국무총리직에서 물러난 바로 그날이다. 두 사람의 기연이 아니라 정실(情實)이 얽힌 관계였다. 이 장관은 ‘환경’을 팔아 장관직에 이른 시민사회단체 출신으로 취임 직후 “지금까지 13년 환경과 관련된 일을 해왔지만 이전의 삶과는 무게가 다르다”고 말했었다. 하지만 그 말의 무게가 실은 얼마나 가벼운 것인지는 이번 처신이 여실히 보여준다. 이 후보는 개인적 인연에서 노 대통령에게 그를 추천했고, 이 장관은 그 추천에 대한 보은(報恩) 차원에서 경선 캠프에 참여한 셈이다. 장관직을 권력자의 사유물쯤으로 인식해온 노 정권 핵심들의 사유(思惟)체계로는 ‘코드인사’에 대한 보은인 만큼 하등 문제될 것 없다고 여길 듯싶다. 2004년 4월 총선과 지난해 5월 지방선거 때도 장관을 비롯한 숱한 고위공직자들을 선거판으로 내몬 노 대통령이지 않은가.
청와대는 ‘노심(盧心)’이 반영된 것이 아니냐는 의혹에 대해 ‘본인의 선택’이라고 말했다. 하루 앞서 이강철 대통령특보가 이 후보 등 친노 주자 지지를 선언한 만큼 그대로 믿기도 어렵지만, 설사 사실이라 해도 현직 장관에서 대선 캠프로 직행할 인물을 중용해왔다는 사실 역시 무책임 인사의 극명한 예가 아닐 수 없다.
기사 게재 일자 2007-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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