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北核회담 '첫 출전'하는 한국
합종연횡 예산되는 6者 …다음 회담 날짜잡으면 성공
▲ 박두식 논설위원
오는 27일부터 29일까지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6자회담의 성패(成敗)는 ‘6’이라는 숫자가 어떻게 구성되느냐에 달려있다. 6을 만드는 경우의 수는 여러가지가 있다. 미국과 북한이 주연이고 나머지 4개국이 조연이 되는 ‘2+4’도 있고, 북한을 뺀 5자가 한 목소리를 내는 ‘5대1’이 될 수도 있다.
가능성은 낮지만 과거 냉전시대처럼 한·미·일이 한편이 되고, 북한·중국·러시아가 다른 한편에 서는 ‘3대3’의 경우도 상정할 수 있다. 중국과 러시아가 뒤로 빠지고 한·미·일과 북한이 맞서는 ‘(1대3)+2’나, 6자가 각각 다른 6색(色)의 입장을 취하게 될지도 모른다.
미국이 원하는 최상의 시나리오는 ‘1대5’다. 이렇게만 되면 미국으로서는 일석이조다. 5자가 일제히 북한을 설득하다 성공하면 다행이고, 만약 그것이 여의치 않다고 해도 유엔 안보리 이관 같은 ‘다른 길’로의 전환이 한결 수월해지는 구도인 것이다. 반면, 북한은 미·북이 주연으로 등장하는 무대에, 나머지 4자가 들러리를 서는 형식의 ‘2+4’로 몰아가려 할 것이다.
북한은 그간 오직 미국하고만 대화하겠다고 고집해 왔고, 지금도 그 입장에는 별 변화가 없다. 거꾸로 미국은 북한과 단 둘이 만나는 양자회담은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미국이 북한과 직접 대면하길 극구 꺼리는 이유를 짐작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은 일이다. 북핵 위기의 책임과 부담을 홀로 지지는 않겠다는 계산이다. 북핵의 이해당사자라고 할 수 있는 한국과 일본·중국·러시아가 스스로 일정한 역할을 맡는 동시에, 훗날 예상되는 경제적 부담도 함께 나누자는 것이다.
이 같은 미·북 사이의 줄다리기 끝에 지난 4월 미·북·중국 사이의 3자회담을 거쳐 탄생한 것이 6자회담이다. 겉보기에 6자(者)가 똑같은 자격으로 참가한다고 해서 그 비중까지 똑같을 수는 없다. 6자회담의 운명을 결정지을 수 있는 것은 미국과 북한이다. 그런 점에서 나머지 4개국은 불균등한 배역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한국의 입장에서 이 같은 구도가 결코 바람직하거나 환영할 만한 것은 아니다. 특히 지난 세월 한반도 관련 ‘2+4’ 회담이 거론될 때마다 ‘2’에 해당하는 주역은 으레 남·북한이 맡는 것이고, 주변 4강이 조연급인 ‘4’의 역할을 한다고 믿어왔기에 더욱 그렇다. 그러나 이번 베이징 회담이 어떤 구도로 진행되든 한국의 주도적 역할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그렇다고 해서 ‘왜 우리가 들러리냐’며 화를 내거나, ‘미국이 알아서 하겠지’ 하는 식의 자조(自嘲)에 빠져들 필요는 없다. 북핵 문제를 푸는 외교적 틀로서의 6자회담은 이제 막 첫걸음을 내딛으려 하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을 직시하는 게 중요하다. 한국이 북핵관련 국제회담장에 입장하는 것 자체가 처음 있는 일이다. 그동안 북한의 반대에 막혀 한국은 회담장 주변을 맴돌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게다가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이런 유(類)의 회담에 한국이 꼭 들어가야 한다는 의지도 별로 없었다. 그나마 한국이 회담 테이블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미국이 고집을 부린 덕분이다. 첫 출전 무대인 만큼 괜한 무리를 할 필요가 없다. 어설픈 중재역을 자임하거나, 북한이 핵포기 약속을 하기도 전에 한국이 먼저 나서서 북한의 기대수준을 잔뜩 높여놓는 일은 삼가야 한다.
원래 다자(多者)회담은 모인 나라의 수(數)에 비례해 성공 확률이 낮아지게 마련이다. 자칫하면 ‘토크 쇼(talk show)’로 변질될 위험도 있다. 그런 만큼 눈높이를 낮춰잡는 게 현실적이다. 어쩌면 이번 만남은 다음 2차회담 날짜를 잡을 수만 있어도 대(大)성공일지 모른다. 6자가 회담을 계속할 필요를 느끼려면, 북한이 핵포기 문제에서 최소한의 움직임을 보여야 하며 한국의 외교력도 여기에 집중되어야 할 것이다.
(박두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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