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엔탈리즘>의 저자이며, 문명비평가인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 ; 미 컬럼비아대 석좌교수) 는 이집트의 주간 ‘알-아흐람’ (Al-Ahram Weekly online) 2002년 7월 11~17일자 594호 오피니언난에 ‘일방통행(One-way Street)’이란 제목의 칼럼을 기고했다.
사이드 교수는 이 칼럼에서, 특히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이 지난 6월 24일 발표한 중동평화안을 화두로 ‘무지와 망상’에 사로잡힌 미국의 대외정책에 통렬한 비판을 가했다. 부시의 6.24 중동평화안은 팔레스타인 정부의 개혁 및層돎括? 교체를 전제 조건으로 내거는 등 노골적인 내정 간섭과 이스라엘
편향성을 드러내, 국제사회로부터 질타를 받은 바 있다.
사이드 교수의 칼럼은 팔레스타인 문제를 둘러싼 복잡한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듯하다. 또 부시 및 부시 행정부에 대한 사이드 교수의 신랄한 평가도 관심을 끈다. 그의 칼럼 전문을 소개한다.<편집자>
지난 6월 24일 조지 부시가 중동 문제에 대해 행한 연설은 끔찍할 정도로 저급한 수준이었다. 그 수준을 감안하더라도 부시의 연설은 혼란스러운 생각, 인간이 실제로 생활하고 있는 현실 세계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말들, 그리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는 인종 차별적이면서도 넌덜머리가 나는 권고,
이스라엘인들이 전쟁과 평화의 모든 법칙을 위반한 채 침략과 정복을 되풀이하고 있는 엄연한 사실에 대한
믿기 어려울 만큼의 무지, 망상에 가까운 맹목이 마구잡이로 섞여 있는 놀라운 사례였다.
부시의 연설은 신의 권리를 침해하고 있는, 융통성 없고, 목이 뻣뻣하며, 무식하기 짝이 없는 심판관의
잘난 체 하는 말투로 포장되어 있었다. 이런 무지와 망상에 가까운 맹목이 미국의 외교 정책에 군림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날의 연설은 다른 사람이 아닌, 이기지도 못한 선거를 강탈해서 대통령이 된 바로 그 사람의
연설이었던 것이다. (이는 잊으면 안 될 중요한 점이다.) 또 각종 기록에도 나오듯, 자신이 주지사로
있던 텍사스를 최악의 오염과 망신스럽기 짝이 없는 부패로 물들였고, 투옥과 사형의 비율에서 세계
최고의 기록을 수립한 지역으로 만든 인물의 연설이기도 했다.
돈과 권력을 맹목적으로 추구하는 것 외에는 아무런 재능도 없는, 신뢰할 수 없는 이런 인간이 갖고
있는 '능력'이라고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전쟁범죄자 샤론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점에 대해 비판하는
대신, 정작 자신의 공허한 비난이 초래한 끔찍한 결과를 근거로 팔레스타인인들을 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조지 부시는 세계에서 가장 돈에 약한 세 명의 정치인들--콜린 파월 국무장관,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 곤돌리자 라이스 안보보좌관--을 양 옆에 서 있게 하고, 별 볼 것도 없는 웅변을 연습하는
학생처럼 더듬거리는 어투로 연설했다.
그리고 그 연설의 결과로 샤론이, 미국이 뒷받침하는 불법적인 군사 점령 하에서 더 많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살상할 수 있도록 허락했던 것이다.
부시의 연설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단지 그가 자신이 제안하고 있는 것의 역사적인 의미에 대해
무식하다는 점뿐만 아니라, 그것으로 말미암아 일어날 해악이 더욱 확장될 가능성이 아주 크다는 점이다.
그 연설은 마치 샤론이 원고를 써준 것처럼 느껴졌다. 그 원고에는 테러리즘에 대한 미국인들의 부적절한
강박관념, 테러리즘이라는 이름 아래 팔레스타인이라는 국가의 존재를 말살하고자 하는 샤론의 결의,
'이스라엘 땅(the land of Israel)'에서의 유대인 우선권이 하나로 융합해 있었다.
또 부시가 마지못해 '잠정적인(provisional)' 팔레스타인 국가--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잠정적인 임신(姙娠)이라는 말과 비슷할 터이다—를 용인했고, 팔레스타인인들의 삶의 고통을 덜어주겠다며
아무렇게나 말을 내뱉었지만 이날 새롭게 발표한 성명으로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야세르 아라파트가 이끄는 아랍 지도자들(열정에 관한 한)로부터 널리-- 좀더 코믹하게 표현하고
싶은데;긍정적인 반응이 나오리라고 장담했지만 말이다.
아랍 및 팔레스타인과 미국의 거래는 50년 이상 계속되었지만 끝내 쓰레기통에 처박은 것으로 끝났다.
이에 따라, 부시와 그의 참모들은 자신들이 신으로부터 테러리즘을 끝장내라는 사명을 부여 받았음을
스스로에게도, 유권자들에게도 확신 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그들이 말하는 ‘테러리즘’이래야 본질적으로
‘이스라엘에게 적대적인 모든 것’을 의미할 뿐이다.
지난 50여 년을 반추해보면, 아랍의 저항적인 태도나 순종적인 태도 그 어느 것도 중동 지역에서
미국이 취한 자국의 이익이라는 관념에는 아무런 변화도 이끌어내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신속하면서도
저렴한 석유의 공급과 이스라엘의 보호가 미국이 중동을 지배하는 정책의 두 가지 핵심인 것이다.
그러나, 압델 나세르(Abdel-Nasser, 이집트 초대 대통령 1956-70년 재임)부터
바샤르(Bashar, 시리아 대통령), 압둘라(Abdullah, 요르단 국왕),
무바라크(Mubarak, 이집트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아랍의 정책은 180도로 바뀌어 왔는데, 그
결과는 바뀌기 전과 비슷했다.
우선 아랍의 각 나라가 독립한 이후의 시기에는, 반둥회의와 나세르주의(Nasserism)의
반제국주의와 반냉전 철학에 영향을 받은 아랍의 반항적인 단결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1967년에
파멸적으로 끝나고 말았다.
그 이후, 사다트(Sadat, 나세르에 이어 이집트 대통령이 된 인물. 1970년부터 1981년
사망할 때까지 집권했으며 중동평화회의의 주역으로 1978년 이스라엘 베긴 총리와 함께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가 이끄는 이집트를 필두로 하여 방향 전환이 일어났는데, 그것은 미국이 카드의 99%를
장악하고 쥐락펴락하는 완전히 잘못된 규칙 아래 미국과 아랍 각국이 ‘협력’하는 것이었다.
1973년의 전쟁과 석유 금수 조치(제1차 석유파동)를 정점으로 점차 아랍 각국이 서로 다투는 ‘아랍
판 냉전 시대’가 됨으로써, 아랍 내부의 협력 형태로 남아 있던 것은 시들어 말라비틀어지고 말았다.
때로는 쿠웨이트와 레바논과 같은 약소국이 전쟁터가 되었다. 사실상, 아랍 국가 시스템에서 정부측 사고
방식은 미국을 아랍 정책의 핵심적인 사항으로 여기게 되었다.
첫 번째 걸프 전쟁(1991년 1월 17일부터 2월 28일까지 미국, 영국, 프랑스 등 33개
다국적군이 이라크를 상대로 이라크 ·쿠웨이트를 무대로 전개된 전쟁. 한국도 이 전쟁에 군 의료진과
수송기 등을 파견한 바 있다: 역자 주.)--곧 이어 두 번째 걸프 전쟁이 일어났다--그리고 냉전의
종식과 함께 미국은 유일 강대국이 되었다.
그러나 걸프전은 아랍 국가들이 근본적인 대미 정책 재검토를 촉진하게 하기보다는, 다양한 국가가 더
개별적으로 혹은 상호 관계로 미국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만들었다. 그 결과 미국의
반응은 이런 아랍의 태도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되었다.
아랍 정상회담은 신뢰할 만한 내용을 표명하는 곳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시시하기 짝이 없는 모멸감을
드러내는 곳이 되었다. 미국의 정책 당국자들은 이내 아랍의 지도자들이 전체 아랍 세계는 말할 것도
없고 자기 나라조차도 대표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랍의 지도자들은 미국과 체결한 여러
상호 협정이, 미국보다도 자신들의 정권 안정에 더욱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현대 세계에서 하나의 세력으로 고려해야 할 아랍 민중을 실질적으로 무력화하는 사소한 질투와 적개심을
언급하는 것은 그 다음 문제다. 이스라엘 점령에 따른 참상으로 신음하는 팔레스타인이 마치 자신이
이스라엘 사람인 것처럼 '아랍인'을 비난하는 것도 하등 놀라운 일이 아닌 것이다.
아랍세계는 1980년대 초반까지는 미국의 신뢰를 확실하게 하기 위한 방법으로, 이스라엘과 평화롭게
지낼 용의가 있었다. 예를 들면, 1982년의 페즈 계획(Fez Plan)은 이스라엘이 모든
점령지로부터 철수한다는 것을 전제로 이스라엘과 평화 조약을 맺을 것을 밝혔다.
2002년 3월 아랍 정상회담은 같은 장면을 재연했다. 하나의 우스개 연극과 같았다는 것을 덧붙여야
하겠지만 그 결과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아주 대수롭지 않은 것이었다.
팔레스타인에 대한 미국의 정책이 근본적으로 더 나쁜 방향으로 바뀌기 시작한 것은 정확히 20년
전부터다.
CIA의 고급 분석가였던 캐슬린 크리스티손(Kathleen Christison)이 미국의 격주간
<카운터 펀치>(2002년 5월 16일-31일호)에 발표했던 뛰어난 논문에서 지적했던 것처럼,
'평화를 옛 영토와 교환하는 처리방안(old land-for peace formula)’은 레이건
행정부에 의해 포기되었으며, 그후 클린턴 행정부에 의해 이 점은 좀더 명확해졌다. 역설적으로 그
시기는 일반적으로는 아랍의 정책이, 특수하게는 팔레스타인의 정책이 그들의 힘을 가능한 한 다방면에
걸쳐 미국을 회유하는 데 바쳤던 시기였다.
1988년 11월에는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가 공식적으로 '해방'을 포기했고,
팔레스타인국민평의회(PNC)의 ‘알제 회담’--나도 이 회담에 의원으로 참가한 바 있다--에서
이스라엘 ; 팔레스타인 두 국가의 분리와 공존을 위한 결의안이 채택되었다. 그해 12월, 아라파트는
공개적으로 테러리즘을 포기한다는 것을 밝혔고, 튀니스(튀니지의 수도, 당시 PLO의 근거지였음)에서
PLO와 미국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걸프전쟁 이후 출현하게 된 새로운 아랍의 질서는 미국과 아랍 사이의 일방통행을 제도화하게 되었다.
그 일방통행이란, 아랍 측이 양보하면, 미국은 이스라엘에게 더욱 더 많은 것을 양보하는 것이었다.
1991년 마드리드 회의는--횅뭣뵀맛?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미국이 팔레스타인을 승인하고 이것을
이스라엘에게 설득한다는 것을 전제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1991년 여름, PLO의 고위 인사들 그리고 독자 운동가 등과 함께 곧 열릴 마드리드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아라파트의 요청을 받아, 미국에게 요구해서 보증 받아야 할 일련의 안을 만든 바
있었다.
마드리드 회의는 --당시 우리들 가운데 아무도 몰랐던 것이지만-- 1993년의 오슬로 협정에 이르도록
되어 있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아라파트는 미국의 보증을 위해서 우리가 제안했던 것을 모두 거부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가
원했던 것은 단지 자신이 팔레스타인을 대표하는 주요한 협상 담당자로 남는 것이었다. 그 외의 어떤
것도 그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는 듯했다.
당시 하이다르 압델 샤피(Haidar Abdel-Shafi, 가자지구 출신의 의사로서 마드리드
회담에서 팔레스타인 측 대표)가 이끄는 요르단강 서안 및 가자 지구의 대표단이 워싱턴에서 강경한
이스라엘 측 대표와 얼굴을 맞대고 회담을 진행시키고 있었다. 그 이스라엘 측 대표는
샤미르(Shamir) 당시 이스라엘 총리로부터 “아무 것도 양보하지 말고 필요하다면 회담을 10년
연기해도 좋다”는 지시를 받고 있었던 것이다.
아라파트의 생각이란 팔레스타인의 어느 누구보다도 이스라엘이나 미국에게 더 많은 양보를 제안함으로써
계속 권좌에 남아 있겠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1967년 이후의 국제정세와 어우러지면서 팔레스타인과 미국의 역학관계를 지금까지 왜곡된 관계를
지속하게 만들었다. 오슬로 협정 시기, 그리고 오슬로 협정 이후 시기에 이르기까지…
내가 아는 한, 미국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혹은 다른 어떤 아랍 정권)에 대해서 민주적인 제도를
수립할 것을 요구한 적이 한번도 없었다. 오히려 정반대로, 클린턴과 고어(당시 미 부통령)는 가자
지구와 제리코(Jericho, 성경에 '여리고'라고 나오는 그 도시)를 각각 방문하는 동안 팔레스타인
안보 재판소를 승인하였으며, 어떤 경우에도 부패나 독점과 같은 것을 종식시켜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거의 강조하지 않았다.
나 자신은 1990년 중반 이후 아라파트 통치의 문제점에 대해 계속 글을 써왔다. 내가 말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것들 대부분은 나중에 옳았다는 것이 증명되었다)에 대해 중립적이거나 혹은 공개적인
경멸감을 드러내었던 것이다.
나는 실용주의와 현실주의적인 인식이 부족한 공상가로 비난을 받았다. 다른 아랍인들과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인과 미국인들 사이에,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그 상태로 내버려두는 데 대한 이해관계가
일치했음은 분명해 보였다.
그리고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이스라엘의 경찰로서 그리고 나중에는 이스라엘인들이 미워하는 모든 것을
한곳으로 끌어 모으는 구실을 함으로써 존속했던 것이다. 아라파트의 통치 아래에서는 이스라엘의 점령에
대한 심각한 저항운동은 발전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라파트는 무장집단, 팔레스타인해방기구의 다른 분파, 보안군이 시민들 삶의 풍경을 가로질러
날뛰는 것을 계속 허용했다. 부정한 돈 거래가 이루어졌고, 팔레스타인의 총 인구는 오슬로 협정
이전보다 50퍼센트 이상 감소했다.
인티파다(Intifada, 팔레스타인인의 민중봉기)가 모든 것을 변화시켰다. 샤론이 무대에 다시
등장하도록 길을 터 주었던 바라크 총리의 재임기간에 모든 것이 변화되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리고 여전히 아랍의 정책은 미국을 회유하는 것이었다. 이것을 드러내는 작은 기미는 미국에서 발표된
아랍의 담화에 나타난 변화다.
요르단의 압둘라 국왕은 미국의 텔레비전에서 이스라엘에 대한 비난을 완전히 중지해 버리고, '양측'이
'폭력'을 중단할 필요가 있음을 말하게 되었다. 이와 비슷한 언어를 다른 주요한 아랍 국가의
대변인들을 통해서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그 언어들은 팔레스타인을 불의가 바로잡아져야 할 땅이
아니라, 억제해야 할 성가신 곳이라는 것이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스라엘의 선전, 아랍인에 대한 미국의 멸시, 아랍 국가 및 팔레스타인이 자국민의
이익을 명확히 나타내고 대표할 능력의 결여이다. 이것들이 어우러져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대한 거대한
인간성 말살을 초래하고 있으며,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매일, 매시간, 그리고 매 순간마다 겪는 거대한
고통에 대해 아무런 중요성도 부여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테러리스트의 행동을 취할 때 말고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되고 말았다. 전세계
언론은 팔레스타인 위에 ‘테러리스트’라는 말로 거대한 장막을 씌워버렸다. 숨쉬며 살아가는, 감각을
지닌 인간, 그리고 실존하는 역사와 사회를 가진 팔레스타인인들은 그 장?아래에서 질식하고 있다.
이견이 제시되기도 하지만, 나는 근대 역사에서 이처럼 구조적으로 저질러진 인간성 말살의 예를 본 적이
없다.
마지막으로 내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이러한 인간성 말살 행위에서 드러나는 아랍과 팔레스타인의
‘동조’이다.(이적행위라고 하는 편이 더 낫겠다.)
언론에 등장하는 소수의 우리의 대표조차도 기껏해야 부시 연설이나 미첼(Mitchell) 계획의 장점에
대해 유창하게 무덤덤한 목소리로 떠들어대고 있지만, 정작 그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고통이나 역사, 그리고 실체를 대변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나는 계속해서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점령을 반대하는 대중적인 운동을 미국에서 일으킬 것을
강조해 왔다. 그러나 지금에 이르러서는 이러한 무시무시한, 마치 카프카의 작품을 연상시키는 이스라엘의
점령 아래에서는 그와 같은 일을 벌일 기회가 적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우리에게 한 가지 희망이 있다면--내가 팔레스타인 선거에 대해 쓴 논문에서 제안했던
것처럼;팔레스타인에 풀뿌리 민중을 바탕으로 한 제헌 의회 설립이다.
우리들은 오랫동안 이스라엘과 아랍 여러 나라의 정책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그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또한 얼마나 시급한 것인가를 적절하게 평가하지 못했다.
이제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독립적이면서도 근본적인 길을 스스로 열어나가는 것이다. 그것은
정통성, 그리고 현존했던 것보다 더 나은 국가 형태의 가능성을 창출할 수 있도록 자율적인 절차를
수립하는 시도이다.
지금까지 발표되었던 모든 개각(改閣)이나 선거 일정은, 오슬로 협정의 파편과 잔해를 가지고 벌이는
우습기 그지없는 게임일 따름이다. 아라파트나 그의 의회가 민주주의를 추진하는 것은 깨어진 유리
조각으로 다시 유리잔을 짜 맞추려고 시도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2주전에 이브라힘 다카크(Ibrahim Dakkak, 1929년생으로 건축가이자
작가, 정치평론가로서 여러 팔레스타인 기관과 단체의 설립에 관여하였다), 무스타파
바르구티(Mustafa Barghouthi, 인권운동을 펼치는 의사로서 비정부기구인 팔레스타인
의료구호위원회의 대표), 하이다르 압델 샤피가 새로운 ‘팔레스타인 민족
이니셔티브’(Palestinian National Initiative)를 창설하여 이런 요구에 대해
즉각적으로 응답했다.
이 기구는 PLO, 하마스(Hamas)와 같은 그룹처럼 미국과 이스라엘의 ‘선의’(내 생각으로는
어이가 없는데)에 의존하는 것으로는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는 반성 속에서 생겨난 것이다.
‘팔레스타인 민족 이니셔티브’는 정의를 바탕으로 한 평화와 공존, 그리고 ‘민중을 위한 세속적인 사회
민주주의’라는 팔레스타인 역사상 유일무이한 비전을 제공하고 있다.
시민 사회에 뿌리를 내린 독립적인 조직, 이적 행위나 부패로 더럽혀지지 않은 단체는 팔레스타인인들이
필요로 하고 있는 새로운 정통성에 대한 밑그림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팔레스타인에게는 아라파트가 집적거리며 놀 초보적인 법이 아니라, 참된 헌법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
진정한 대의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그것은 오로지 팔레스타인 사람들만이 제헌 의회를 통해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이것만이 아랍 세계의 많은 부분을 더럽혀 온 인간성 말살 행위를 뒤집어 놓을 수 있는
긍정적인 행보인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고통의 심연에 빠진 채 이스라엘의 집단적인 형벌이라는 무시무시한
시련을 계속 견뎌야 할 것이다. 그것을 방지할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집단적인 정치적 자립뿐이다.
우리는 지금 그럴 능력이 충분하다.
콜린 파월의 ‘선의’와 '온건주의’는 환상일 뿐이다. 그것은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다. 결코.
<에드워드 사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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