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공직자 비리 처벌 `솜방망이` [연합]
추석 전 공직기강 감찰 실효성 의문 추석 연휴를 앞두고 정부와 지자체가 최근 잇따라 '뇌물 수수' 단속 등 공직기강 감찰에 착수했지만 정작 비리 공직자에 대한 법원 처벌은 대부분 미미한 수준에 그쳐 감찰의 실효성이 의문시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법원 판결을 분석해보면 수차례 뇌물을 요구하는 등 죄질이 나쁘다고 판단하면서도 공직에 오래 근무한 점, 이미 사회적 명예가 실추된 점 등을 '정상 참작' 사유로 삼아 형의 집행을 미룬 사례가 많았고 심지어 선고 자체를 유예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18일 각급 법원에 따르면 서울남부지법은 2004년 납품계약 업체로부터 32차례에 걸쳐 1억5천여만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등)로 기소된 국민건강보험공단 전 지사장 정모씨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법원은 "국가공무원에 준하는 지위인 공단의 고위간부로서 범행이 장기간이고 수십 회에 이르는 등 아무런 죄의식이나 거리낌 없이 이뤄진 점, 뇌물 요구가 노골적으로 이뤄진 점 등에 비춰 무거운 처벌이 불가피하다"면서도 "장기간 성실히 근무했고 잘못을 뉘우치고 있다"는 점을 들어 집유를 선고했다.
대구고법은 2001년 업체 대표로부터 사업정보 및 편의 제공 대가로 570여만의 금품과 향응을 받은 공무원 서모씨를 징역 8월에 처하고, 사업시행 편의를 봐 준 대가로 업체로부터 250여만원의 금품과 향응을 받은 박모씨를 자격정지 1년에 처했지만 각각 '정상 참작'을 이유로 선고를 유예했다.
피고인이 10년 이상 아무런 대과 없이 성실하게 공직을 수행한 점과 수수한 뇌물 액수와 전달 경위, 전과가 없고 잘못을 뉘우치는 점 등 여러 정상을 참작해 선처했다는 게 재판부의 설명이었다.
선고유예는 일정 기간 형 선고 효과를 중단시킨 뒤 그 기간이 지나면 유ㆍ무죄를 판단하지 않고 소송을 종결하는 '면소(免訴)' 처리된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어서 '면죄부'와 가깝다.
제주지법은 관변단체 간부에게 '촌지'를 요구해 2천만원을 받아 업무추진비로 사용한 전 도지사 측근 고모씨에게 지난해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먼저 뇌물을 요구해 죄질이 좋지 않다"면서도 개인적으로 챙긴 돈은 거의 없고 구체적으로 업무집행에 부정이 없었으며 공무원으로 오래 성실히 근무한 점 등을 집유의 이유로 내세웠다.
서울서부지법은 지난해 식품업계 관련단체 관계자로부터 200만원을 받고 제약업계 관계자로부터 아들 축의금으로 100만원을 받은 전 서울지방식약청장 장모씨에게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면서 초범인 점, 직무상 불법행위가 없었다는 점 등을 선처 사유로 꼽았다.
범행이 관행에 따라 이뤄졌다는 이유 등으로 관용의 잣대를 들이댄 사례도 있었다.
서울고법은 1999년 공금으로 비자금 7억여원을 조성해 국회의원 명절 '떡값' 등으로 쓰고 업무 외 용도에 쓴 혐의(특가법상 뇌물)로 기소된 전 축협회장 명모씨에게 범행이 관행에 따라 이뤄졌고 나이가 많다는 점을 참작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던 것이다.
공무원의 수뢰는 국민과 국가에 미치는 악영향이 심각한데도 관용의 근거로 삼기에는 설득력이 약한 장기 근무와 사회적 명예 실추 등을 이유로 선처하는 재판 관행은 잘못됐다는 지적이 법원 안팎에서 제기되고 있다.
뇌물죄의 법정형(法定刑)은 뇌물 가액이 1억원 이상인 때 무기 또는 10년 이상 징역이, 5천만원 이상인 때 7년 이상 징역이 가능할 만큼 엄중한데도 막상 재판에서는 사회적 비난 등 '비공식 제재'를 받았다는 이유로 관대하게 처벌한다면 법정형의 존재 가치가 없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서울고법의 한 판사는 "뇌물수수의 경우 직무에 관해 부당한 이익을 취한다는 인식이 있으면 청탁 성사 여부와 관계없이 고의성이 인정되기 때문에 구체적 청탁이 확인되지 않았다거나 업무 집행에 불법행위가 없다는 점 등을 이유로 관대하게 처벌하는 관행은 개선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고 지적했다.
재야 법조계 관계자는 "감사원이나 지자체에서 매년 추석 등 명절을 앞두고 감찰을 정례적으로 실시해 비리 연루자를 적발하고 있으나 대부분 법원에서 솜방망이 처벌을 받고 풀려나 공직사회의 고질적인 비리 관행이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있다"며 감찰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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