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추연 > 금융보험비리 > 은행직원 시청직원 자녀 생일까지 챙겨

경기지역 모 지자체 시금고에서 근무하다 퇴직한 ○○은행 전 간부 김모씨(50). 그의 낡은 업무 수첩에는 시청 간부들의 생일과 결혼기념일 등이 빼곡히 적혀 있다. 김씨는 “시금고에 근무하는 동안 가장 중요한 업무는 은행 일이 아니라 시청 직원들을 관리하며 적당히 로비하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시금고를 맡고 있는 금융기관들의 ‘시금고 지키기’가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 담당 부서를 두고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있을 뿐 아니라 필요하면 시금고에 로비 전담 직원을 파견하기도 한다. 관리 대상은 시청내 말단 직원부터 고위 간부에 이르기까지 폭 넓다. 이들은 시청 직원의 경조사, 생일, 결혼기념일은 물론 자녀 생일까지 일일이 챙긴다. 꽃에서 케이크에 이르기까지 적당한 선물을 보낸다. 시청 직원들이 회식하는 날이면 경비 일부를 내놓기도 한다.

시청 간부들은 청사내에 있는 시금고를 개인 사무실처럼 이용하기도 한다. 조용히 만날 사람이 있거나 쉬고 싶을 때면 으레 이곳을 찾는다. 신분증 사본 등 몇가지 간단한 서류만 제출하면 몇천만원 정도는 곧바로 대출받을 수 있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시금고 은행들의 이런 전방위적 로비는 시금고 운영 재계약을 앞두고 더욱 극성을 부린다. 특혜 의혹이나 문제를 제기하는 움직임이 확인되면 사전 차단에 나선다. 해외 외유를 나가는 지방의원들이 있으면 직원을 현지로 보내 향응 제공 및 골프 접대 등 귀국하는 비행기에 오를 때까지 이른바 ‘24시간 풀 서비스’를 하고 몰래 돌아온다.

어느 금융기관 간부는 “일부 은행은 007 작전을 방불케 하는 ‘맨투맨 식’ 로비를 공공연히 한다”며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것이 업계의 관행”이라고 말했다. 지자체 시금고를 운영하는 경기도 소재 은행의 한 직원은 “이렇게 안하면 시금고 운영상 차질은 물론이고 2년 주기로 반복되는 시금고 재계약때도 갖가지 어려움을 겪는다”고 귀띔했다. 일선 지자체는 “수천억원을 맡기고 관리하도록 한다는 점을 볼 때 우리는 ‘절대 우량고객’”이라며 이런 대접을 받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다.

금융기관의 입장에서 한 건만 잘 하면 안정적인 재원을 확보해 수신액을 크게 올릴 수 있어 금고유치에 혈안이 돼있다. 대외신인도(BIS비율 등) 역시 올라간다. ‘행정기관 금고를 맡고 있다’는 대표 금융기관의 위상을 다지는 상징적 가치도 크다.

광역자치단체의 경우 일반회계만 따져도 조 단위 이상의 금액을 유치할 수 있다. 2004년 전북도금고가 된 농협 전북지역본부는 금고 이전 수신액이 3조3천억원이었으나 5조원으로 껑충 뛰었다.

치열한 금고유치경쟁에 따른 후유증도 되풀이되고 있다. 탈락한 금융기관은 ‘평가 불공정성’을 주장하며 재선정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기 일쑤다. 2004년 전북도금고에 탈락한 전북은행 노조와 임직원, 은행원 가족 등 1,000여명이 항의집회를 벌인 반면 2년 뒤인 이달에는 완주군금고에 탈락한 농협이 재선정을 촉구하며 반발하고 있다. 농협은 16일 완주군 금고 탈락과 관련, 전주완주지부장과 완주군청 출장소장을 전격 대기발령조치한 데 이어 17일에는 법원에 금고계약금지가처분신청을 접수했다.

〈강홍균·최인진기자 [email protected]〉 723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