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부담 금리 최고 56~60% 광고엔 최저금리만 표시 소비자들 골탕먹기 일쑤
＃1. 서양인 가족 7명이 둘러앉은 근사한 식탁. 아들은 독립 자금 5000만원을 빌렸다며 가족들에게 ‘○○캐피탈 프라임론(loan·대출)’을 외친다. 이 광고는 최저 연 6.5%라는 것을 강조하며 끝난다. 최고 금리는 아주 유심히 봐야 보일 정도로 조그맣게 표시된다. 연 49.9%다. 취급 수수료(최고 3.5%)를 감안하면 최고 연 57.4%다.
#2. 직장인 박모씨는 최근 ‘최저 연 9.9%’라고 굵게 적힌 한 할부금융사 광고지를 받아 들고 대출 문의 전화를 걸었다. 대출 문의를 한 지 1시간 만에 콜센터에서 “2000만원 대출 승인이 떨어졌다”는 전화가 걸려 왔지만 금리 수준을 듣고 대출을 포기해버렸다. 연 39.9%라는 것이다. 광고에서 강조한 최저 금리 9.9%의 4배 수준이다.
◆제2금융권, 대부업체와 금리 역전?
요즘 대부업체(옛 사채를 양성화한 고금리 대출업체)의 살인적 고금리가 화제지만 캐피탈회사(할부금융사)나 저축은행 등 제도권 금융기관도 대부업체 뺨친다. 〈표 참조〉
대부업체는 허가가 필요 없이 각 시·도에 등록만 하면 되고 금융감독원 감독도 받지 않아 금융기관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반면 캐피탈사·저축은행은 금감원 허가를 받아 설립되고 감독도 받아야 하는 제도권 금융기관이다. 따라서 캐피탈사나 저축은행 금리가 대부업체보다 더 낮겠거니 생각하지만 현실은 딴판이다. 최근에는 오히려 대부업체 금리를 웃도는 현상까지 나타났다.
최근 대부업체 A사가 최고 금리를 연 54.75%로 낮춘다고 발표했는데, 이는 위에 예를 든 두 금융회사보다 낮은 것이다. 요즘 공정위의 불공정 광고 조사, 국세청 세무조사 착수 등 관련 당국의 집중 포화를 받고 있는 대부업계의 자구책인 셈이다.
고금리는 저축은행(옛 상호신용금고)도 마찬가지다. 3~5% 가량의 취급수수료까지 선이자로 환산하면 솔로몬저축은행의 경우 최고 58.8%, 보해저축은행의 경우 최고 59.7%의 이자를 받는다는 계산이 나온다.
박종규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부실 위험이나 조달비용이 낮은 제도권 금융기관이 대부업체보다 금리가 낮아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라며 “은행에서 돈을 빌리지 못하는 서민들이 완충지대 없이 바로 고금리 대출로 향해야 하는 상황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최저 금리로 소비자 호도”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이들 금융회사들이 최저 금리만 부각시켜 광고함으로써 금리가 높지 않다는 착시(錯視)현상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이다.
하지만 최저 금리로 대출받을 수 있는 사람은 물론 극소수다. 최근 A캐피탈사 사장이 “우리 회사 대출 상품에 내가 받을 수 있는 대출금리를 뽑아 봤더니 최저 금리보다 1.7%포인트 높게 나오더라”고 실토할 정도다.
숨겨진 이자라고 할 수 있는 취급수수료 또한 착시현상의 원인이다. 업계에서는 취급수수료가 인터넷 대출 광고나 대출 모집책에게 돌아가는 비용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영업비용을 소비자에게 부담시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최저 금리가 아닌 대출 평균 금리를 공시(公示)하도록 하고, 수수료 또한 이자로 간주해 소비자가 실제로 부담해야 하는 대출비용을 명시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금융연구원 정찬우 연구위원). 금융감독원도 이 같은 문제점을 인식해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김준현 금융감독원 여전감독실장은 “지난달부터 캐피탈사의 대출상품 광고시 최고 금리도 표시하도록 하고, 금리가 차등 적용된다는 내용을 명시하도록 지도하고 있다”면서 “앞으로 감독을 더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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