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꽃지해수욕장, 3분의 1이 자갈밭으로
인천 서포리해수욕장, 소나무숲까지 유실
옹벽·모래채취가 원인… 생태계 파괴 불러



[조선일보 최형석 기자]

26일 충남 태안군 안면도에 위치한 꽃지해수욕장. 길이 3.2㎞ 너비 300ｍ의 백사장 중 3분의 1 정도가 붉은빛 암반과 자갈들로 뒤덮여 있었다. 모래밭이 아니라 자갈밭 같았다. 가족과 함께 휴가왔다는 회사원 이준혁(26)씨는 “모래찜질은커녕 아이가 뛰어놀지도 못할 정도”라며 고개를 저었다.

해수욕장 부근에서 횟집을 운영하는 김동민(37)씨는 “20여년 전만 해도 백사장에 발이 푹푹 빠져 걸어다니지도 못했다”며 “모래채취가 대량으로 이뤄지고 백사장 뒤로 옹벽이 세워지면서 3~4년 전부터 백사장이 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전국 해안선에서 백사장이 사라지고 있다. 백사장 유실은 해안침식으로 발전돼 결국 연안 생태계의 파괴뿐 아니라 국토면적 상실까지 우려된다. 전문가들은 모래채취뿐 아니라 옹벽·방파제 등 ‘난개발’이 원인이라며 근본적인 대책을 촉구하고 있다.


■해안 침식도 일어나


인천 옹진군 덕적면의 서포리 해수욕장에선 지난해 2월 방풍림으로 조성한 수백 그루 소나무숲 가운데 대여섯 그루가 모래 유실 때문에 뿌리째 뽑혀나갔다. 옹진군이 6월에 모래 1만4760㎥를 부어 보강했지만 유실이 멈추지 않아 밑빠진 독에 물붓는 꼴이다.


백사장 유실은 해안침식으로까지 발전한다. 안목항의 방파제로 인해 백사장이 훼손된 강릉시 남항진 해안은 2003년 태풍으로 인근 부대 철책선까지 붕괴됐다. 관동대학교 토목환경학부 김규한 교수는 “백사장은 높은 파도를 완충하는 기능이 있기 때문에 백사장이 없어지면 연안 침식이 빈발한다”고 말했다.


보다 직접적인 개발행위로 발생하는 피해도 있다. CF 및 영화의 배경으로 자주 촬영된 충남 태안군 원북면 신두리의 유명한 모래언덕(사구·해안 백사장 배후의 모래언덕)의 경우 1999년 개발이 시작된 이래 2년 만에 100여만평의 면적 중 30여만평만 남았고 나머지 지역은 펜션 및 위락시설 등에 의해 점령당했다. 2001년 뒤늦게 천연기념물로 지정됐지만 훼손된 부분을 되돌리기 어려운 상태다.






■주변 어획량도 감소


연안 모래 유실은 수산물 어획량에도 영향을 미친다. 모래가 사라지면 모래안에 서식하는 동물성 플랑크톤이 줄어들어 먹이사슬이 무너질 뿐 아니라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는 회유성 어종들도 자취를 감추고 모래를 산란터로 삼는 꽃게 및 패류들도 서식처를 잃게 된다. 안면수협 백사장위판장의 자료에 따르면 작년 동기 대비 올해 6개월간 꽃게 어획량이 4979㎏에서 1380㎏까지 줄었다. 백조기도 1ｔ에서 200㎏까지 어획량이 감소했다. 박종두 위판소장은 “우리뿐만 아니라 인근 위판장들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인하대 해양과학과 한경남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1993년부터 2001년까지 총1억3500만㎥의 바닷모래가 채취된 덕적도 부근의 경우 바닷모래 채취 이전까지의 수산물 연평균 어획량은 1545ｔ이었으나 바닷모래 채취 이후 412ｔ으로 어획량이 무려 74% 감소했다. 특히 피조개 등 패류의 경우 바닷모래 채취 이전엔 연평균 어획량이 3250㎏ 정도였으나 모래 채취 이후엔 1㎏도 못잡고 있다.


모래는 표면에 서식하는 박테리아를 이용한 수질정화 기능도 수행한다. 따라서 백사장 유실이 많이 된 지역은 다른 지역에 비해 해양오염이 쉽게 이뤄진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인공구조물이 주요 원인


꽃지 해수욕장의 경우 1995년 건설된 백사장 뒤 공원 옹벽이 높은 반사파도를 일으켜 모래 유실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30여㎞ 떨어진 천수만 방조제 등 하구둑은 토사유입을 막아 이 일대 백사장의 숨통을 끊었다.


바닷모래 채취도 백사장 유실의 원인이다. 옹진군 앞바다에서는 1984년부터 2003년까지 해마다 220만~1916만㎥씩 모두 2억2090만㎥의 바닷모래를 퍼냈다. 이는 15ｔ 트럭 2209만대 분량이다.


그렇다고 건설골재의 주요 재료가 되는 모래를 채취하지 않을 수도 없는 상황이다. 2005년 전체 모래 채취 계획량 3000만㎥ 중 바다모래가 차지하는 비중은 70%인 2100만㎥.


■해결방안 쉽지 않아


환경단체 등이 정부에 건의하고 있는 해결방안은 ▲모래채취지역 안식년제 도입 ▲모래 수입 ▲모래 포집기(울타리) 설치 ▲재활용 모래 사용 ▲환경영향평가법 강화 등이다.


속초시는 290여억원을 들여 영랑동 해안에 ‘헤드랜드(headland)’라는 시설을 설치 중이다. 버섯모양의 콘크리트 구조물인 헤드랜드는 방파제와 같이 해안으로부터 나와 있어 해안선 모래유실을 막고 높은 파도를 상쇄시킨다.


그러나 근본적인 대책은 되지 못하고 있다. 해양연구원의 진재율 박사는 “지역고유의 해안선 구조 등을 알아야 효율적인 해결책을 낼 수 있는데 아직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라며 “섣부른 조치는 비용만 허비하고 더 심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해결이 쉽지 않음을 밝혔다.




(태안=최형석기자 [블로그 바로가기 cogito.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