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지방자치단체가 서민들을 돕기 위해 마련한 생활안정기금 대부분이 은행금고 안에서 낮잠을 자고 있다. 생활안정기금제도는 1990년대 중반부터 시·군·구가 서민들의 대학생 자녀 등록금 납부나 소규모 사업창업 지원 등을 위해 2천만원 한도에서 대출할 수 있도록 마련됐다. 하지만 기초생활수급자들에게 보증인을 엄격히 요구하는 등 대출조건도 까다롭고 이율도 높은 곳이 많아 서민들의 외면을 받아온 지 오래다.


인천 서구는 2000~05년에 단 1건의 대출실적도 없었다. 인천 동구는 2000년부터 현재까지 대출실적이 모두 6건에 불과하며 대출금은 고작 9천5백만원이다. 남은 기금은 17억원대에 이른다. 40억여원의 기금이 조성된 광주시내 5개 자치구에서는 2004년 6억6천여원(47건), 2005년 4억4천여만원(40건)의 대출실적만 있을 뿐이다. 올해는 단 1건 5백만원 지원에 그치고 있다.


대구 중구도 2004년과 2005년엔 각각 1건(2천만원, 1천만원)을 빌려준데 그쳤다. 그나마 올해는 아직 1건의 대출도 없는 실정이다.


이처럼 생활안정기금이 유명무실해진 것은 서민의 처지를 고려하지 않은 대출조건 탓이라는 지적이 많다.


강원 화천군의 기금 대출금리는 5%로 2~3%대인 다른 지자체보다 이율이 월등히 높다. 화천읍 주민 ㅈ씨(54)는 “사정이 딱한 촌사람들을 상대로 ‘돈놀이’를 하고 있는 셈”이라고 꼬집었다.


‘세대주 2명’을 보증인으로 세워야 하는 것도 과도한 규정이라는 눈총을 받고 있다. 김모씨(48·대구 중구)는 “길거리 좌판이라도 꾸려보려고 기금을 빌리려다 포기했다”면서 “2만원 이상 재산세를 내는 보증인 2명을 데리고 오라는 것은 우리같은 사람에게 상당한 부담”이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2년 거치 2~4년 상환’ ‘B학점 이상 대학생’ ‘성적 30%이내 고교생’ 등 비현실적이고 서민생활과 무관한 대출조건을 내세우기도 한다.


충남대생 1년 ㄱ씨(20·대전 중구)는 “첫 등록금을 꾸려고 했으나 3학년 때부터 갚아야한다는 조건 때문에 그만 뒀다”면서 “저소득층을 위해 마련한 기금이 너무 야박하게 운용돼 마음의 상처만 얻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인천 서구 관계자는 “체납건수가 많고 기금 규모도 크지않아 엄격하게 운용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며 “건교부등에서 운영하는 다른 지원자금등을 통해 더 쉽게 조달할 수 있는 것도 기금이 주목받지 못한 요인”이라고 말했다.


광주대 정상양 교수(사회복지학)는 “제도가 유명무실하다는 사실을 공직자들이 잘 알면서도 적극적으로 고치려하지 않고 있다”면서 “법규에 얽매여 대출조건만 따지지 말고 신청자의 자활의지를 보고 혜택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배명재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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