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는 없지만 농사가 `천직’임을 믿고 자신의 모든 인생을 쏟은 한 농업 경영인이 모든 것을 잃은 채 퇴출될 위기에 처했다. 전업농을 육성하겠다며 정책적으로 지원했던 농림부도, 농업기반공사도, 농협중앙회도 현실의 벽 앞에 쓰러진 농민을 외면했다.
농업경영인으로 무안군 현경면 현화리에서 20년 넘게 농사를 지어온 최길동(46)씨. 그가 농업기반공사로부터 땅 구입 자금으로 지원받은 영농규모화자금의 연체이자와 원금의 일부를 값지 못하면서 28일 그의 논은 경매에 넘어갔다. 1억1000만원의 영농자금 중 갚고 남은 원금과 연체이자를 포함해 4000여 만원이 현재 갚아야 할 총금액.
최씨는 농업기반공사 담당자를 찾아다니며 “돈을 갚을 수 있으니 상환날짜를 조금만 연기해 달라”고 사정했지만 “당장 갚아야 할 할부금과 연체이자 등 1900여 만원이 없으면 규정대로 땅을 경매에 부치겠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농업기반공사로선 작은 손해도 감수하지 않겠다는 것이지만 최씨의 입장에선 농업인으로서 그의 인생과 삶의 터전이 통째로 날아가는 것이었다.
최씨는 28일 “농업을 살리겠다는 농업기반공사가 죽어가는 농민을 살리는 것보다 돈장사에 혈안이 돼 있다”며 절규했다. 당초 `지원’이라는 명목으로 가져다 쓴 지원금이 최씨의 발목을 잡은 꼴이다.
농업에 인생을 바친 아버지와 그 아버지를 따라 평생 농업을 가업으로 잇겠다고 결심하고 농업을 전공으로 공부하고 있는 세자녀들도 함께 울었다.
전남대 응용식물학부에서 화훼학을 공부하는 첫째 딸 최길순(21)씨, 6년간 농사를 짓는다는 조건으로 국비지원을 받고 농업전문학교에 다니고 있는 둘째아들 최길권(19)씨, 오빠처럼 공부하기 위해 이번에 농업전문학교 수시에 합격하고 입학을 기다리고 있는 막내딸 최순미(17)양. 하지만 이젠 농업을 가업으로 잇겠다는 미래의 꿈마저 접어야 될 형편이다. 6년 동안 농사를 짓는다는 약속을 못지키면 그 동안 지원받은 3년동안의 학비와 이자까지 갚아야 한다.
이들 가족들이 분노하고 절망하는 이유는 이들의 불행이 단지 한 가족의 불행이 아니라 이 나라 농업정책 실패의 결과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농촌을 살린답시고 정부에선 저리의 이자로 영농자금을 지원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농민들은 원금보다 연체이자 값기에 허덕이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 농업경영인으로 꿈을 키우던 최씨가 현재의 상황에 이르게 된 과정은 대부분의 농업경영인들이 겪었거나 겪고 있는 과정이다.
“싼 이자로 혜택을 준다고 해도 연체이자 때문에 농민들 숨이 막힌다. 3% 저리로 빌린 돈이라지만 3년간 연체이자가 1000만원에 이른다. 대부분의 농사꾼들이 제 때에 돈을 갚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농민들은 공사 배만 불려주고 있는 셈이다.”
최씨는 농림부, 농협중앙회, 농업기반공사에 대한 배신감과 불신을 이야기했다.
“점점 도태되어 가고 있는 농업경영인을 살리고자 하는 노력과 방안은 너무 미흡하고 원금 회수에만 집착하는 농업기반공사는 사채업자보다 더 무섭게 보인다”고 막내 딸 순미양은 말했다. 이들 가족들은 경매가 시작된 28일 `마지막’이란 심정으로 광산구에 있는 농업기반공사 전남도본부를 찾았다.
농업기반공사 전남도본부는 “좋은 조건으로 돈을 빌려갔고 당초 약속된 상환일로부터 3년이나 지났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며 “다른 해결 방안이 있는지 찾아보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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