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쌀 요구, '한미합작' 명분쌓기?
이해영 교수 "2백억짜리 쌀지키고 8천억 쇠고기 내주는 꼴"
한미FTA협상이 막바지에 이른 가운데 미국이 돌연 ‘쌀’협상 카드를 내밀었다. 한미FTA 농업분야 고위급 협상 마지막 날인 지난 22일 협상 수석대표인 민동석 농림부 차관보는 정부 과천청사에서 브리핑을 통해 “고위급 협상에서 쌀 문제가 공식 논의되지는 않았으나 크라우더 USTR 수석협상관이 다음 주 양국 장관급 협상 대상에 쌀도 포함할 것이라고 밝혔다”고 전했다.
이날 브리핑에서 민 차관보는 “미국의 쌀 언급이 협상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이냐”는 질문에 “그렇지 않을 것”이라면서 “의도가 무엇인지는 미국 측에 물어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미국 측은 웬디 커틀러 수석대표가 지난달 “쌀시장 접근은 미국의 높은 우선순위에 있다”고 밝힌 바 있지만 그동안의 협상에서 쌀 문제를 공식 언급한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하지만 미국 측이 이처럼 ‘쌀’카드를 전면에 내세운 것은 협상을 위한 ‘다목적 카드’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에 더해 한미FTA 협상의 불합리함을 감추려는 우리나라 정부와 미국 측의 ‘쇼’가 아니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 한신대학교 국제관계학부 이해영 교수는 "오히려 우리 정부를 탓해야 한다"고 잘라 말했다. 이 교수는 “예컨대 협상을 시작하면서 선결과제로 쌀을 제외했으면 문제가 달라지는데, 지금 미국이 쌀 협상을 하자고 이야기하는 것은 불법적인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결국 미국 측의 의도는 액수로 2백억 규모인 쌀을 내세워 8천억 규모인 쇠고기 등과 나아가 자동차와 같은 품목의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미국 측의 협상우위를 위한 다목적 카드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서진교 연구원 역시 “미국이 쌀을 통해 얻는 경제적 이득은 크지 않다”고 말하고 “미국이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농업분야인 쇠고기와 오렌지 협상에서 우리 측의 양보를 얻어내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고 말했다.
서 연구원은 또 “쌀을 건드림으로써 우리 측의 섬유 관계 즉시철폐요구 등에 대한 방어용 무기기로 사용할 수 있지 않겠냐”고 반문했다.
한미FTA 농축수산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도 성명서를 통해 “미국의 ‘쌀시장 개방 카드’는 협상타결을 위한 한미 공동합작 쇼에 불과하다”고 비난했다.
비대위는 “한국 정부가 무역구제, 쇠고기를 비롯한 거의 모든 부분에서 막무가내로 내주기만 하면서도 끝까지 ‘쌀만큼은 협상 대상이 아님을 미국에 홍보했다’며 자존심을 세웠지만, 미국은 한국 정부의 마지막 남은 체면조차 구기고 있는 것”이라며 “이는 한국 정부의 협상력이 얼마나 부재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자, 미국이 한국 정부와 협상단을 얼마나 우습게보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처사다”고 밝혔다.
비대위는 이어 “미국이 기다렸다는 듯이 협상 막바지에 ‘쌀 카드’를 꺼낸 의도는 미국은 ‘쌀만은 내줬지 않느냐’는 명분을 쌓고, 일방적으로 내주기만 했다는 국민적 비판에 처한 한국정부에게는 ‘쌀을 지키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다’는 명분을 주어 한미 양국이 원만하게 협상을 타결하기 위한 쇼에 불과하다”고 혹평했다.
이를 뒷받침 하듯 일부 국회의원은 ‘쌀’만은 내주면 안 된다는 조건부 찬성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통합신당모임의 양형일 의원은 “쌀 시장 문제는 아예 협상의 대상이 될 수가 없음을 협상단도 처음부터 알고 있듯이 개방은 절대 있을 수는 없다”면서 “FTA의 문제는 그 후에 개인적 의견을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전국농민회총연맹 이영수 정책국장은 “미국 측의 쌀 협상 카드는 3가지의 이유가 존재한다”면서
▲쌀을 이용해서 쇠고기와 자동차 등을 얻겠다는 빅딜의 가능성
▲한국정부의 FTA 협상의 명분 쌓기의 가능성
▲미국의 행정부 등이 협상과정에서 굉장한 구속을 받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정말로 미국이 쌀 시장의 개방을 원하고 있다는 가능성 등을 제시했다.
이와 함께 이 국장은 “우리정부의 상식은 이미 국민들의 일반 수준을 넘어섰다”면서 “결국 미국의 쌀 협상은 농업부문에 한정된 것이 아닌 FTA의 전체품목과 협상전반을 노린 꼼수가 아니겠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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