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추연 > 농어촌비리 > 막도장 하나로 60억 ‘주물럭’

ⓒ시사저널 안희태농림해양수산위원회의 농협에 대한 국정감사(왼쪽)에서 농협 직원이 국정원 돈 1백20억원을 횡령한 사건이 화제에 올랐다.

<시사저널>이 특종 보도했던 ‘농협 직원 국가정보원 돈 1백20억원 횡령 사건’(<시사저널> 제870·871·879호 참조)에 대한 금융감독원(금감원)의 최종 보고서가 나왔다.금감원이 한나라당 김정훈 의원에게 제출한 것을 <시사저널>이 입수했다.이 사건과 관련해 농협 본부가 별도로 조사하거나 작성한 것이 없기 때문에 금감원 보고서는 이 사건과 관련한 관련 기관의 유일한 조사 내용이다. 보고서에는 비정상적 예금 입·출금, 금융실명제 위반, 내부 통제 해이 등 이 사건을 계기로 드러난 농협의 여러 문제점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대형 금융기관에서 돈 관리가 이렇게 허술하게 이루어졌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을 정도로 난맥상을 보여주고 있어 농협을 개혁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을 싣고 있다.금감원 최종 보고서는 그동안 <시사저널>이 보도한 것과 기본 내용이 거의 같다. 금감원은 농협 면목역지점에서 대형 금융 사고가 터졌다는 보고를 받은 직후인 지난 5월18일부터 6월23일까지 25일간 농협중앙회와 면목역지점을 대상으로 검사를 실시했다.금감원은 이 사건과 관련해 지금까지 서울지역본부장 등 농협 임직원 46명에 대해 주의·견책·감봉·면직 등의 조처를 취한 것으로 밝혀졌다.또 농협 면목역지점 및 장한평역지점에 대해서는 정기예금을 신규로 취급하는 것을 3개월 동안 금지하는 조처를 내렸다. 금감원 보고서에 따르면 이 사건의 주범인 전 농협 직원 지 아무개씨는 2000년 10월4일부터 2005년 5월30일까지 4년7개월간이나 돈을 빼돌린 것으로 드러났다.농협 직원이었던 최 아무개씨와 공모해 38차례에 걸쳐 국가정보원(국정원)이 맡긴 정기예금 1천2백55억원을 부당하게 해지·인출해 이 가운데 1백20억원을 횡령했다. 이 과정에서 지씨는 영업점장의 승인을 받지 않고 마음대로 외부 장소에서 돈을 입·출금했다.금감원 보고서는 ‘지씨가 면목역지점에서 퇴직(2005년 6월30일)한 이후에도 17차례에 걸쳐 5백10억원의 예금을 신규로 개설하거나 출금했다’라고 기록했다.퇴직 직원이 거액을 마음대로 주무르는 동안 농협은 물론 국정원도 이상 징후를 감지하지 못했다. ⓒ시사저널 안희태이 사건을 최초 보도한 <시사저널>을 들고 질의하는 민주당 신중식 의원. 지난 10월26일 국정감사에서 농협 관계자는 “기관의 특수성으로 인해 접근이 용이하지 않았으며, 신분이 노출되는 것을 꺼렸기 때문에 지씨 이외에는 접근이 힘들었다.(국정원이) 신규로 계좌를 개설하거나 해지할 때도 지씨에게 전화로 처리했기 때문에 그를 통해 거래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답변했다. 지씨는 대담하게도 주식 등에 투자한 돈은 회수하기가 어렵게 되자 사용하지 않은 예금 통장 25개를 무단으로 반출해 있지도 않은 돈이 있는 것처럼 예금 잔액을 위조한 통장을 국정원에 건넸다.통장과 도장을 지씨가 관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금융실명제도 소용이 없었다.국정원 돈은 동진○○, 자유○○, 국가○○ 따위 세 개 차명으로 농협에 들어 있었다.금융실명제법을 위반한 것이다.지씨는 또 중도에 해지한 자금을 관리하기 위해 별도 계좌도 만들었다.그는 빼돌린 돈을 상환할 시기가 되면 만기가 되지 않은 다른 계좌를 해지해 돌려 막곤 했다.이처럼 느닷없는 거액의 중도 해지가 10회 이상 이루어졌지만, 농협 본부나 지점은 문제점을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심지어 2000년 10월에는 통장도 없이 막도장으로 60억원을 불법 인출한 적도 있다.지씨는 재판에서 “특수기관 예금이고 실명이 공개되는 것을 꺼려했기 때문에 차명으로 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말했다. 금감원 “농협 본부 감시 체계에 심각한 문제”

ⓒ시사저널 안희태이 사건을 최초 보도한 을 들고 질의하는 민주당 신중식 의원.

금감원은 보고서에서 ‘거액 예금을 중도에 해지하는 일이 2~3개월마다 반복되었지만, 상시 감사를 효율적으로 운영하지 않음에 따라 농협 본부에서 비정상적 거래를 장기간 발견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했다’라고 분석했다.농협 본부의 감사 체계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이 사건은 이번 국정감사에서 뜨거운 쟁점이 되었다.먼저 정무위원회에서는 한나라당 김정훈 의원이 농협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국정원이 횡령당한 돈의 성격이 무엇인지를 집중적으로 캐물었다.김의원은 지난 10월20일 정무위 국감에 증인으로 출석한 정용근 농협중앙회 신용대표이사에게 “지씨가 횡령한 돈이 국정원 비자금이 아니냐”라고 질의했다.정대표는 “돈의 성격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라고 답변했다.정대표와 함께 이날 증인으로 신청된 지씨는 ‘진행 중인 재판에 영향을 줄 수 있다’라는 이유를 들어 출석하지 않았다.김의원은 “횡령당한 돈이 상조회 기금이라는 국정원측의 해명이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돈의 성격이 무엇인가는 사건이 알려진 초기부터 주목되었으나, 금감원 최종 보고서에도 이와 관련한 대목은 한 줄도 없다.그러나 “국정원 직원들이 월급에서 일정액을 떼내 경조사 등에 쓰기 위해 만든 상조회 기금이다”라는 국정원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의구심이 사라지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다. 우선 농협 면목역지점에 개설되어 있던 10여 개의 국정원 계좌는 모두 3개월 단위 정기예금이었다.많을 때는 4백억원까지 잔고가 올라갔고, 평균 잔액이 3백억원이었다.상조회 기금이라면 소액이 수시로 입·출금되어야 할 텐데 그런 흔적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굳이 30억원, 60억원, 80억원 식으로 돈을 쪼개 예금한 이유도 의문이다. 자금관리 담당자가 바뀌면서 국정원이 ‘국정원 돈’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도 단순한 ‘상조회 기금’이 아닐 가능성에 무게를 높이는 대목이다.지씨가 국정원 상조회인 ‘양우공제회’가 있는 서울 강남 ○○회관이 아닌 내곡동 국정원으로 가서 입·출금 행정을 처리했다는 것도 주목된다.하지만 이 돈의 실체는 국정원이 밝히지 않는 한 영원히 미궁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농림해양수산위 국감에서도 이 사건은 화제에 올랐다.지난 10월26일 농협 본부에서 열린 농림해양수산위원회 국감에서 민주당 신중식 의원과 한나라당 김재경 의원 등은 “농협이 보관하고 있는 이 사건과 관련한 통장 입·출금 명세서를 제출하라”고 채근했으나, 농협 관계자는 “금융실명제법에 의해 명의인의 서면 요구나 동의 없이는 거래 내용에 관한 정보나 자료를 제공할 수 없다”라고 답했다. 신의원은 “이런 엄청난 사건이 터졌다는 것은 농협 내부의 기강이 한참 해이해져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라고 말했다.신의원에 따르면 농협에서는 2004년에 19건, 14억6천3백만원의 금융 사고가 발생했다.고객 예금을 횡령하거나 국고를 횡령한 사건들이다.2005년에는 16건에 9억7천4백만원으로 약간 줄었다.

한나라당 김정훈 의원은 “농협이 이 사건을 계기 삼아 제대로 섰으면 한다.농협은 언론이 보도하기 전까지 한 달 이상 사건을 공개하지 않았는데, 앞으로 이런 행태가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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