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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라고 다 같은 친일파가 아니다
이번 친일파 주제는 '누가누가 친일을 했으니 다 함께 돌을 던지자'는 식의 흑백 논리 접근법이 아니라, '누가누가 친일을 했는데 도대체 왜 그랬대?' 라는 식의 접근을 하려고 합니다.
한국에 친일파가 생기게 된 원인은 제국주의입니다. 당시 전세계에 만연해 있던 제국주의에 물든 일본은 조선을 발판으로 대륙을 향한 팽창 정책을 폅니다. 조선을 대륙 침략을 위한 '기지'로 만들어 더 많은 사람을 죽이고 더 강력한 국가를 건설하겠다는… 뭐 그런 것이었죠. (당시 일본이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죽였는지 정확한 의도는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1937년 일제의 중국 남경 대학살의 한 장면. 당시 일제는 약 6주간 "하늘에서 비가 아닌 피가 쏟아져 내릴 정도"로 많은 양민을 학살함.
문제는 이런 일본의 목적에 협력한 조선인들, 즉 친일파의 수가 적지 않다는 점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가장 단순한 친일의 원인, 사리사욕
인간 심리의 가장 원초적 관점에서 보자면, 대부분 자기 한 몸, 혹은 가족의 안위를 보전하고 더 행복한 삶을 누리기 위함이었을 겁니다. 이른바 사리사욕을 위한 친일이었죠.
동물 생태학적으로 볼 때, 위험을 피하고 행복한 환경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 본능입니다. 당시엔 친일만 하면 당장 돈이 생기고 먹을 게 풍족해지고 온몸이 편안해지는 상황이니 그 쪽으로 넘어가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을 겁니다. 먹을 게 보이면 집어 먹고, 졸리면 자고, 마려우면 화장실 가고… 다 같은 행동 패턴입니다. 자연스럽긴 하지만 단순해서 재미 없죠
송병준. 자기 행복 추구에 가장 열심이었던 대표적 친일파. 낭인 신분에서 백작의 자리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물로 사리사욕 추구에도 뛰어난 재능이 있어야 함을 보여줌.
단순하긴 하지만, 사적 이익에 의한 친일은 모든 친일파에게 적용되는 원인입니다. 그 사적 이익이 재물이든, 가족의 안위든, 정치적 명분이든, 학문적/예술적 성취든, 친일을 했다는 것은 결국 개인의 이익을 다른 것보다 중시했다는 증거였습니다
정치적 명분에 의한 친일
우리의 흥미를 끄는 이들은 단순한 본능에 지배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인 사람들입니다. 좀 복잡한 이유로 친일을 하게 된 사람들이죠.
(놀랍게도) 이완용이 이런 '복잡한' 친일파의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이완용은 굉장히 절제된 삶을 살았던 사람입니다. 먹을 게 보이면 집어 먹고, 졸리면 자고, 마려우면 화장실 가고… 이렇게 단순하게 행동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주색잡기를 멀리하고 독서와 서예에 심취했으며, 하루도 빠짐없이 노부모 문안을 드리고, 평생 한 여성과 백년해로 했으며, 죽을 때까지 자신의 임금에 충성을 바친, 유교주의 전통에 입각해 극도로 모범적인 삶을 산 인물이었습니다.
이완용. 우리에겐 친일파, 매국노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지만, 실은 유교적 관점에서 '모범적'인 삶을 살았던 인물. 그는 조선의 왕실과 조신 민중의 안위를 보장 받는다는 명분으로 친일을 했으며, 이런 명분과 신념을 끝까지 버리지 않음.
근데 왜 친일을?
이완용은 당시 일제에 나라를 넘겨 주는 것만이 '자신의 주군을 지키는 유일한 길'이라 믿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조선은 수백 년간 이어져 온 왕권 국가입니다. 국가의 모든 권력은 왕으로부터 나오며 신하는 왕에게 충성하는 것이 조선의 가장 뿌리깊은 법도였죠.
일제는 당시 조선의 왕이었던 고종에게 갖은 협박과 회유와 거짓 약속을 들려주며 조선의 국권을 자신들에게 넘기게 했습니다. 그리곤 나머지 신하들에게 '왕의 명령이니 친일파가 되라'고 강요했죠. 물론 그전 이미 친일의 길에 들어선 신하들도 있었지만요.
이렇게 일제는 조선의 왕권을 '합법적으로' 해체한 뒤 조선 민중의 저항을 최소화하고 조선을 안정적으로 지배한다는 계산이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조선 대다수의 지배 계층이 친일로 빠진 가장 극명한 명분이었습니다. (명분이라기보다 변명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조선에 대한 절망에 의한 친일
친일의 원인이 된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는 조선의 '문명화 되지 못한' 모습이었습니다. 당시 조선은 문명화 된 서양과 일본에 비해 참혹하리만큼 문물이 뒤 처진 상태였습니다.
당시 외국인 서기관이었던 알렌을 포함한 주미 공사관원 11명이 배를 타고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떠났을 때, 알렌은 당시의 상황을, 즉 미국인이 바라본 조선인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그렸습니다.
"…모두가 참을 수 없을 만큼 불결하다. 더욱이 그들은 대변을 볼 때 변기에 앉는 대신 서서 볼 것을 고집하여 항상 변소를 더럽히고… 연신 담배를 피우는 데다가 목욕을 하지 않음으로써 몸에서 나는 냄새와 담배 냄새들이 뒤섞여 그들의 방에서는 계속 악취가 풍긴다…"
당시 조선의 고급 관리였던 이들도 이런 모습이었을진대, 일반인은 어느 정도 수준이었을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아무튼, 당시 서양과 일본의 선진 문물을 접한 지식인들은 엄청난 충격을 받습니다.
홍영식은, "나는 눈이 부시는 광명 세계 속에 갔다 온 것 같다"고 말했고, 민영익은, "나는 암흑세계에서 태어나 광명세계에 갔다가 또 다시 암흑 세계로 돌아왔다…"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이런 문물의 차이를 접한 지식인의 상당수는 상대적으로 지독히 낙후된 조국에 절망감을 느꼈습니다. 이런 감정은 조선 인민에 대한 멸시와 열등감으로까지 이어졌고요.
이들은 대부분 처음엔 '조국의 문명화'를 위해 먼저 조선 민중들을 깨우쳐야 한다며 자력 자강 운동에 나섭니다. 그러나 이들이 가슴 깊이 품고 있던 '조선은 안돼'라는 식의 감정적 편견과 열등감은 끝내 한계를 보이고 맙니다. (이런 감정은 1차 세계대전 당시 강대국 사이에 퍼져 있던 '사회진화론'에 논리적 기반을 두고 있기도 합니다.)
조선과 제국주의 국가들 사이에 어마어마하게 벌어진 문명과 국력의 차이에 혼란을 겪다가 결국, '뜻대로 안 될 바에는 일본에 흡수돼 선진국 감투라도 써 보자'는 심정으로 바뀐 것입니다.
식민지 시절 가장 유명했던 지식인 윤치호. 그는 조국이 강해져 비열한 제국주의 국가들로부터 더 이상 모욕과 멸시를 받지 않기를 바랐다. 그러나, 계속된 실패와 좌절 끝에 윤치호는 차라리 '조선이 일본과 함께 선진국이 되어야 한다'며 변절한다.
이광수 같은 지식인의 경우 처음부터 일본의 문물에 대한 선망이 뿌리 깊었습니다. 그래서 친일을 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죠. 그러나 윤치호의 경우 선진국에 대한 선망과 조국에 대한 절망감이 누구보다 심했음에도 일제의 비도덕적이고 악랄한 의도에 지속적으로 저항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도 일본의 집요한 탄압과 회유, 그리고 '사회 진화론'과 '대동아 공영'이라는 대의명분에 넘어가고 말죠.
학문적 예술적 성취를 위해 친일을 한 경우
조선말 가장 촉망 받는 지식인 중 하나였던 최남선. 지긋지긋한 곤궁과 옥살이 끝에 변절을 한 그는 일제 말기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친일을 했던 사람입니다. 최남선은 해방 후 반위특위에 의해 수감된 후 이런 말을 남깁니다.
"내가 변절한 대목, 즉 왕년에 신변의 핍박한 사정이 지조냐 학식이냐의 양자 중 하나를 골라 잡아야 하게 된 때에 대중은 나에게 지조를 붙잡아라 하거늘 나는 그 뜻을 휘뿌리고 학업을 붙잡으면서 다른 것을 버렸다."
말인 즉, 자신은 학문을 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친일을 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최남선은 친일을 하는 와중에도 지속적으로 한글과 조선 문화, 역사에 대한 연구를 했습니다.)
이는 조선이 낳은 당대 세계 제일의 예술가, 최승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최남선과 마찬가지로 최승희는 일제의 '대동아 공영' 따위의 정치 선전과 대의명분에 아무 관심이 없었습니다
조선이 낳은 세계적 무용가, 최승희. 100년에 한번쯤 나올 이 위대한 천재 예술인은 춤을 계속 하고 싶어 친일을 했고, 그 결과 비극적인 말년을 맞는다.
하지만 최승희는 처음 미국 공연을 갔을 당시 돈이 없어 엄청난 고생을 했다고 합니다. 이때 조국의 빈궁함과 힘없음에 뼈저린 실망을 했고, 결국 최승희는 자신이 계속 예술 활동을 하기 위해선 일제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공연 수익금을 국방헌금으로 쾌척하고 130여 차례 일본군 위문 공연을 하는 등 친일에 나서죠. 이때 최승희에게 일본은 사실상의 조국이었습니다.
당신도 '친일파'가 될 수 있다?
당시 친일파엔 '나쁜 놈'들만 있었던 건 아니었습니다. 물론 이해할 가치도 없는 짐승 수준의 진짜 '나쁜 놈'도 많았습니다만, 당시 일제의 침략이 아니었다면 사회적 존경을 받으며 조국에 이바지할 위인들도 존재했습니다.
친일파는 일면 개개인의 범죄의 문제가 아니라 제국주의 시대가 낳은 비극일 수도 있습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윤치호 일기]의 서두엔 친일파를 시대 상황에 기반해 비판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그 동안의 친일파 연구는 거의 대부분 누가 친일파이고 그의 친일 행적이 무엇인지 조사 정리해 대중에게 알리는 수준에 머물러 왔다… 더 이상 친일파 문제를 윤리적 관점에서 비난하는 것, 다시 말해서 당대 최고의 엘리트나 경제인이 사리사욕이 눈이 어두워 양심과 지조를 버리고 민족을 배신했다는 투의 시각은 역사 연구의 올바른 태도는 아닌 것 같다… 어차피 그런 인간들은 어느 시대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다 있게 마련이다… 엘리트든 경제인이든 자발적으로 친일하게 되는 시대 상황과 사상적 근거를 확인해서 역사적 맥락에서 비판해야 한다. 아울러 친일의 시기, 강도, 조건, 논리 등을 기준으로 친일파들을 범주화 할 필요가 있다."
이곳에서 제공되는 심리 테스트는 일제 시대에 살았던 사람 중 "어떤 기질을 가진 사람이 더 쉽게 친일을 했는지" 알려주는 일종의 '가능성 측정'입니다.
이번 심리 테스트는 위와 같이 4가지 성향을 가리게 됩니다. 자신의 성향이 지조 있는 독립투사형일지, 기회주의적 변절자일지…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심리 테스트 하러 가기 ▶
그러나, 친일은 개개인의 기질만큼이나 상황이 중요하게 작용하는 문제입니다. 테스트 결과 친일하기 쉬운 기질로 나왔더라도 주어진 상황에 따라 당시의 실제 행동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반대로 친일파가 될 가능성이 적은 기질이더라도 상황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친일을 할 수도 있고요.
특히, 일제 식민지 당시 친일의 '기회'가 주어진 것은 대부분 극소수의 사회 지배층, 부자, 명망 높은 지식인이었다는 점을 인지하셔야 합니다. 절대 다수의 조선 민중들은 일제에게 오직 착취의 대상이었지, 일본 제국주의의 '조력자'로 간주되지 않았습니다
( 덧글수 : 142개 ) 덧글 달기
[ 220.120.58.185 ] 2005-08-20
이런저런 각도에서의 접근은 상당히 흥미롭고 재밌었습니다만,
그래도 결론은 '짱나는 시키들'이네요.
친일 행위는 어떤 이유에서건 용납이 안됩니다.
그래도 재미는 있었습니다...^^;;
허나, 한참 가치관이 형성되어가는 청소년들이나 형성 전의 어린이들이 이 글을 어떻게 바라볼것인가?...
라는 걱정이 앞서네요.
나 청소년기때를 생각하면...내 청소년기에 이런 글을 읽었다면...?
이라는 의구심+안도감을 왕창왕창 일으키는 내용이었습니다.
[ 221.133.169.135 ] 2005-08-18
최승희 구지 친일은 아니지만 민족의식이 없는 개인주의적 사고 방식을 지닌 사람 같네요. 8.15 날 기모
노 코스프례 하는 일빠 들 처럼 말입니다.
[ 221.133.169.135 ] 2005-08-18
당신이 만약 일제시대에 태어났다면 현실을 보라는둥 사정타령 하면서 자기살길 찾아서 친일도 마다치 안
았을거 같은데요. 어쩌면 반민족 행위에 더 앞장 섰을지도 모르죠. 미국으로 가는 것은 어디 쉬운일 입니
까. 미국은 이승만 박사나 사업가 후원이 있는 사람들이 가는 곳이죠. 만주 독립군 지금말 처럼 쉽게 ‰榮?br>
면 한국인들 다 만주가서 무력으로 독립했을 겁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자
기 먹고 살기 바쁘죠. 애국지사를 응원하기도 하겠지만 마음속으로만 입니다. 정말 완강한 사람이 아니라
면 목에 칼좀 들이대면 다 불게 되 있죠. 뭐 당신은 안 그럴거 같습니까. 이건 친일파를 옹호하려는 글이
아니라 친일파가 매우 많으며 자기자신도 예외는 아니라는 소리였습니다. 우리는 이런점을 빨리 깨우쳐
야 합니다. 만주나 미국으로 망명간 사람 빼고 일본에 협력하지 안은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다. 아뭐 지
가 자진 매국에 앞장서서 설치는 거 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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