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지금 열린우리당 당원이며 서포터즈지만, 한 때 민주당 골수였고 지금도 민주당을 사랑하며, 연민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걸어오신 많은 인사들, 그 중 특히 DJ를 사랑합니다. 그는 지극히 퇴폐적 낭만주의자였던 저를, 제 시각을, 제 인생을 완전히 뒤흔든 몇 사람 중의 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를 많이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물론 그의 단점을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돈도 좋아하고, 우리가 지탄하는 독재정권하의 정치인들과 다름없이, 아니 오히려 더 많은 검은 정치자금을 운영하기도 했습니다. 또 측근들과 자녀의 비리에서도 전직 대통령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어, 그를 믿고 따랐던 젊은이들 가슴을 아프게 하고, 실망을 안겨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그를 비난하고 뒤돌아 서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목숨걸고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싸웠고, 그 덕분에 이 땅에는 그가 원했고, 이 땅의 많은 민주인사들이 원했던, '참민주주의'의 정부가 들어섰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제 DJ는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 이 나라의 큰 어른으로서 '통일과 세계평화'라는 대명제에 대해 고뇌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의 재임시 펼친 '햇볕정책'에 대해 일부에서는 ‘퍼주기’니 ‘대가성’이니 하면서 그 의미를 폄하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남북정상회담’과 ‘한반도의 평화정착‘ 그리고 ‘노벨평화상’은 시간이 지날수록 역사 속에서 높이 평가될 것입니다. 또한 그런 그가 한화갑도, 권노갑도, 박상천도 아닌 ‘국민 경선’에 의해 탄생한 ‘노무현 후보’을 지지했고, 이제 그 ‘노무현’이 당당하게 이 나라 정부의 수장, 대통령이 되어 그의 뒷모습은 역사 속에서 더욱 더 빛나고 있습니다.
만약 DJ가 개인적인 욕심만 앞세웠다면 '권노갑'이나 '한화갑'을 앞세웠을 겁니다. 그렇게 되었다면 국민들에게 비난은 받겠지만 DJ 개인의 노후는 아주 편했을 겁니다. 같은 호남 출신에 DJ 자신을 신처럼 모셨을 것이고, 또한 정권재창출은 어려웠을지 몰라도 DJ는 여전히 호남 공천권을 가지고 민주당을 좌지우지할 수 있으며, 호남의 유일한 ‘정치대부’로 남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DJ는 당시 많은 호남 출신 정치인들의 원성을 거두절미하고, 민주경선을 채택, 노무현 후보를 당선시켰습니다. 광주전남은 또 그 마음을 잘 헤아리기라도 하듯 열렬히 노무현 후보를 지지했으며, 그 마음은 온 나라로 퍼져 정권은 재창출되었고 노무현 후보는 당당하게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왜 DJ가 이런 선택을 하였을까요? 또 정계에서 물러난 후 지금까지 현 정치상황에 대해 더 이상 코멘트하지 않았을까요? 아무리 국민의식이 바뀌었다 하더라도 지금 현재까지의 정치 상황으로는, DJ의 영향력이 매우 크다고 판단되어 집니다. 왜냐하면 참여정부가 들어서기까지 민주당과 호남이 큰 역할을 해냈고, 그 참여정부가 수구세력들에 의해 아직까지 자리잡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상황에서 만약 DJ가 민주당 의원들 말처럼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섭섭하다’라든지 ‘분당은 절대 안된다’고 한마디 한다면 떠났던 대부분의 열린우리당의원들은 다시 민주당으로 복귀했을 거라는 판단입니다. 아니 노무현 대통령도 열린우리당 지지를 망설였으리라는 판단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DJ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DJ가 모르는 걸까요? 아니면 더 이상 정치에 관여하기 싫어서? 절대로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지금 그는 침묵으로 개혁과 변화와 민중을 지지하였습니다. "천만의 말씀이라고요?" "절대로 그렇지 않다고요?" 그렇다면 어쩌면 당신은 DJ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DJ는 미래의 대한민국을 걱정하고 예견할 수 있는 대한민국의 몇 안되는 귀한 선각자중의 한사람입니다. 해서 애써 얻은 민주화를 잃게되는 국가위기상황이 오면, 만약 그런 상황이라면, 사심 없이 해야 할 이야기를 하는 분입니다. 또 그것이 앞으로 자신의 소임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DJ가 후계자를 키우지 않았던 것은 당신들 세대 이후에는 더 이상 계보, 금권, 지역에 얽매인 구태정치가 이 땅 대한민국을 흔들면 안된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당신은 독재와 맞서느라 어쩔 수 없이 피를 묻혀 손을 더럽히기도 했고, 검은 정치자금을 받아야 했으며, 수구언론이나 재벌과 타협해야 했고 반민주세력에 대한 청산 없이 지나와야 했지만 앞으로 대한민국의 21세기는 새롭게, 새 사람에 의해, 새 방식으로 이끌어져야 한다는 것을, 그렇지 않으면 우리 대한민국은 세계사에 영원히 정치후진국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는 판단을 했을 겁니다.
해서 사자가 새끼들을 절벽 아래로 떨어뜨려 살아남은 새끼만을 자식으로 인정하듯 DJ 역시 차기 대통령 후보에 대해 자신들이 가진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게 한 후, '국민경선'을 도입, 국민들로 하여금 자생력 있는 후보, 경쟁력 있는 후보를 선택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한화갑, 김옥두, 최재승, 설훈 등등 동교동 계보들에 대한 보상은 그 정도면 족하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20년 동안 어려움을 같이한 대가로 개인의 역량과 관계없이 어쨌든 DJ라는 이름을 업고 DJ덕에 그 좋다는 국회의원을 두세 번씩 했으니 말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자기 입장에서 판단하고, 변호하고, 편리한대로 말을 한다지만 지금 하늘나라에서 백범, 장준하, 문익환님은 오늘 우리 모습을 두고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실까요? 전태일, 이한열, 박종철님들이 어떤 표정을 짓고 계실까 자문해 봅니다. 저는 그 분들이야말로 "온 마음을 다해 이 참여정부를 지지하고 온 마음으로 이 정부가 잘 뿌리내리고 수구들의 세찬 비바람에도 끄떡없이 흔들리지 않고 든든하게 뿌리내려 이 땅 민주주의의 큰 물줄기가 되어 주길 간절히 원하리라는 답을 내렸습니다.
지금도 민주당에 남은 동교동 구주류 의원 및 당직자들은 노무현 대통령에게 "호남을 배신" 했다며 "죽 쒀서 개줬다" 라는 심한 말까지 서슴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노대통령이 DJ와 함께 오랜 기간 민주화 운동을 하지 않았으며 자신들보다 DJ와 가깝지 않고, 호남 출신이 아닌데다가 민주당의 분당의 중심에 그가 있었다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큰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인지? 대통령이라는 직책의 이 나라 최고권자가 개인의 능력과 관계없이 그저 같이 한 세월만으로 선택되어지는 것일까요? 공이 더 큰 사람, 기여도가 큰 사람 순으로 대통령이 되야 한다면, 만약 그런 식으로 대통령후보를 뽑아야 한다면, 그들은 여기서도 순위에서 밀려납니다. 왜냐하면 이인제나 JP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그들은 DJ가 대통령이 되는데 가장 큰 공을 올린 사람들로 이 나라 대한민국의 정권교체 성공에 기여한 일등공신들 아닙니까?
그런데 지난 대선 무렵, 아니 지금까지도 이인제나 JP에 대해 동교동 구주류들이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그들을 어떻게 판단하고 있나요? 또 그 잣대로 정치인을 판단해본다면 도대체 누가 배신자고 누가 의리를 지킨 자들이며, 어떤 것이 신의고 어떤 것이 대의란 말입니까? 자신들에 대한 잣대는 느슨하고 타인에 대한 잣대는 너무나 엄격한, 시쳇말로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입니까?
문득 이런 생각을 하면서 저는 때때로 심한 환멸을 느낍니다. 왜냐하면 자신들이 왜 좀 더 현명하지 못해 민주당 대표주자가 되지 못했는가, 앞으로 차기 대선에는 내가 나가야겠다고 자성하고 준비하는 정치인은 아무도 없고 대부분 왜 나보다 학벌도, DJ와의 친분도, 정치경력도 미미한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가 하는 불만만을 터트리고 있는 분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바로 그 점 때문에 그들이 2인자가 되지 못했고, 후계자가 되지 못했으며, 더군다나 대통령만은 절대로 될 수 없었을 거란 생각입니다. 정말 대통령은 아무나 운 좋아서 하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새해 첫날, DJ의 팔순잔치가 열렸습니다. 천여 명의 세배객들, 총선을 앞둔 민감한 시기에 분당과 오차범위를 다투는 지지율 때문에 더욱 더 주목을 받았습니다. 과연 DJ가 다시 영향력을 발휘해 정치 참여를 할 것이냐, 누구의 손을 들어 줄 것인가, 언론은 촉각을 세워 예의 주시했고 그를 아끼는 이들은 행여 그가 ‘우’를 범할까봐 내내 가슴 졸여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 곳에서 DJ는 과감하게 ‘현실정치 불참’을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참여정부가 바르게 잘 나아가길 원한다고 선언했습니다. 참 감동적이었습니다. “역시 DJ”라는 탄성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우리의 판단이 틀리지 않아 행복하기까지 했습니다.
대한민국 현대사는 아직 존경할만한 전직 대통령을 가져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 국민은 참 불행합니다. 어느 분은 수십 년 독재로 이 땅의 민주주의를 탄압하다가 자신의 부하의 총에 '비명횡사'하셨고, 수천 억의 국민혈세를 물 쓰듯 써놓고, 전 재산이 ‘30만원’이라며 오리발을 내미는 뻔뻔스런 대통령의 얼굴도 보았습니다. 다른 분들 역시 열거하기 창피할 정도입니다.
이에 비해 자신의 영향력을 뒤로하고, 오로지 대한민국과 세계평화에만 전념하겠다는 DJ에게서 우리는 문득 희망을 갖게 됩니다. 우리도 이제 존경하는 인물 중에 전직대통령 한 명쯤은 가지고 싶습니다, 그럴 때가 되었습니다
이제 각자의 자리에서 "대한민국 역사 발전을 위해, 대한민국 정치 발전을 위해, 개혁세상, 맑은 세상,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자식과 후손에게 살만한 대한민국을 물려주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나 고민해야 할 시기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전부, 모든 것을 걸고 나서봐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개혁의 최적의 시기에 서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 기회를 놓친다면 그 누구도 역사의 심판 앞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입니다. 이 참여정부 내에서 기어코 완성시켜내야 할 우리의 과제는 개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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