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뻔히 알고는 있지만 입 밖으로 내어말하지 못하는 일들이 있다. 30일 검찰이 발표한 '드라마 협찬비리' 사건은 이런 사건들 중 가장 대표적인 사건이었을 것이다. 드라마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특정 상품의 노출을 하는 댓가로 방송관련자들이 금품을 수수하고 그것을 개인 용도로 사용한 사건이다. 직접 관련된 각 방송국의 메인 뉴스에서 이 사건을 다루는 보도 행태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번 사건에 대해 직접 연루되어 있는 SBS는 이 문제를 가장 비중 있게 보도했다. 비교적 <8뉴스> 앞부분에 1분 34초의 분량의 화면은 관련 드라마를 필터 처리를 통해 보여주며 사건에 대해 비교적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고자 했다. 물론 현직 PD가 아닌 전직 직원이라는 점이 작용했겠지만 그래도 자사의 이름을 언급하며 보도는 중립적으로 이루어졌다.
MBC <뉴스데스크>의 경우도 비슷한 시간대와 분량이 배정되었다. 이 코너에서는 SBS의 관련 드라마를 자료화면으로 상세히 필터처리 없이 보여주며 구속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덧붙였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자료화면으로서의 효과 이상의 과도한 노출은 불필요했다고 지적할 수 있다. 상품명은 보이지 않았으나 충분히 알아볼 수 있도록 매장과 상품을 뉴스에서까지 보여줄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다른 어느 곳보다 이 문제에 대해 가장 엄정해야할 KBS <9시 뉴스>는 정작 이 문제를 다루지 않았다. 이는 정권의 억지로 재임된 정연주 사장의 평소 지론과의 불일치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정 사장은 이전 임기 때부터 ‘한류 열풍’을 타면 각국의 방송으로 우리 상품들이 보여지기 때문에 홍보가 되어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궤변을 내세우며 방송의 간접광고가 허용돼야 한다는 논리를 펴 왔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방송국들의 불법적인 행위로 인한 결과로 얻어질 국가적 망신은 어찌할 것이며, 광고인지 방송인지 구분 못할 수준의 저질 방송이 됨으로써 한국 방송을 외면하게 되는 수순은 어떻게 감당할 생각인가. 이미 외주 제작사에게 허용된 협찬만으로도 방송이 CF화되었고 작가들은 드라마를 쓰기가 불가능하다고 할 정도인 이 상황보다 더한 방송질의 하락이 이루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미디어의 간접광고가 허용될 경우 방송은 더이상 시청자들의 몫이 아니며 방송국과 광고주의 야합으로 점철된 질낮은 방송이 될 가능성이 농후해진다. 게다가 이런 방송 광고가 기업에 국한되지 않고 정치까지 연결되지 않으라는 법도 없지 않겠는가. 그럴 경우 방송의 타락은 걷잡을 수가 없어질 것이다.
유럽의 경우에는 심지어 '간접 광고'라는 용어 대신 '은폐 광고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런 식의 광고가 시청자의 눈을 속인 행위라고 여기는 것이다. 미디어의 신뢰성을 위해서 이런 간접광고에 대한 정 사장의 위험한 발상에 대해 우려를 금할 수 없으며 그 의도에 대해서도 의심할 수밖에 없다. 한국 상품 홍보를 위한 국익 창출의 의도만을 가졌다고 보기엔 지금까지 보인 정사장의 행보에서 순수성을 찾아보기가 힘든 까닭이다. 검찰의 추가 수사가 언급된 이번 사태에 대한 KBS의 행보가 과연 어느 방향으로 갈 지에 대해서 좀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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